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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Oct 21. 2022

소소한 사건들


* 글 제목은 롤랑 바르트의 책 <소소한 사건들> 제목에서 따옴.



<소소한 사건들>. 이 책은 서점 뮈르달에서 올 가을 컬렉션으로 소개한 책들 중 하나인데 서점 개업 한 달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고 프랑스 작가를 좋아하는 손님, 지금 사지 않으면 곧 팔릴듯한 레어템(!) 같다고 하시며 냉큼 안아가신 손님, 문을 열고 바로 책장으로 직진하여 이 책을 집어 오신 손님 등 손님들의 품에 안겨 총총 나를 떠나가는 그 뒷모습들이 떠오른다. 서가의 새로움을 위하여 여간해서는 기존의 책을 재주문하지 않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이 책만큼은 자꾸만 한 권씩 더 장바구니에 넣게 된다. 신기하다. 또 누구의 품에 안겨 갈까.



뮈르달의 올 가을 컬렉션 주제는 "사진"이다.

"가을에는 인생에 밑줄을 긋고 한 시절에 돋보기를 들이댈 수 있다."
- 김현,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이 문장을 모티브로 하여 사진, 기록, 장면, 인생, 순간 등의 연결로 책을 선정했고 그 책들을 컬렉션 평대에 전시 중이다. 서점을 오픈하며 첫 컬렉션의 키워드를 많이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새로운 시작 앞에서 참으로 신기하게 그동안 잊고 지내던 또 다른 로망이 떠올랐고 "사진"이라는 키워드를 골랐다. 복선처럼 언젠가는 그 꿈도 사부작사부작 현실이 되어있기를.



각 포털 사이트에 카페 비크&서점 뮈르달 상호명과 영업 정보를 등록한 후 굉장히 많은 전화를 받는다. 반갑지만은 않다. 대부분이 홍보마케팅 전략을 컨설팅해주겠다는 영업 전화이기 때문이다. 텔레마케팅에 그치지 않고 직접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부부는 직업상 매일 수백 통의 텔레마케팅도 해봤고 소위 게이트 크래시(Gatecrash)이라고 부르는 '무작정 찾아가는 대면 영업'도 지겹도록 해봤다. 산업군은 다르지만 그 입장을 매우 잘 알고 있어서 최대한 그들이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도록 완곡하게 거절하는 중이다. 홍보마케팅 제안을 거절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 하나이다. 이제는 그런 게 지겹기 때문이다.


전시회 개막과 동시에 짜잔 폭죽을 터뜨려서 짧은 기간 중 최대의 흥행을 이끌어내느라 애쓰는 것에 지쳤다. 인위적으로 리뷰를 늘리고, 돈을 주고 블로그 기록을 사서 '있는 척' 하는 게 싫다. 상호명을 검색했을 때 방문자 리뷰가 없는 경우, 고객들은 방문을 망설이게 된다면서 어쩌려고 이러냐는 식으로 겁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 개업한 지 한 달 밖에 안된 가게인데 상세한 방문 기록이 흘러넘치고 인위적인 리뷰가 가득 올라와 있는 장면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거기에 굳이 우리까지 동참하고 싶지 않다.


아이슬란드 최남단의 작은 마을, 비크이뮈르달 어느 골목에 있을법한 동네서점이자 동네 카페가 되고 싶다. 멀리서도 찾아올 핫한 공간 말고, 동네 사람들에게 편안한 공간이 되길 바란다. 그래야 천천히 오래갈 수 있을 테니까. 한번 방문한 손님이 이후에 또 여기를 찾아주고, 어느 날은 가족들에게도 소개하고, 그러다가 다른 지인들과도 두어 번 방문하면서 그렇게 알려지면 좋겠다. 우리는 또박또박 걸어가고 싶다.



어제는 어느 회사의 팀장님(처럼 보이는 분)과 팀원(처럼 보이는) 두 분이 오셔서 커피를 사이에 놓고 업무 이야기와 일상 이야기를 오가며 열띤 점심시간을 즐기고 계셨다. 팀장님이 서점의 서가에서 <도시인의 월딘>을 가지고 오시더니 한참 동안 그 책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는 길에 팀원 중 한 분이 그 책을 사러 나에게 오셨다. 팀장님께 선물하려고 하시는 것 같았다.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을 포착하여 그것을 선물로 준비했던 때가 언제였나.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 마음을 헤아리며 선물이 오가는 분위기가 부러웠고, 그 선물이 다름 아닌 '책'이어서 더 기뻤다.



햇빛이 쏟아져내리던 어느 오전, 서가의 책들을 정리하다가 내가 무척 좋아하는 그림책 하나를 휘리릭 펼쳐 들었다. 어김없이 눈물이 주르륵,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마음도 따뜻해졌다. 다가 올 오늘 하루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관대할 수 있는 온기 한주먹을 주머니에 넣게 된 것처럼 든든했다. '아름다운 이 그림책은 어디로 가게 될까'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섰는데 거짓말처럼 잠시 후 한 손님의 품에 안겨 다시 나에게 왔다. 혹시 눈물이 날지도 모르니 공공장소에서 읽으실 때는 조심하셔야 한다고 당부의 인사와 함께 책을 보냈다.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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