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그래비티 에세이: 프랭코
작년 거제에서 강군님을 만났다. 거대한 몸집에 땀에 잔뜩 찌든 표정으로 커뮤니티 공간의 화장실과 씨름하고 있는 모습이 기억난다. 그게 강군님을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모습이다. 그때는 책을 만드는 사람과 글 쓰는 손님으로 만났다. 난생처음 질문하는 학생 같은 표정으로 나에게 책 추천을 물어보았을 때가 기억나는데 뭔가 기쁘다고 생각했다. 어렵지만 글 쓰는 마음을 가로막는 응어리를 치우고 꼭 풀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 해 여름부터 겨울까지 거의 매주 거제에 들러 사람들을 만났다. 방구석의 안락함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매주 만나는 소소한 모험과 다양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의 얼굴을 덕분에 기분 좋은 피로감과 원동력을 얻게 되었다.
그중에서 차츰 밝아지는 강군의 표정이 가장 좋았다. 어려운 기억을 물리치고,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점을 되찾고 있는 것이다. 물을 두려워하더라도 자신이 본래 되고자 했던 존재의 섬으로 헤엄쳐나가는 강군님을 나는 열렬히 응원하고 싶었다. 책을 만드는 조금 적어도 좋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동안에는 다른 참여자들과 유지해야 할 어떤 공정함이 필요했고, 또 나 역시 손님으로 거제를 방문한 것이라 눈빛으로만 박수와 격려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무더운 거제에도 고독하리 만큼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창업을 위해 거제에 남게 된 강군님, 그리고 새로 합류한 그루 님과 뭐라도 좋으니 이곳에서 작당을 벌여보자라는 마음을 나누었다. 가을과 겨울, 그리고 새로운 봄을 끝에 로컬 그래비티라는 회사를 시작했다.
로컬 그래비티에서 예전 직장에서 직군이 명확한 그루 님과 달리 강군님은 이제 시작하는 회사의 가치와 계획과 세세하고도 끝없어 보이는 해야 할 일들을 맨 몸으로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아마도) 자신의 역할에 관해 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나는 부산에 떨어져서 거제의 새소식을 듣기만 하고 겨우 입만 놀리고 있는 상황이 었지만 여러 가지 질문과 응원을 함께 뭉쳐 던지기도 하고, 직접 만나 같이 글과 말로 같이 정리해보며 상황이 나아졌으면 했다. 물론 강군님은 나의 그럼 좁다란 걱정과 달리 자기 키만큼 더 크고 멋진 우회로를 걸으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로컬 그래비티의 일은 현장의 일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인간적인 면을 유연하게 담을 수 있다. 혼자로는 힘들고, 함께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수록 맥락이 더 깊어지고, 일은 더 즐거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작년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강군님의 앞날을 응원하고자 한다. 멀리서 관망하며 무관심한 그런 종류가 아니라 나의 색으로 조금이나마 채색되며 이 일의 의미가 한 층 풍부해지고 지속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때때로 부산에서 제멋대로 소외감을 느끼고 이제 어쩌려나 싶을 때면 구출 대처럼 소식을 전하고 나타나는 강군님과 그루님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두고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