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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서아 Dec 26. 2021

김훈의 자전거 여행

나도 그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



 김 훈의 <자전거 여행> 프롤로그의 첫 문장이다. 수십 년 자전거를 타도 나는 이런 문장을 못 썼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면 몽유도원도의  낯선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내가 자전거를 사랑하는 이유는 자전거가 나를 이 세상에서 분리시켜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과의 완벽한 이별의 시간은 너무 짧다. 곧 자전거에서 내려와야 하니가. 그래서 나는 여행도 싫어한다. 일상을 떠나 피안의 세계로 갔다가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나의 운명이 슬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상상 속에서만 온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그런데 그리 젊지도 않은 나이에 자전거를 끌고 산을 넘는 사람이 있다. 드넓은 바다 위의 한 척 작은 배처럼 나라 전체를 훑어 내리는 산맥 속의 한 점 나뭇잎 같이 가볍게 아니 헉헉거리며 산을 넘는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었다. 바람의 끝자락을 타고 온 세상을 떠돌고 싶었고, 바다 위의 한 점 구름이거나 여름 소나기 속의 한 점 물방울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살지 못하고 이 지겨운 세상에서 땅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다.



 그는 세상을 관통하는 진리 하나를 찾기 위해 고행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카메라처럼 미세하게 담는다. 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들이 모두 모이면 작가의 몸 안에서 불이 붙는다. 그 재를 모아 작가는 글을 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닐 것이다. 살기 위해 감각을 버린 나는 그의 생생한 오감에 닭살이 돋는다. 책을 던져버리고 싶다. 그러나 끝까지 책을 읽는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이 문장에서 쉼표는 없어도 될 것 같다. 그다음 문장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나간다.”에도 쉼표는 또 들어있다. 이 세상의 끝을 향해 열심히 페달을 밟는 사람이 이 짧은 문장에서 쉼표를 찍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쉼표가 없이는 페달을 끝까지 밟을 수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멈춤이 없이는 이 세상을 온전히 볼 수 없기 때문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는 밥을 먹고, 세상을 살아가고 글을 쓴다. 그가 죽는 날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자신에게 씌워진 운명의 가시관을 스스로 벗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글쓰기의 천형이 내려진 것은 우리의 축복이다. 여기에서 저기로 건너갈 수 없음을 슬퍼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나는 그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이 슬픔을 건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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