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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서아 Dec 26. 2021

김훈보다 무겁게 아니 가볍게...

-20년 만에 다시 김훈을 만나다.


  2000년 즈음에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처음 읽었습니다. ‘나중에 한 번 더 읽어야지.’ 하면서 책을 덮었습니다. 하지만 2021년이 되어서야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무려 이십 년이 넘어서 다시 읽은 <자전거 여행>은 어땠을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너무 좋았습니다. 책이나 사람이나 오랜만에 만나면 실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세월의 간격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썼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자전거 여행>을 처음 읽었을 때 제 마음에 남은 단 한 문장을 꼽으라면 바로 시인지 산문인지 모르는 아래의 글입니다. 책을 펼치면 프롤로그보다 먼저 나옵니다.



"너의 빈자리를

너라고 부르며

건널 수 없는

저녁 썰물의 갯벌

만경강에 바친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 생각의 나무 출판사.



  그런데 이번에 새로 읽은 ‘문학동네' 출판사의 <자전거 여행 1>에는 이 시가 보이지 않았어요. 너무 섭섭해서 처음 이 책을 펴낸 '생각의 나무' 출판사의 <자전거 여행>을 중고로 구입했어요. 그랬더니 맨 앞 장에 이 시가 딱 있었습니다.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듯 정말 반가웠어요.



  이 시를 처음 만났을 때 "너의 빈자리를 너라고 부르며..." 이 구절에서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내가 살아온 세월이 눈앞에서 힘없이 쓰러지는 것 같았습니다. 허상을 실제로 착각하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 문장 하나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구절 "건널 수 없는 저녁 썰물의 갯벌"은 이해가 어려웠어요.


"건널 수 없는 저녁 썰물의 갯벌"


"건널 수 없는 저녁 썰물의 갯벌"


"건널 수 없는 저녁 썰물의 갯벌"


아무리 반복해도 그가 '건널 수 없는 저녁 썰물의 갯벌'을 슬퍼하는지, 안타까워하는지, 상찬 하는 것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모를 때는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풍경은 인문이 아니라 자연이다. 풍경은 본래 스스로 그러하다. 풍경은 아름답거나 추악하지 않다. 풍경은 쓸쓸하거나 화사하지 않다. 풍경은 자유도 아니고 억압도 아니다. 풍경은 인간을 향해 아무런 말도 걸어오지 않는다. 풍경은 언어와 사소한 관련도 없는 시간과 공간 속으로 펼쳐져 있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 143쪽



  “풍경은 인간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지만, 인간이 풍경을 향해 끝없이 말을 걸고 있다. 그러므로 풍경과 언어의 관계는 영원한 짝사랑이고, 언어의 사랑은 짝사랑에서 완성되는데 그렇게 완성된 사랑은 끝끝내 불완전한 사랑이다. 언어의 사랑은 불완전을 완성한다."

   -김훈 자전거 여행 147쪽



“.... 만경강 저녁 갯벌과 거기에 내려앉는 도요새들의 이야기를 쓰던 새벽 여관방에서 나는 한 자루의 연필과 더불어,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의 절벽 앞에서 몸을 떨었다. 어두워지는 갯벌 너머에서 생명은 풍문이거나 환영이었고 나는 그 어두운 갯벌에 교두보를 박을 수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만질 수 없었다. 아무 곳에도 닿을 수 없는 내 몸이 갯벌의 이쪽에 주저앉아 있었다.

     -‘자전거 여행’ 258쪽



  위의 글들을 읽고 조금 이해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저녁 썰물의 갯벌은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나는 그 풍경에게 자꾸 말을 하고 싶고, 그 갯벌을 건너가려고 애쓰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고, 인생의 나그네는 쓸쓸히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는지요.



  <자전거 여행>을 처음 읽으시는 분들 중 자신의 문해력에 의심을 갖거나 자괴감에 빠지는 분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 읽을 때 그랬었거든요. 그래도 계속 읽었습니다. 그 글을 쓸 때까지 겪어온 작가의 모든 것이 담겼을 텐데 우리가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할 수 있을 만큼만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나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들은 흡수할 수 없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데 50년이 넘게 걸리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십 년 만에 그의 책을 다시 읽으며 이번에 마음에 들어온 문장은 이것입니다.



“산다는 일의 상처는 개별성의 훼손에서 온다. 삶은 인간을 완벽하게도 장악해서 여백을 허용치 않는다. 멀고 깊은 숲에 갈 수 없다면, 우리 마을 정발산 숲 속으로 가자. 숲은 마을 숲이 가장 아름답다. 거기서 삶과 인간들을 조금 밀쳐내고 키 큰 나무처럼 듬성듬성 우뚝우뚝 서서 숨을 좀 쉬어보자. 정발산에는 키 큰 나무가 많다.”

   -김훈 자전거 여행 70쪽



  맞아요, 저는 그 무엇보다도 저의 개별성이 훼손될 때 상처를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그것을 참지 못해 내가 먼저 나의 삶을 부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삶은 천국이기도 하고 지옥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의 프롤로그 첫 구절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이 짧은 문장에서 그가 왜 쉼표를 찍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가 찍은 것이 쉼표인지 마침표인지 잘 보이지 않네요. 쉼표로 보이기도 하고 마침표로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은 쉼표와 마침표의 변주가 아닐까요? 물론 물음표와 느낌표도 찍습니다. 저는 살면서 쉼표를 많이 찍어왔습니다. 이제는 몸으로 마침표를 많이 찍고 싶어요. 김훈만큼 열심히 생각하고, 김훈보다 쉽게 쓰고, 김훈보다 무겁게 아니 가볍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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