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가 어떤 나라인지 얼마나 혹독한 신고식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 인이: 인도이야기의 줄임말. 다음(daum) 포털사이트에 인이를 검색하면 글이 나옵니다.
‘어!! 뭐야, 내가 잘못 본건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침 7시경이었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머리가 긴 여자가 티셔츠와 팬티만 입고 가방을 뒤적이고 있었다. 민망한 마음에 몸을 반대로 돌렸다. 내가 예약한 방은 8인실 혼성 도미토리였다. 어쩔 수 없이 사생활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스라엘에서 온 25살 여성이었다. 델리가 마지막 도시였고 오늘 인도를 떠난다고 했다.
(혼성 도미토리 = 남녀 상관없이 방을 같이 쓴다)
밖에서 울린 경적소리 때문에 다시 잠에서 깼다. 아침 8시 30분이었다. 경적소리는 끊이지 계속 더 크게 울렸다. 경적소리를 계속 듣다 보니 환청이 생기면서, 나를 밖으로 불러내는 듯한 환상이 생겼다. 난 무엇에 홀린 듯이 씻지도 않고 바로 중요한 물품(노트북 가방, 카메라 가방, 여권, 돈다발)을 백팩에 넣고 로비로 내려갔다. 로비에는 어제 체크인을 도와준 매니저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깨우지 않고 조용히 나가려 하는데 눈이 마주쳤다. 마주친 김에 생필품 파는 곳을 물어봤다. 매니저는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밖에 나가, 다 있어”
어제 체크인할 때는 내 인생까지 책임져줄 것처럼 모든지 물어보라고 하더니 체크인을 한 후 태도가 달라졌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여행객을 상대했겠는가, 이해하기로 했다.
로비에 내려왔을 때부터 매니저 옆에 한 남자가 앉아있었는데,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눈길을 피해 나가려고 했는데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헤이 프렌드 하와유~ 나는 매니저 친형이고 여기서 여행을 담당하고 있어. 인도 계획 짰어?”
다짜고짜 말을 걸어서 당황스러웠지만 나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응 대충 짰어, 여기(델리) 다음에 아그라로 가려고”
여행 매니저는 내 근처로 오더니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다른 직원에게 짜이 (인도차) 2잔을 시켰다. 그리고 말했다.
“인도에 왔으면 아그라도 좋지만 자이푸르는 꼭 가야 돼. 내가 인도 계획 짜줄게, 앉아봐.”
난 짜이를 먹을 겸 남자 옆에 앉았다. 여행 매니저는 옆에 준비해뒀던 종이와 펜을 꺼냈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종이에 나의 계획을 써 내려갔다.
“여행 일정은 총 8일 이야. 델리-자이푸르-아그라-바라나시를 가는 게 좋고, 이동은 기차로 하는 게 좋아. 숙소는 호텔에서 자야되고. 이렇게 해서 우리가 모든 걸 예약해줄게”
계획만 들을 예정이었는데, 얼떨결에 예약까지 이야기가 나왔다. 말이 나온 김에 가격이라도 듣고 싶었다.
“그래서 가격이 얼마야?”
그 사이 다른 직원이 짜이(인도차)를 갖고 왔다. 여행 매니저는 짜이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총가격은 15500루피(31만 원)야, 요즘에 기차 티켓 구하기 힘든데 이번에 사면 잘 사는 거야”
눈이 커지면서 입도 벌어졌다. 31만 원이면 내 계획에 차질이 없는 이상 넉넉하게 20일 이상은 사용할 수 있었다. 거절하려 했지만 이미 내 오른손엔 짜이를 들려져 있었다. 안 산다고 하기에는 뭔가 묘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짜이 하나 때문에 반대를 못할 이유는 없었다. 난 말했다.
“너무 비싸, 미안해”
호텔 매니저는 내 말에 반박을 하면서 비싼 이유를 조목조목 따졌다.
