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여행 3편
나의 어린 시절이었던 1980년대엔 대전의 동네 뒷산에서 뛰어 놀고 맑은 약수도 마시며 계곡 물속에서 도롱뇽알도 관찰할 수 있었다. 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지나며 그렇게 깨끗했던 자연환경에 아파트들이 엄청나게 들어섰다.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뒷산을 바라보며 마음 한편이 이상했다. 그땐 그게 좋은지 안 좋은지의 판단도 할 수 없던 나이였다. 그렇게 들어선 아파트들이 멋져 보였는지 건축가를 꿈꿨다.
그래서 난 대학에서 태양광 건축을 공부했다. 우리는 건축을 집 짓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건물의 에너지를 태양에서 얻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건축대학에 입학을 한 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IMF라는 커다란 경제 위기를 맞이했다. 그 시절 대학생들은 취업을 위한 스펙으로 어학연수나 유럽 배낭여행을 선택했다. 당시 건축과 친구들은 주로 유럽 건축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나는 미국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그때 내가 미국 대신 유럽을 선택했다면 그리스와 로마를 시작으로 중세의 모로코, 스페인을 지나 프랑스의 근대건축 탐방을 했었을 것이다.
당시 건축 시장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나는 환경교육을 다시 공부하고 교사 직업을 시작했다. 이제는 15년차 환경교사가 되었고, 올해 1월 중순에는 환경교사모임과 함께 스페인 환경학교 탐방을 떠나게 되었다. 나는 9일간의 일정으로 오전에는 학교와 환경단체를 탐방하고, 오후에는 건축여행을 즐겼다.
1월 11일
1, 2편에서 소개한 캄보디아 씨엠립과 태국 빠이 마을에서의 개인 여행을 마치고 카타르를 경유하여 초겨울 날씨의 스페인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한다. 공항버스로 까딸루냐 광장에 내려, 걷기만 해도 즐거운 가우디의 밤거리를 느낀다. 100년도 더 지난 가우디의 인도 타일, 벤치, 가로등과 건물을 지나 까사 바뜨요 주택 바로 옆 숙소에 도착한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환경교사모임 친구들과 숙소에서 반갑게 만날 수 있었다.
1월 12일
오늘은 24번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한다. 거리엔 자전거 신호등이 따로 있었고 대중교통은 75분 이내 환승되며 연속 3회까지 가능하다. 오늘 만난 코스모 카이사 과학관(Cosmo caixa science museum)의 하늘은 파랗고, 구엘 공원(Guell park)의 라벤더는 너무 향기로웠다. 건축은 자연의 일부여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답게 구엘 공원은 자연과 가장 가까운 모습에 닮아 있었다. 여러 건물들과 정원을 걷기만 해도 행복하다.
까사(Casa)는 집이라는 뜻으로 까사 밀라(Casa mila)는 밀라의 집이라는 뜻이다. 까사 밀라 주택은 지중해 바다를 모티브로 파도가 만들어내는 둥근 곡선의 모양으로 발코니를 만들어냈다. 지붕은 그의 트레이트 마크인 타일 조각을 이용해 만든다. 보라색, 갈색, 초록색, 파란색 등의 타일이 햇빛을 반사해 아름다운 색을 만들어 건물 주변에 무지개 물결을 만들어낸다. 돌아오는 저녁길의 까사 밀라의 불빛은 은은했다.
1월 13일
100년도 더 된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고 있는 화브리까 환경교육센터(LA FÀBRICA DEL SOL)는 코르크벽 단열, 지열, 태양광, 자연환기, 빗물 및 바이오에너지의 사용으로 건물의 에너지 자립율이 약 45%에 이른다. 또한 이 교육센터는 유치원, 학교 및 평생교육 기관의 약 70%에 환경·지속가능성 교육을 위한 지속가능한 학교 만들기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의 에너지전환은 스페인의 탈석탄, 탈원전 정도는 되어야한다. 스페인은 석탄 화력발전소를 2030년 까지 폐지한다. 원자력(핵)발전소 3기도 2035년까지 순차적으로 멈추고 재생에너지는 2030년엔 74%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어 방문한 Escola Virolai 학교에서 놀란 사실은 무상급식이 세끼나 제공된다는 것이었다. 스페인의 기본 학제는 3+6+4+2로 유아 3년, 초등 6년, 중고등 4년의 의무교육과 고등 2년의 선택과정이다. 오전 간식, 점심 급식 외에도 하교길에 오후 간식까지 총 3식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이와 같은 무상교육과 급식은 난민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1월 14일
개교 2년차 Maria Espinalt 중고등학교는 교육과정에 환경·지속가능성을 반영하여 태양광 발전, 교내 온실 재배와 해변의 미세플라스틱을 측정하고 있다. Institut Quatre Cantons 중고등학교도 환경·지속가능성 교육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리사이클, 학교 정원, 기후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들과 한국의 환경교육을 이야기 나눴다. 그러나 그들이 정작 궁금한 건 한국의 고3 들은 정말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대입을 준비하는 끔찍한 하루를 보내냐는 질문이었다. 그들은 한국 고3의 하루를 프랑스 다큐에서 보았다고 한다. 난 그게 사실이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언젠가는 바뀔 거라 답했다.
바르셀로나의 또다른 매력은 바다에 면해 있다는 것이다. 지중해의 푸른바다가 하늘과 맞닿아 끝없이 펼쳐진다. 바르셀로나의 직장인들은 2시간의 점심시간 동안 산미구엘 해변에서 휴식을 취한다. 나 역시 해변에 앉아 살며시 눈을 감고 지중해의 따뜻한 햇살을 느끼며 힐링해 본다.
