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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예지 Jan 26. 2024

01. 책방의 불빛은 언제나 옳다 1

우아하지는 않아도 비굴하지는 않게

  “책방이 생긴 것 같아.”


  퇴근한 남편이 삶의 낙을 잃어버린 고양이에게 생선을 던져주는 느낌으로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잘못 본 거 아냐? 주택뿐인 이 골목엔 책방이 들어올 자리가 없는데?”

  “요기 아래, 차량 진입로 있잖아, 거기 생겼더라고. 분명, 책방이었어. 입간판에 그렇게 쓰여 있던데? 책, 커피, 굿즈...”


  언덕 아래 삼계탕집에서 오랜만에 한방 삼계탕 한 그릇을 먹은 후, 우리는 천천히 골목길을 걸어 올라왔다. 깔딱 고개에서 숨을 한 번 고른 후 우회해서 몇 걸음쯤 좀 더 올라와서야 알게 되었다. 그 길은 평소 차로 출퇴근하는 남편이 매일 드나들지만 뚜벅이 생활을 하는 나는 좀처럼 가지 않는 길, 한낮엔 길고양이가 느릿느릿 걸어 다니며 한 줌의 햇볕을 쬐는 한적한 골목길이었다.


  그 길목에 남편의 말처럼 떡하니 책방 간판이 올라와 있었다. 하루아침에 생긴 비밀스러운 초콜릿 집처럼. 유리 벽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옛날 영화 포스터, 포스터 너머 언뜻언뜻 비치는 서가, 서가를 가득 채운 책들....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달콤한 초콜릿 같은 책 한 권을 손에 넣기 위해 출입문을 열자, 서점 대표로 보이는 젊은 여성분이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어서 오세요.”

  문에 매달린 종이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그 무렵, 한창 진행 중이던 집 재연장 계약이 끝났다. 재연장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하느라 골몰하는 동안, 작은방 너머 대로변이 준공 중인 아파트 건물에 가려졌다. 창문을 열 때마다 회백색 건물이 거대한 벽처럼 칙칙하게 시야를 가로막았다.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의 사람이 살게 될지 모를 아파트가 새삼 이렇게 빨리도 지어지는구나 싶어 아연해졌다.


  가로막힌 풍경을 내려다보는 일은 고역이었다. 숨이라도 쉬기 위해 창밖을 내다보면 매일매일 드높아져 가는 아파트의 모습에 한껏 우울감만 밀려왔다. 지난했던 폭염이 거짓말처럼 물러간 가을, 언덕배기 신혼집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여느 해처럼 감미로웠지만 작은방 창문을 더는 열지 못했다. 그렇게 가로막힌 풍경과 마음의 거리를 두길 몇 날, 어느 밤엔가는 난데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이 집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기대할 만한 것이 남아 있긴 한 걸까?’


  하루 대부분을 집에서 머물다 보니, 점점 낮아지는 집에 대한 기대치에서 오는 충격이 예상보다 크게 다가왔다. 역세권, 숲세권, 스벅권, 올영권 같은 ‘세권’에 대한 욕망은 진작 포기했지만, 때때로 흠처럼 느껴지던 조건에 대한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탁 트인 대로변이 있어서였다.


  간신히 뚫어놓은 숨구멍.


  언덕보다 높다란 아파트가 들어서는 일만으로도, 숲세권에 버금가는 만족감을 주었던 조망권이라는 숨구멍이 간단히 메워져 버렸으므로. 그 무엇도 변화무쌍한 도시의 생태계 안에서 온전히 버틸 수 없음을, 점진적으로 사라져 간 대로변 풍경을 보면서 체감하게 되었다.     




  한 권의 인터뷰집, 두 권의 에세이집을 출간하면서 적지 않은 책방을 돌아다녔다.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는, 책이 매개가 된 자연스러운 여정이었다. 낯선 동네나 지역에 갈 일이 생기면 인근 책방을 방문했다. 책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될수록 지역 곳곳에서 책의 유통망 역할을 하는 책방의 존재가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두 해 전 여름, SNS를 통해 알게 된 책방이 한 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오산에 있는 책방 겸 카페인 하프 앤 보울로,  작가의 낮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두 권의 에세이집을 차례대로 입고해 주시고 홍보해 주신 대표님께 어떤 식으로든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갑작스럽게 연락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대표님을 만날 수 있었고, 꽤 오랫동안 책과 책방 운영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헤어질 무렵, 카페 시그니처 커피를 한가득 담아주시며 건넨 한마디가 여태 선명한 깨달음으로 남아 있다.