“기차도 제일 좋은 칸이고, 게스트하우스도 아니고 호텔이야. 뭐가 그리 걱정이야,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되잖아”
말이 31만 원이지, 돈울 인출해 줄 생각을 하니 오금이 저렸다. 가격을 듣자마자 난 마음이 닫혔지만, 여행 매니저는 그렇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나에겐 더 앉아 있으면 시간낭비였다. 난 일어나면서 말했다.
“우선 다른 곳 알아볼게”
여행 매니저가 말했다.
“둘러보고 와서 예약한 금액이 얼마인지 말해줘. 그다음에 우리 다시 이야기해보자”
이제는 선을 넘어 돈에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도 웃으면서 “알겠어 이따 봐”라고 했다. 인도를 공부하지 않고, 남에게 의지 한다면 인도는 돈을 뜯어먹는 악마 소굴이었다. 여행매니저는 내 등에대고 마지막 쐐기를 꽂았다.
“인도에 거짓말쟁이 많으니까 조심하고, 재밌게 여행하고 와”
‘여기, 바로 옆에 있네’ 눈빛을 쏘면서 마음속으로 말했다.
호스텔 문 앞에 딱 섰다. 드디어 사람들이 말하는 인크레더블 인디아를 볼 수 있었다. 가슴이 뛰었지만 반대로 긴장이 됐다. 가방을 가슴 쪽에 메고 가방 끈을 조였다. 카메라와 노트북이 있어서 앞쪽으로 멘 것이 무거웠다. 하지만 가방을 등 쪽에 멤으로써 누가 훔쳐가는 것보단 나았다. 호스텔 문 앞에서 좌우를 보고 오른쪽으로 갔다. 길거리는 크진 않았고 일 차선 도로와 크기가 비슷했다. 그 길을 사람과 자동차와 툭툭(밑에 사진 보면 노란색 전동 오토바이) 이 경적을 울리면서 활보했다. 길거리에는 매연과 먼지로 가득했고 특유의 냄새까지 있었다.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인도의 음식 냄새, 오물 냄새 그리고 사람들 땀 냄새 등이 섞여서 컬래버레이션을 이뤘다. 사람들은 길거리에 쓰레기를 아무렇지 않게 버렸고, 침도 아무 데나 뱉었다. 그러다 보니 길이 깨끗할 수가 없었다. 길을 걸을 땐 동물의 대소변과 쓰레기를 피해 걸어야 했으며, 코도 막고 자동차와 오토바이까지 피해야 했다.
이 정신없는 길거리에서 정신 안 차리면 휘둘릴게 뻔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주변에 있는 인도 사람들을 보니 시끄러운 경적소리에도 익숙한 듯 보였고, 길거리 음식장사들은 방금 막 오픈을 했는지 맨손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길거리 음식 카트 주변엔 쓰레기들이 널려 있는데도 신경을 안 쓰는 듯 보였다.
모든 감각들을 깨워 걷고 있는데 오토바이가 내 옆을 엄청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거의 발 한 뼘 차이였다. 깜짝 놀라서 왼쪽 발을 들며 점프를 했다. 내 주변에 있던 인도 사람들은 재밌다는 듯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웃고 있었다. 비웃음에 창피했지만 두려움에 압도된 나는 비웃음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인도 분위기에 압도되어 내가 뭘 해야 할지 까먹었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인도가 너무나 무서웠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마치 순한 양 한 마리가 호랑이 동굴을 구경하려고 얼굴을 빼꼼 내미는 듯했다. 발길을 다시 호스텔로 돌렸다. 두려운 마음에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호스텔로 돌아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침대에 누웠다. ‘집에 가야 하나.. 인도에서 잘 극복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오늘부터 45일이 남았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니 안 좋은 생각들만 더 떠올랐다. ‘나를 이용해 돈을 뜯어먹을 사람, 릭샤나 툭툭이 빵빵거리는 소리,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 등등’ 극복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지할 사람은 없었고 이런 일로 한국에 있는 가족들한테 연락하고 싶지도 않았다. 인도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생각 없이 침대에 누워 있으니 마음이 진정됐다. 뭐라도 하자는 마음에 론리플래닛을 꺼내 뉴델리 기차역을 확인했다. 핸드폰 지도에 뉴델리 기차역을 찍고 다시 가방을 메었다. 목적지가 있으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기차표를 사기위해 기차역에 가기로 다짐했다. 1층 로비로 내려가자 여행 매니저랑 매니저가 같이 앉아 있었다. 여행 매니저가 말을 걸려고 했지만 난 눈길을 주지 않고 문 앞에 으로 갔다. 아까와 똑같은 장면이다. 가방을 앞에 메고 핸드폰 지도를 켰다. 그리고 지도가 표시하는 방향대로 걸어갔다.
