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던 도중 영화 출연 제의를 받았습니다.
# 인이: 인도 이야기의 줄임말. 다음(daum) 포털사이트에 '인이' 또는 '정주호'를 검색하면 글이 나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영화 촬영하지 않을래?”
조식을 먹고 갠지스강 아씨가트에서 산책을 하고 있는데 영화감독 ‘라지쉬’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난 대답했다.
“나 내일 바라나시 떠나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오늘만 도와줘, 그리고 우리 엄청 유명한 영화야. 세 얼간이 영화 알지? 세명중 한 명이 우리 주인공이야. 이따 밥도 공짜로 주니까 밥도 먹고 가”
“고맙지만 사양할게”
시크하게 거절을 하고 떠나려던 찰나, 라지쉬가 제안을 했다.
“1000루피 줄게, 5시간만 도와줘”
난 바로 말했다.
“1000루피는 너무 적어, 2000루피는 줘야지”
“2000루피는 안돼, 그냥 가던 길가”
“알겠어, 1000루피로 하자. 어디 가서 앉으면 돼?
돈에 홀린 나는 자동적으로 천막 아래 대기소로 걸어가고 있었다.
대기소에 도착하자마자 외국인의 특별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자신의 의자를 주는가 하면, 또 한 명은 물을 떠서 갖다 줬다. 한국에서는 일반 시민이었지만 여기선 한류스타나 마찬가지였다. 의자에 앉아 촬영 현장을 구경했다. 20~30명 되는 스태프들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 장면을 찍기 위해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발리우드라는 말이 괜히 나온 이야기가 아니었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한류스타의 기운을 받고 있는데 이스라엘에서 온 한 커플도 캐스팅됐는지 대기소로 걸어왔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던 인도 남자 2명도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양보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바닥에 앉았다. 이스라엘 커플도 길가고 있는 도중 영화감독 ‘라지쉬’에게 캐스팅이 됐다고 말했다.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도중 영화감독이 준비 하라고 말했다. 드디어 한류스타의 연기력을 보여줄 차례였다. 난 자신 있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영화감독 ‘라지쉬’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이번 장면은 네가 안나가도 될 거 같아”
그 말을 듣고 쿨하진 않지만 내심 쿨한 척하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Ok 컷이 나오자마자 스태프 들은 점심시간임을 알렸다. 이스라엘 커플과 나는 같이 밥을 받기 위해 왼손에 식판을 들고 줄을 섰다. 멀리서 우리를 확인한 배식 담당자는 우리에게 소리를 치며 앞으로 오라고 했다. 여기서도 외국인의 특별대우가 있었다. 배식을 기다리고 있는 인도인 10몇 명을 재쳐 배식대 앞에 섰다. 배고픈 마음에 밥과 카레를 많이 담았다. 카레를 담고 옆을 보니 또 카레가 있었다. 또 담고 옆을 보니 또 카레가 있었다. 모든 게 다 카레였지만 배고픈 마음에 여러 종류의 카레를 다 담았다.
우리 셋은 나란히 앉아 식판만 쳐다봤다. 불행하게도 숟가락이 없었다. 난 배고픈 마음에 “먹자”를 외치며 다섯 손가락으로 밥을 움켜쥐고 카레를 찍어 입에 넣었다. 입에 넣고 씹자마자 바로 ‘아차’했다. 카레가 너무 매웠다. 하필 날씨도 30도가 넘는 무더위였다. 머리에서 식은땀이 나면서 손과 발이 떨릴 정도로 맵고 뜨거웠다. 더욱이 고통스러운 건 인도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밥을 남길 수가 없었다. 궁금한 마음에 이스라엘 친구들을 보니 이 친구들은 아예 카레에 손을 대지도 못하고 있었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인도 사람들은 우리의 고통도 모른 채 우리를 보며 깔깔 거리며 웃었다.
꾸역꾸역 밥을 다 먹고 난 후 원 위치로 돌아왔다. 이스라엘 커플은 보이지 않았고 영화감독도 보이지가 않았다. 영화 관계자한테 다가가 물어봤다.
“다들 어디 있어? 나는 어디에 앉으면 될까?”
