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자꾸 엉킨다.
점심에 남편과 샤부샤부 냄비를 식탁에 올려놓고 맛있게 먹는데, 남편이 뜬금없이 이런다.
"어머님 두 분 처음 만나실 때, 샤부샤부 먹었던 거 생각나?"
친정 엄마와 시어머님이 첫 상견례 했을 때, 그러니까 딱 33년 전 얘기다. 난 입에 넣은 떡을 오물오물 씹으며 답했다.
"…? 둘이 무슨 샤부샤부를 먹어?"
"샤부샤부 먹었어!"
남편이 확신에 찬 어투로 눈에 힘을 팍 준다.
"말도 안 돼. 무슨 어려운 상견례 자리에서 샤부샤부를 먹어? 호텔에서 차 마셨어!"
"…그런가?"
한쪽이 강하게 주장하면, 다른 쪽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우리가 싸우지 않고 30년 넘게 서로 잘 지내는 방법 중 하나다.
궁금하긴 하다. 진짜 그때 뭘 먹었는지.
그렇다고 벌써 80넘은 양쪽 노모에게 물어보면 아마 둘 다 딴 얘길 할 게 뻔하다. 호텔 뷔페를 먹었다거나, 아니면 회 떠다 함께 소주잔 부딪쳤다 할지도 모를 일이다.
…증명할 방법이 없다.
밥을 먹고 나서 커피를 마시는데 내가 눈앞에 파키라를 보며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집 파키라 진짜 많이 컸지. 우리보다 키가 더 컸어."
춘천에서 제주까지 끌고 왔는데 다행히 잘 적응해서 살고 있다. 이젠 '식물'보다 '나무'에 가깝다.
"몇 년 됐지? 이십 년도 넘었지. 근데 누가 사 왔더라?"
내가 또 괜한 걸 물었다. 남편이 말했다.
"우리가 회사 오픈할 때 그전 회사 직원이 축하한다고 사 왔어."
"…? 뭐? 아니야! 엄마가 우리 딸내미 낳았을 때, 돈 많이 벌라고 터미널에서 사 왔다던데?"
"무슨? 아니야. 난 그 회사 직원 이름도 기억하는데? 박은정이라고."
남편이 또 확신에 차 말한다. 구체적인 이름까지 나오니, 이번엔 내 꼬리가 꼬르르 내려간다.
"정말?"
"그래. 죽은 줄 알고 베란다에 겨울에 내버려 뒀는데, 살았잖아. 그게 바로 회사에서 집으로 들고 들어온 첫 해 겨울이라고."
"…?"
정확한 해까지 기억하니, 앞뒤가 맞는 듯하면서… 모르겠다. 뭐, 이렇게 일치한 기억이 없냐? 둘이 손 꼭 마주 잡고 30년 넘게 같이 산 부부 맞아?
이젠 정말 헷갈린다.
둘이 30년 넘게 오래 산 만큼 기억이 꼬인다. 꼬이다 못해 어떤 건 왜곡되고 심지어 없던 기억 조작까지 들어간다.
이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 진위를 확인할 일기를 더 꼼꼼히 자세히, 하나도 빠짐없이 사건 기록하듯 써야겠다. 그리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해서 더 이상 '뇌세포' 시놉이 뚝뚝 끊겨나가는 건 막아야겠다. 그래야 나이 들어 또 서로 딴 얘기 안 하지.
나름 대책이라고 고런 기특한 생각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는, 내가 말했다.
"옛날 일이 자꾸 헷갈리는 것 같긴 해."
"그러니까…. 이러다 우리 제주에서 태어났다 우기겠어. 고향이 제주라고."
"맞아. 나도 딸내미, 제주에서 낳다고 우길까 걱정이네."
후유.
오늘도 건강에 좋다는 샤부샤부 맛있게 끓여먹고, 둘이 내쉬는 한숨이 깊다.
우린 제주로 이주한 지 이제 1년 넘은 육지 새내기다.
…그건 확실한 팩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