1월 15일
아르누보 건축의 대표적인 가우디는 1852년 바로셀로나 구리 세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하늘, 구름, 바위, 나무, 동물 등 자연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아르누보의 자연주의 건축에 관심을 갖고 바르셀로나 건축학교 졸업 전부터 건축가의 이름을 알린다. 그리고 건축주 구엘을 만나 일생동안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그로인해 구엘 주택, 구엘 공원이 만들어진다. 바로셀로나 거리의 가로등, 벤치, 주택, 성당에 이르기까지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건축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우디의 자연주의 곡선의 미를 유감없이 발휘한 건축물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다. 첨탑은 옥수수를 닮았고 조형물은 지중해 식물과 과일 모습으로 색과 형태가 아름답다. 그는 1882년 파밀리아 성당 건축을 시작하여 74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약 40여 년간 건축에 집중했다. 현재까지 성당은 약 140년 째 공사 중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 그는 죽어서도 공사 현장을 떠날 수 없어 현재 성당 지하에 안치되어 있다.
내가 건축학부 때 미국 어학연수 대신 유럽 건축기행을 했었더라면 아마 지금은 건축 일을 하고 있겠지?
1월 16일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환경교육은 자기 주도, 협동과 참여 및 문제의 원인 발견과 함께 지역과 지구에서 행동과 실천하는 교육이다. 까탈루냐 유네스코 센터(Centre Unesco de Catalunya)에서 우리가 꿈꾸는 환경학교를 만났다. 이제 한국도 환경교육을 필수로 해야하지 않을까.
이후 방문한 19세기 천문학자 조셉의 오래된 집은 우라니아 시립 커뮤니티 센터(Vil·la Urània)로 탈바꿈했다. 제로에너지(Zero Energy)건물로 지열 난방(100m의 11개의 관), 태양광 19kW, LED 전등을 사용했다. 실내정원은 초록초록했고 20,000 리터의 빗물탱크를 지하에 설치했다. 근처엔 제로 웨이스트 샵, 소분샵, 유리병 사용 슈퍼가 있고 시장에선 비닐 사용을 안 한다.
3호선을 타고 몬주익 성(Montjuïc)에 간다. 애초의 몬주익은 15세기 건물로 바르셀로나 방어 기지였다. 그러나 1808~1812년엔 나폴레옹의 군사기지로 사용되었다. 게다가 19~20세기엔 까딸루냐의 민족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노동자에 대한 고문실, 교도소, 사형장으로 사용되어 바로셀로나 사람들에겐 슬픔의 장소이다. 그렇게 까딸루냐는 언제나 독립투쟁 중...
1월 17일
오늘은 Be Challenge 사무실을 찾는 날이다. Be Challenge는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연결한 디자인 사고와 챌린지 학습을 온라인 교육 플랫폼으로 제공하는 글로벌 그린 스타트업 단체이다. 이곳은 디자인 사고 7단계의 프로젝트 플랫폼(https://bechallenge.io)을 제공한다. 한국의 한밭대 적정기술연구소, 서울창업허브, 서울혁신파크나 헤이그라운드와 유사한 플랫폼이다.
Be Challenge를 나와 엔칸츠 벼룩시장(Encants Barcelona)을 방문한다. 엔칸츠 시장은 13세기 이전부터 도시의 일상품을 거래하던 유럽에서 제일 오래된 중고 벼룩시장이다. 이 시장은 2013년 건축가 페르민 바스케스의 손을 거쳐 명물 시장으로 재탄생했다. 약 24m 높이의 기둥 위에 거울로 만들어진 천장에는 시장의 모습이 반사되어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시장엔 없는 것 빼고 전부 다 있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중고품들이 있었다. 태국의 여름에서 스페인의 초겨울로 날아온 나는 추위에 감쌀 목도리를 하나 구입했다.
1월 18일
구엘 공원에서 도보로 20분, 버스로는 2-3정거장이면 현지의 젊은이들만 찾는다는 로비라 언덕(Turó de la Rovira)이 있다. 지중해와 가우디의 파밀리아 성당이 내려다 보이는 로비라 언덕은 눈이 부시게 파란하늘과 바다를 볼 수 있는 매우 활기찬 곳이다. 우리나라의 남산 전망대 같은 곳인데 시내와 지중해 전망과 붉은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다.
해질 무렵 이 언덕엔 젊은이들이 와인 한 병씩 들고 일몰 속에 저물어가는 하루를 소소하게 이야기 나눈다. 나는 그들에게 와인 한잔을 얻어 마시니 지는 석양의 빛을 닮은 와인이 내 몸을 따뜻하게 감싸준다. 파란하늘 그리고 일몰을 일상으로 만나고 낮은 집값과 보편적 복지에 기뻐하는 바르셀로나 사람들, 그들은 참 복 받은 사람들이다. 난 매일 석양을 보기 위해 로비라 언덕에 올랐고 가우디의 건물과 지중해에 저무는 태양을 그림에 담았다.
1월 19일
바르셀로나의 도심은 좁은 골목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거리마다 100년을 넘은 건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중심으로 여러 광장들과 전통 가게들이 있다. 바르셀로나는 건축가 가우디가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우디의 7개 건물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로마 유적(1~6세기)에서 고딕 양식(12~15세기) 그리고 모더니즘 건축(19~20세기)에 이르기까지 나에겐 충분한 바르셀로나 환경과 건축 여행이었다. 아직도 먼지소굴인 한국에 다시 도착한다.
숭문중학교 환경교사
환경교사모임 대변인
신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