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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서아 Jan 30. 2022

꾸준히 하기..아무리 꾸물거린다 해도

-<이상문학상 대상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를 읽고

오늘 소개할 책은 <이상문학상 대상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이상문학상'을 받으면 '수상 소감'과 함께 '문학적 자서전'이라는 짤막한 글을 써야 합니다. 작가들이 자세하게 또는 두루뭉술하게 자신의 문학적 여정을 풀어놓는 글입니다. 글쓰기와 관련된 개인의 역사를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또는 불친절하게 이야기합니다. 


예전부터 작가들의 작품보다 '수상 소감'과 '문학적 자서전'이 더 흥미로웠습니다.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데 일일연속극처럼 짧아서 아쉬웠습니다. 연속극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지만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들이기에 다음 기회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22명 작가들의 내밀한 일기 같은 글들을 한 번에 보니, 어린 시절 과자 종합 선물 세트를 받았을 때의 기쁨이 되살아났습니다. 



 나의 과거 언젠가에 이상 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열심히 보던 시기가 있었고 어느 순간 누가 상을 탔는지조차 모르고 지낸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작가들의 '내밀한 자기 고백의 글'을 읽으며 애써 잊고 살던 과거의 기억이 뭉텅뭉텅 올라옵니다.



 “대여섯 살이었던 해 고향 마을에서 뭔 큰 굿을 했다. 굿이 끝나고 시루떡을 나누어 주는데 줄을 설 줄 몰라서, 다른 애들처럼 대들어 타낼 줄 몰라서 시루떡을 못 받아먹고 집에 와 펑펑 운 적이 있었다. 우는 것도 그 자리가 아닌 집에 와서야. 아직 지워지지 않은 상처라 환갑이 되어서도 주접스럽게 그 얘기다.”

  -34쪽


 2017년에 대상을 받은 구효서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만났을 때, 뭔가를 차지하려고 서두르는 사람들의 광기가 무서워서 아예 줄에서 빠져나와 옆에 서서 그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울진 않았어요. 하지만 그런 저를 창피하게 여기긴 했습니다. 구 효서 작가의 다음 말이 너무 마음에 와닿습니다.



 “잡생각들은 잡생각답게 순서 없이 뒤죽박죽 쓸모가 없지만 그래도 모아놓으면 나름 양도 꽤 되고 나에게는 소중하고 찬란해 뵈는 구석이 있다. 소설이란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이 쓸 데 있는 것이 되는 현장인지도 모른다. 나 같이 천성적으로 꾸물거리기만 하는 사람도 30년 넘게 무언가를 부지런히 만들어내게 하는 현장. 좋다."     

 -38쪽



이 글을 읽으며 쓸데없는 나도 뭔가를 꾸준히 한다면 쓸 데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올라왔습니다. 다만 꾸준히 해야 한다는 지점에서 뭔가 탁 걸려 넘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꾸준히 하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열심히 하다가 잘 안되면 쉽게 실망하고 그만두고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괴성을 지르지 않고 겉멋도 부리지 않고 그릇도 깨지 않는다, 고 쓰고 싶다. 농담을 하고 나물을 무치고, 윙크도 하면서 찬찬히 늙고 있다, 고 쓰고 싶다. 아니, 아니다. 모든 게 여전하다. 나는 다만 글을 쓸 뿐이다. 여전히 억울하다. 억울해서 울지만 그래도 나는 글을 쓴다. 이보다 더 끔찍한 축복이 어디 있는가. 나는 글을 쓴다. 가끔 발광을 한들 어떤가. 나는 글을 쓴다. 나는 잊지 않는다. 나는 글을 쓴다. 그러니 부디...... 용서하라.”

 -49쪽



 2008년에 대상을 받은 권여선 작가의 글입니다. 사실 저도 뭔지는 모르지만 항상 억울하다는 느낌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억울해도 울지 않아서, 쉽게 잊었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글도 쓰지 않아서 작가가 되지 못했나 봅니다. 차라리 울고, 소리 지르고, 그릇을 던졌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합니다



“운명을 이해해보려는 시도는 이처럼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이윽고 아버지는 이 세계를, 당신 자신을 증오하게 되었을 것이다. 무언가에 깊이 절망한 사람은 그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과 분간하기가 어렵다. 깊은 절망은 깊은 사랑과 닮은 구석이 있다. 절망이 가득한 눈으로 노을이 진 서편 하늘을 바라보는 이의 눈빛이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는 것처럼.”

