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필요만 만큼만
현지에 가서 책으로는 알 수 없었던 영국이란 어떤 나라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역사에 대한 자발적인 호기심도 생겼다. 영국은, 꽤 멋진 나라이다. 영국이 멋진 나라라고 생각한건 그들의 문화속에서 엿볼 수 있는 ‘필요한 만큼만’이었다. 물론 이것은 내가 붙인 말로 유럽하면 호화롭고 세련된 장식의 이미지가 고정관념으로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았기 때문으로 실제로 그 의미가 나의 해석과는 전혀 무관할 수도 있다.
우선 도로 위 풍경에서 필요한 만큼만을 처음으로 느꼈다. 국도 1급인 A도로는 물론 고속도로인 M도로도 도로의 폭이 겨우 차 한 대 지나갈 정도였다. 대부분의 A도로는 2차선인데 도로폭까지 좁으니 한국에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았던 차선폭을 신경 써야 했다. 조금만 방심하면 중앙선을 넘거나 갓길 차선을 넘는데, 갓길차선 밖은 한 뼘만 빠져도 차가 크게 진동할만한 곳들이 많았다.
과거에 도로를 내어 그렇다 한 들, 영국이 차선확장을 할 만한 경제력은 충분할 것인데 왜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지금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내 중심부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았고, 좁은 차선을 지나느라, 종종 보이는 자전거 여행자들을 웬만해선 추월하지 않고 뒤따라 가느라, 과속하는 차가 드물었다. 편도로 1차선씩만 있어도 웬만한 A, B급 도로는 충분해 보였다.
도로의 폭이 너무 좁은 곳은 passing area가 있었다. 두 대가 지나갈 수 없을 만한 길, 특히 커브가 나오는 곳에는 어김없이 passing area가 있었는데 먼저 그곳에 진입한 차량이 반대 차선에서 오는 차를 볼 경우 기다려 주는 곳이다. 우리는 처음에 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앞 차가 잠시 정차한 것이라 생각하여 추월 아닌 추월을 하였는데, 1초 뒤 반대 차선에서 오는 차가 있기 때문이었음을 알았다. 우리나라 같으면 그런 곳에는 거울이 설치되어 반대편 차가 없을 때는 빨리 지나가기 마련인데, 양보의 미덕을 보았음은 물론 passing area를 두어 도로를 최소한으로 내어 놓으니, 그만큼 풀과 나무의 공간이 더 많아보였다. 아름답게 본 해석일지 모르지만 아름다웠다.
‘필요한 만큼 최소한으로 간결하게’를 나는 여러 가든을 방문하여서도 그 느낌을 받았다. 평소 서양식 조경에 그렇게 호의적이지는 않았지만 오랜 세월을 통해 만들어진 전체적인 규모와 오래된 나무, 다양성에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도 대단해 보였던 것은 웬만해선 펜스를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대신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않았으면 싶은 곳에는 왠지 그런 목적이 엿보이도록 잔디를 심어 두었다. 보통 통행할 수 있는 곳의 잔디는 서스름 없이 지나가는데 그런 구역만큼은 아무도 침범하지 않았다. 생명을 인공 구조물이 아닌 생명으로 자연스럽게 보호하는 모습, 나에게는 꽤 감명 깊은 대목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소문과 달리 영국 음식을 먹는 동안 돈이 아깝다고 생각된 적은 없었다. 라면과 햇반과 장아찌와 고추장을 간간히 먹은 덕분도 있지만 영국의 가정식 또는 시골 음식은 5명 모두의 입맛을 만족시켰다. 그 양은 비록 조금 많다 싶을 정도였지만 일인 당 한 접시 정도로 한 끼를 먹으면서 우리나라의 한상 차림이 생각났다. 한 상 차리기 위한 주부들의 고단, 또 그만큼 남는 음식들을 생각하니 와이프와 함께 왔더라면 하마터면 영국에서 보고 배운 만큼, 오랜 토론을 거친 후 식사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걷는 사람들, 산에 오른 사람들도 진수성찬을 준비해 오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달리 대부분이 샌드위치 정도로 해결하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