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텐트칠려면 양 똥을 치워라
정말 그들의 문화일까 궁금증도 생겼지만 나는 내가 느낀 그대로 영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단순히 보고 느낀 풍경부터가 그랬다. 빌브라이슨은 '역설적이고 안타깝게도 영국 풍경을 가장 아름답고 영국답게 만드는 거의 모든 것은 오늘날 더 이상 큰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이다. 산울타리, 시골마을의 성당, 돌로 지은 창고, 야생화가 하늘거리고 새들이 지저귀는 길섶, 바람 부는 언덕을 한가로이 거니는 양 떼, 마을의 작은 가게들과 우체국 그 외에도 수많은 것들'이라고 하였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오랜 세월을 지난 시골 풍경은 대부분 구릉지 초원으로 큰 나무가 별로 없었고, 가까이서 보면 양이고 멀리 보면 돌인가도 싶었던 양 떼, 산은 헤더로 뒤덮인 자줏빛, 그리고 개방형 구조로 특정한 곳에 사람이 몰리지 않는 국립공원, 특별히 의미를 두지 않아도 영국은 담백했다. 풍경의 담백한 맛이 좋다.
영국을 다니는 동안 꼭 이런 감동과 감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현지 가이드 없이 책과 인터넷 정보, 몇몇의 추천에 의해 연수를 준비했던 까닭이다. 수익 창출을 제1목표로 해야 하는 사기업에서 근무하며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일을 6개월 여 준비하면서 맡은 업무까지 해야 하니 고단하였다. 서툰 영어도 문제였지만 한 번도 주도적으로 해외에 다녀 온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도전 그 자체가 두려웠던 적도 있다. 현지에서는 일정에 문제가 없을지, 막상 도착해서 기대했던 모습일지, 당연히 일어나겠지만 해프닝은 어떤 일로 생길지 조마조마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5명이 영국에 가기로 한 날부터 여유있게 하루 한 두 가지의 목적을 갖고 움직이기로 합의하였는데 굉장히 잘한 일이었다. 모두가 초행길인 외국 땅에서 마음의 여유 없이 시간에 쫓겨 움직이면 굉장히 피곤하다. 돌이켜보니 영국답게 영국을 다녀왔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이면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다음 날의 동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것이 효율적이고 갈등 없이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비결이었는데 덕분에 글렌코 지역에서 감동적인 트레킹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다섯 명이 한마음으로 움직인 덕분인지 별 다른 사고가 없었다.
다만 5일차에 첫 캠핑을 하였는데 모두가 허탈한 웃음을 짓게 한 일이 있었다. 네비게이션의 안내대로 따라갔는데 웬 양떼 목장만 있고 캠핑장이라 할 만한 곳이 안보였다. 이메일로 받은 안내대로 주인까지 없어 당황했다. 다행히 나이가 많이 드신 주인의 아버지가 계셔서 몇 가지를 안내받고 텐트를 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닭을 유인해 농장 안으로 들어가고 양 똥을 치우며 텐트 자리를 마련하였는데 일행분들게 굉장히 죄송하였다.
원래는 피크디스트릭트 국립공원과 함께 레이크디스트릭트 국립공원을 방문하려다 하룻밤 묵을 수 있는 캠핑장을 구하기 어려워 동선도 더 짧은 요크셔데일즈 국립공원으로 정하고 갔다. 요크셔데일즈 국립공원의 96%가 사유지였기 때문에 당연히 대부분의 캠핑장도 사유지 안에 있었다. 레이크디스트릭트에서 강을 바라보는 캠핑 대신 사진에서 본 것처럼 구릉지대 마을의 푸른 초원 위에서 낭만적인 캠핑을 꿈꾸었으나, 농장을 순환식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양들이 풀을 뜯어 먹는 자리였던 것이다.
이후 두 번째 캠핑장은 물론 하루하루 인터넷에서 본 모습과 실제가 얼마나 다를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피크디스트릭트의 North Less 캠핑장은 국립공원이 운영하기 때문에 시설이 좋은 편이었다. 상근 직원이 관리하였고 샤워장과 화장실, 싱크대가 있었다. 첫날과 다르게 가족 단위 캠핑족들이 많았다. 도착할 때까지 긴장했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