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의 마지막 날. 첸나이로 넘어가는 기차 타는 날.
# 인이: 인도 이야기의 줄임말. 다음(daum) 포털사이트에 '인이' 또는 '정주호'를 검색하면 글이 나옵니다.
감사합니다.
바라나시에서의 마지막 신고식
자고 일어나니 등이 젖어있었다. 천장에 달린 선풍기는 ‘달달달’ 소리를 내면서 돌아갔지만 뜨거운 바람만 내뿜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창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그 덕분에 뜨겁고 습한 공기가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고 인도 특유의 카레 냄새까지 들어왔다. 배고픔을 달래주기 위해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라지쉬’는 조식을 들고 뛰어다녔다. 난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라지쉬와 눈이 마주치기만을 기다렸다. 눈빛의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나를 한번 쳐다봤다. 그리고 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꺾으면서 엄지를 들었다. 라지쉬도 나를 보고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꺾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들듯이 내 몸도 점점 인도 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인도 사람들은 대부분 대답을 하기보다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꺾는다.)
다음 일정을 보고 있는데 식빵 두쪽과 짜이가 내 앞에 놓였다.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순간이다. 눈을 감고 짜이를 한잔 마셨다. 달콤하면서도 쌉쌀한 계피향이 입안을 감싸며 온몸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딸기잼을 식빵에 바르고 한입 베어 물었다. 마치 베네치아에서 먹는 브런치가 부럽지가 않았다. 음식을 음미하며 먹고 있는데 라 자쉬가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오늘 뭐할 거야?”
“오늘 체크아웃 준비하고 카페 가서 글 좀 쓰려고, 근데 짜이 진짜 맛있다, 어떻게 만드는 거야?”
“비밀이야”
'비밀이야' 말을 듣고는 베네치아의 분위기는 깨져버렸다. 바로 노트북을 켜고 짜이 만드는 법을 검색했지만 방법은 상당히 복잡했다. 그냥 사 먹기로 했다.
조식을 다 먹고 난 후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방으로 올라갔다. 정리를 안 하고 벗어놓은 옷들과 양말들이 침대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옷들과 카메라를 가방에 넣으면서 짐 정리를 했지만 딱 한 가지 제일 중요한 파일 가방이 보이지가 않았다. 파일 가방에는 여권, 비행기 티켓, 여행경비 전제산 (80만 원)이 들어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침대 밑에 있는 자물쇠를 열어 확인을 했다. 카메라와 노트북만 덩그러니 있었다. 심장이 뛰면서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여행가방을 뒤집어 침대에 부었지만 파일 가방은 보이지가 않았다.
내 건너편에 있는 인도 남자가 훔쳐간 게 분명했다. 건너편에 있던 남자는 내가 체크인을 하고 난 후부터 항상 나를 관찰했다. 이미 그 남자는 체크아웃을 했고 침대는 비어 있었다. 방안에 CCTV도 없었고, 물론 목격한 사람들도 없었다. 망연자실하며 침대에 넋 나간 듯 누워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이었다. 하는 수 없이 한국대사관의 위치와 ATM 기계를 검색을 하고 있던 중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빡하면서 지나갔다. 베개 밑에 있는 노트북 가방을 확인 안 했다. 설마 하면서 노트북 가방을 열었는데 파일 가방이 여기 있었다.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면서 침대에 쓰러졌다.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 쏟아뒀던 짐들을 다시 정리했다. 다행히 잃어버린 물건들은 없었다. 가방을 라지쉬에게 맡기고 카페를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카페 옥상을 가기 위해서는 건물 꼭대기 6층까지 올라가야 했다.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개 짖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별로 신경 안 쓰며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점점 개 짖는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개 한 마리가 이빨을 드러내며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소리를 내면서 계단을 두세 칸씩 뛰어 올라갔다. 강아지는 미쳤는지 내 다리를 물려고 달려들었다. 하필 슬리퍼를 신은 탓에 신발이 벗겨질 듯 말 듯하고 속도도 나지 않았다. 2층까지 순식간에 올라갔다. 도저히는 안될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싸우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을 두세 칸씩 빠르게 뛰어 올라가면서 등에 메던 가방을 오른손에 쥐었다. 뒤를 돌아 싸우려고 할 때 일층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강아지 주인인 듯했다. 강아지는 소리를 듣고는 뒤를 돌았다. 그리고 내려갔다. ‘강아지에게 물려 죽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긴 처음이었다.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온몸은 젖어있었다.
기진맥진 상태로 카페에 도착했다. 나와 다르게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게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나도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문을 하고 나서 주변을 둘러봤다. 옆 건물 옥상에 있는 아이들은 행복한 웃음을 지으면서 연을 날리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옥상에서 옷을 널고 있었다. 원숭이들은 옥상 천장에 매달려 서로 장난을 쳤다. 여유로운 사람들을 보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망고 라씨를 시키고는 글을 썼다. 글을 쓰다가 지루해지면 밖을 보고 사람들을 구경했다. 몇 번을 반복하니 벌써 날씨가 어둑어둑 해져갔다. 다시 호스텔을 가기 위해 일층으로 내려가는데 강아지 생각이 났다. 강아지가 나오면 싸울 생각으로 오른손에 슬리퍼를 들었다. 그리고 소리 소문 없이 천천히 걸어갔다. 조용하게 움직여서 인지 강아지는 다행히 나오지 않았다.
호스텔에 도착하니 저녁 9시 정도 됐다. 쪽잠도 자고 핸드폰을 하다 보니까 저녁 11시가 되었다. 밖에는 툭툭이 준비되었다며 경적을 울렸다. 라지쉬는 갈 준비 됐냐고 물어봤다. “준비됐어.”라고 말했다. 가방을 메고 다 같이 사진을 찍고 밑으로 내려갔다. 가방을 툭툭에 싣으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다시 꼭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툭툭에 몸을 싣었다. 그리고 툭툭은 출발했다.
바라나시는 나에게 많은 기억들을 선물해 줬다. 바쁘게 일에 치여 사는 나에게 여유는 무엇인가를 보여줬다. 인도 사람들은 갠지스 강에서 수영을 하고 또한 친구들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축제가 있는 날이면 모두 모여 축제를 구경했다. 바쁜 현대사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지 못하는 것과 다르게 인도 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또한 갠지스강은 나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었다. 갠지스 강에 앉아 사람들이 화장당하는 걸 보면, 나 자신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죽기 마련이고 '죽기 전에 무엇을 남기고 가야 할까'라는 답을 찾기 위해 혼자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을 하면서 하늘에서 잘 지내고 계실지 생각을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또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바라나시였다.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가방끈을 조였다. 인도 사람들은 나를 의식하는 듯이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기차 번호는 12670이었고 플랫폼 5번으로 향했다. 인도 사람들은 바닥에 누워서 기차를 기다렸다. 나도 마찬가지로 가방을 내려놓고 땅 바닥에 앉았다. 새벽 1시에 도착한다는 기차는 1시 30시 되어도 오지 않았다. 옆에 있는 아저씨에게 10번 이상을 물어보자 “걱정 마"라는 말만 들었다. 1시간 늦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기차가 “뿌뿌”소리를 내면서 왔다.
미리 예약했던 2AC(4인석 에어컨 좌석) 내 자리에 침낭을 깔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하루 너무 길다.
From. Toronto
Instagram : Jooho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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