지도를 한 번 보고 앞을 보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열심히 걸아가고 있는데 뒤에서 은은하게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뒤를 한번 보니 한 남자가 내 뒤를 쫓아왔다. 발걸음 속도까지 맞추더니 내 옆으로 왔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
“머리 스타일 멋진데? 어디 가는 중이야?”
“고마워, 나 지금 뉴델리역에 가고 있어. 기차 티켓 사야 되거든”
“그래? 나도 뉴델리역 주변으로 밥 먹으러 가는 중인데, 같이 가자 내가 배웅해줄게”
“오! 고마워 너 따라가면 되지? 가는 길이니까 같이 가자”
짧은 대화를 했지만 나는 어느 센가 그 남자에게 마음을 열었다. 심지어는 핸드폰으로 지도를 몰래몰래 봤는데 정확히 가고 있었다. 같이 말하면서 건 지 10분 정도가 됐을 때 남자는 어두침침한 골목으로 나를 안내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해는 중천에 떠있었고 시계는 오후 1시를 가리켰지만 골목은 너무 어두웠다. 이상한 마음에 핸드폰 지도를 보니 내가 가려는 방향이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혼동이 왔다. 입구 앞에서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 계속 가자고 보챘다. 나는 지도를 따라가기로 결정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남자는 내 말을 듣자 마자 얼굴이 굳어지면서 인사도 없이 떠났다. 어이가 없었다. 난 진심으로 대화를 했지만, 남자는 나를 이용한 듯했다. 만약에 따라갔으면 물건을 사라고 강요당했거나, 비싼 기차 티켓을 보여주면서 사라고 했을 것이다. 혹은 더 안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었다.
열심히 걷고 있는데 또 다른 남자가 발걸음을 맞추더니 말을 걸었다.
“안녕 옷 멋진데? 어디서 왔어?”
“한국에서 왔어! 너도 옷 멋지다”
“고마워 나는 스리랑카에서 왔어! 스리랑카 알아? 좋은 나라야”
“스리랑카 알지. 인도 옆에 있잖아.”
“그나저나 지금 어디 가는 길이야?”
“지금 뉴델리 기차역에서 기차 티켓 사려고”
“이번에 뉴스 못 봤어? 뉴델리역에서 사람들 죽었잖아. 엄청 위험해. 그리고 나도 기차 티켓 사려고 뉴델리 2층 갔는데 거기서 문닫혔어. 너 외국인 정보센터 먼저 간 다음에 뉴델리 2층으로 가야 돼. 그래야 티켓 살수 있어!”
“아진짜? 외국인 정보센터는 어디야? 거기부터 가야겠네”
나는 의심 없이 또 믿어버렸다.
남자는 내 핸드폰을 가져가더니 지도에 외국인 정보센터를 찍었다. 지도는 뉴델리역의 정반대를 가리켰다. 남자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쉬지 않고 말을 했다. 나는 뭔가 홀린 듯 그 남자 말에 따르고 있었다. 우리는 툭툭 앞에 섰다. 남자는 말했다.
“일단 툭툭에 앉아봐, 내가 외국인 정보센터까지 같이 가줄게”
“일단 알겠어, 한번 가보지 뭐”
From Toro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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