  “작가님, 집과 가까운 곳에 거점 서점을 꼭 만드세요. 분명 좋은 에너지가 되어줄 거예요. 저희 책방은 작가님이 자주 방문하기엔 거리가 너무 멀잖아요.”


  책방에 관해서라면 심리적 거리를 우선했던 내게 마음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물리적 거리임을 새삼 깨닫게 해 준 한마디였다. 적지 않은 책방을 다녔지만 방문할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란 사람은

공간과 인연을 맺는 데 특별히 소질이 없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런데 그런 마음이 강해진 것은 그 동안 ‘코 닿는 거리’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책방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날, 책방 대표님은 중년의 여성 손님 한 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서가를 둘러보며 책방의 분위기에 찬찬히 적응해 나갔다. 배수아, 한유주에서부터 미시마 유키오, 조르쥬 페렉, 슈테판 츠바이크 등 낯익은, 여태 읽지 못한 작가의 책들이 저마다의 존재감을 내뿜으며 서가를 차지하고 있었다. 범상치 않은 취향, 그곳은 오랫동안 숙원 했지만 차마 이 좁은 골목길에서 바라지 못했던 문학전문 책방이었다. 책방 이름은 포옹단락, ‘안기고 싶은 문장을 다루는 책방’이라는 소개 글에 절묘하게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고작 서가를 둘러본 것이 전부였지만, 단숨에 물리적 거리를 넘어 심리적 거리마저 좁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럴수도 있을까 싶게, 가까이.


  손님이 떠난 후, 스몰토크를 이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물러설 이유는 없었다. 대로변 전경은 아스라이 멀어져도, 책방의 불빛만큼은 이토록, 순식간에 가까워졌으므로.


  “안녕하세요, 책방이 생긴 걸 보고 너무 반가운 마음에 들어왔어요.”

  “아휴, 그러셨어요? 자주 놀러 오세요. 혹시 이쪽 동네 분이신가요?”

  “네, 책방 근처에서 살고 있어요.”


  대화가 어떻게 흘러가고 이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된 마음이 경직된 말투에서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날 책방 대표님과 나눴던 대화 중에서 기억나는 한마디가 있다. 이 길목을 책방의 자리로 선택한 이유였다.


  “서점 자리를 구하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냥... 여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그건 마치 몇 군데의 부동산을 거쳐 여러 개의 집을 보러 다니다 이 집의 작은방에서 내려다본 밤의 전경이 마음에 들어 계약하기로 마음 먹은 그날의 내 결심과 묘하게 닮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때때로 확고부동함이 아닌 유동하는 마음으로도 인생의 제법 중요한 선택을 는 일, 돌아보면 그랬다. 머리를 싸매며 골몰했던 선택보다, ‘까짓 한 번 해보지 뭐’하며 했던 선택에서 더 나은 삶의 의미를 발견했던 적이.


  책방 대표 님이 이 골목을 책방의 자리로 낙점할 수밖에 없었을, 선택의 기저에 흐를 어떤 마음을 가만히 헤아려 보았다. 문득, 마음의 실체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날 처음 본 책방 대표 님의 선택에 대체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숨겨진 골목 이곳저곳에 저마다의 숨구멍을 뚫듯 작은 책방이 만들어지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어설펐던 첫 만남 이후 우리는 좀 더 자주 책방에서 만나게 되었다. 물론 책방 대표님은 시간 있을 때마다 더 자주 놀러 오라고 이야기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어쩐지 자꾸만 급해지고 조급해지는 마음을 아끼고 다스려, 공간도 사람도 천천히 오래 알아가고 싶은 마음.


  책방이 생긴 후로는 이제 작은방에서 내려다보는 대로변의 풍경에 덜 집착하게 되었다. 먼 곳에서 아스라이 명멸하는 헤드라이트 불빛에 한껏 기댔던 마음을, 가까운 곳에서 일렁이는 책방의 불빛 아래 조금 내려놓게 되었으므로. 여기가 끝이면 어쩌지, 모든 기대가 한 번에 무너졌을 때 벼랑 끝에서 발견한 한줄기 동아줄처럼, 오늘도 작게 일렁이는 책방의 불빛을 간절히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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