-191쪽



 2018년 대상 손홍규 작가의 글은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합니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 글이 되었습니다.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돋보입니다. 관찰자로서의 소설가의 아름다운 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손홍규 작가의 자서전은 아래의 문장으로 끝이 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당신들을 속속들이 알아서가 아니라 잘 알지 못해서, 알고 싶어서, 알아야만 하므로, 소설을 쓴다는 걸. 나는 당신의 발자국을 따라 이야기를 줍는 사람일 뿐이다. 걸을 때마다 연꽃이 피어나는 전설의 인물처럼 살아온 걸음마다 이야기를 남겨둔 당신들이 있어 행복했다. 오래전 내 꿈은 소설가였고 지금 나는 소설가인데 여전히 내 꿈은 소설가다.”



“오래전 내 꿈은 소설가였고 지금 나는 소설가인데 여전히 내 꿈은 소설가다.” 이 부분을 읽으니 제 가슴에 몽글몽글한 수증기가 모여드는 것 같습니다. 작가의 진심은 이렇게 또 한 번 저를 훑고 지나갑니다. 



2007년 대상을 받은 전경린 작가는 이렇게 썼네요.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어떤 것은 쓰고 어떤 것은 피해 간다. 내 삶에 대해서는 한 자락도 이 글에서 들키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자신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어떤 힘이 나를 이 먼 곳까지 데리고 왔을까, 하는 생각에 잠길 뿐이다. 여기는 내 상상뿐 아니라 나의 가족과 친구들 모두의 상상을 넘어선 곳이고 보통의 사람들이 세 번쯤 죽고 다시 태어나며 운명을 전복해야 이르렀을 곳이며 내가 삶의 깨어진 조각들에 가슴이 찔리며 피 냄새를 맡으며 걸어온 곳이다. 이곳...... 다행히 이곳에서 미처 예기치 못한 큰 화해가 일어나고 있다. 마치 오랜 유배에서 풀려나는 심정이다.”

  -264쪽




전경린 작가의 글은 험한 인생의 골짜기를 힘들게 넘어온 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아프게 살아왔습니다. 운명이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끝까지 가다 보면 오랜 유배에서 풀려나는 마음도 느끼고 ‘화해의 언덕’에도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책을 다 읽고 제가 모은 작가들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영악하지 못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억울한 것, 잘못된 것은 끝까지 기억하고 생각이 많고 엉뚱하고... 등등 이런 그들을 보면서 저는 안심을 하고 혼자 위로를 받습니다. '아, 내가 이상한 아이는 아니었구나! 훌륭한 글을 쓴 사람들도 나처럼 혼자이고, 세상일에서 툭하면 밀려나고 했구나.'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글을 썼고, 저는 그냥 살았단 차이겠지요.



1994년 대상, 최윤 작가의 글입니다. 저도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어느새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나는 소설을 쓰고 있었고, 먼 우회 끝에 나를 되찾으면서 가히 행복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하니 나의 사십이 년은 단숨이었고 그사이 만난 어느 누구도, 어떤 경험 하나도 버린 적이 없다. 내 머릿속에는 늘 무수한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고, 세상에 대한 경계를 모르는 기대와 근본적인 호기심은 내 단 하나의 재산이다. 나는 실수 많은 나의 개인사에는 무관심하다. 나는 어쩌면 비어 있다. 그러니 생활이 아직까지도 아마추어 단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303쪽 




 제 머릿속에도 늘 무수한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고, 세상에 대한 끝없는 기대와 호기심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다만 저는 이 모든 것을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작가님은 이걸 단 하나의 재산이라고 소중히 여기시네요. 실수 많은 개인사에는 무관심하다는 말은 자신의 강점에 집중하고 약점은 무시하겠다는 생의 태도네요. 저도 이렇게 살았어야 했는데 이제라도 제가 가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면서 살아보려 합니다. 무엇이든 꾸준히 하면서요. 아무리 꾸물거린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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