“저쪽에 앉아있어, 아마 촬영하고 있을 거야”
관계자가 말한 곳으로 향했다. 이미 촬영은 진행되고 있었다. 촬영 관계자들은 앉아 있는 나에게 아무런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하냐며 물었지만 앉아있으라는 말이 다였다. 그대로 30분 동안 앉아 기다리다가 더 이상 있는 시간 아까워서 자리를 떴다. 비록 촬영은 하지 못했지만, 발리우드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뜻깊었다. 그 후 원래 가려던 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카페는 작고 허름했지만 옥상으로 올라가니 모든 게 한눈에 보였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바로 옆에 안경 끼고 샤프하게 생긴 남자가 뒤이어 내 옆에 앉았다. 이름은 ‘톰’이었고 영국에서 온 친구였다. 서로 한두 번씩 힐끔 쳐다보다가 내가 먼저 말 걸었다.
“어디 어디 여행하다 왔어?”
“델리하고 아그라 들렸다가 바라나시 왔어. 바라나시에서 조금 오래 머물 거 같아. 오늘 갠지스 강에서 배 탈 건데 같이 탈래?”
만나자마자 배를 타자며 나를 꼬셨다.
“음 얼만데?”
“한 사람당 150루피인데 사람들이 많이 추천하던데, 같이 가자”
“그래 좋아”
우리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같이 배를 타기로 했다. 톰은 내 카메라를 본 후 갑자기 읽지도 않았던 책을 피고는 폼을 잡기 시작했다. 난 눈치 빠르게 카메라를 잽싸게 집어 들어 사진을 찍어줬다. 그 후 나도 글을 열심히 쓰는듯한 폼을 잡고는 사진 찍히기 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놀다 보니 한 시간이 지나고 배를 탈 시간이 왔다.
일층에서 뱃사공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뱃사공은 우리보다 한참 어려 보였다. 나이는 15살이었고 용돈벌이 식으로 노를 젓는다고 했다. 오늘은 7개 정도의 가트를 들리고 특히 화장하는 장소에 가서 구경을 한다고 했다. 배에는 모터가 없었고 노를 젖는 수동식이었다. 느리게 갈 것 같았으나 한번 탄력을 받으니 예상외로 빨랐다. 뱃사공은 공연 시간에 알맞게 도착한 후 공연장 앞에 배를 세웠다. 그 와중에 톰은 또 폼을 잡더니 이제는 나에게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폼 잡았잖아. 빨리 찍어야지”
문제는 여기서 터졌다.
해는 이미 저물었고 공연하는 사람들이 들고 있는 횃불과 길거리에 있는 전봇대 만이 빛을 밝혔다. 공연에 집중을 하고 있는데 까맣게 보이는 무엇인가가 배를 옮겨 다니며 재빠르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자세히 보니 엄지발가락 만한 크기의 바퀴벌레들이었다. 한두 마리도 아닌 몇십 마리가 우글우글 거리며 배를 이곳저곳을 휘저으며 돌아다녔다. 보자마자 나는 바로 소리를 질렀다.“으아아아악”
바퀴벌레가 내 비명소리가 재밌는지 내 뒤로 왔다. 난 순간적으로 펄쩍 뛰었고 배는 양옆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뱃사공은 진정하라며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톰을 보니 별일 아닌 듯 행동했지만 두 눈은 바퀴벌레에 고정되어 있었다. 배안에 있는 두 마리 바퀴벌레는 끊임없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옆에 있는 인도 사람들을 보니 먼지 털듯이 바퀴벌레를 보고 가볍게 툭툭 쳐냈다. 공연은 보지도 못하고 바퀴벌레의 동선만 쳐다봤다. 나의 간절한 부탁에 공연이 끝나자마자 바로 배를 출발시켰다. 재미있었던 공연은 바퀴벌레로 막을 내렸다.
내 인생에 있어서 오늘이 마지막 바라나시의 밤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지 혼자만의 시간을 특별히 많이 보냈다. 인도에 보낸 시간중에 갠지스강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소중했다. 여행자 들에게는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도시였다. 인도에 온다면 또 오고 싶은 도시였다.
From. Toro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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