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신유통
2018년 7월 30일 중국 스타벅스가 현지 유통기업 알리바바의 배달업체 ‘어러머’와 손잡고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스타벅스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스타벅스는 커피를 파는 기업이 아니라 공간을 파는 기업으로 인식됐습니다. 친구와 함께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공간,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하는 공간, 비즈니스를 위해 미팅을 갖는 공간. 커피는 이 공간을 구성하는 분위기, 향기, 인테리어처럼 여러 구성품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스타벅스가 공간에서 벗어나 배달을 시작했습니다.
스타벅스가 배달을 시작한 이유는 루이싱 커피에 있습니다. 루이싱 커피는 100개가 넘는 중국 유니콘 기업 가운데 하나로, 2017년 10월 28일 베이징에 1호점을 열었습니다. 이들이 유니콘 기업으로 평가받은 이유는 이들의 빠른 성장에 있습니다. 루이싱 커피는 불과 4개월 만에 시장점유율 5%를 차지하고 660개 매장을 가졌습니다. 현재 중국 카페 시장은 과도기에 있습니다. 한때 80%를 넘던 스타벅스의 점유율이 70%대로 하락한 가운데, 영국의 코스타 커피를 비롯해 여러 카페들이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타벅스를 제외한 카페들은 모두 한 자릿수 점유율을 벗어나지 못할 만큼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 가운데 루이싱 커피는 불과 4개월 만에 시장 점유율 5%를 달성한 셈입니다. 루이싱 커피의 성장 비결은 3가지입니다.
샤오미는 몰라도, 샤오미의 보조배터리를 모르는 분은 드물 겁니다. 샤오미는 중국 it 전자기기 기업으로, 과거 중국의 애플이라 불리며 2010년대 초반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당시 샤오미는 저렴한 가격에 애플이나 삼성에 뒤지지 않는 품질을 앞세워 성장했습니다. 루이싱 커피도 비슷한 전략을 취했습니다. 최고급 아라비카 원두에, 뛰어난 커피 머신을 도입했고, 중국 스타벅스 소속 바리스타를 연봉에 2~3배를 주고 대거 영입했습니다. 매년 세계 부자 순위 발표로 유명한 미국 미디어 포브스에 따르면, 스타벅스 바리스타의 연봉은 2.3만 달러라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 모바일 앱으로 주문이 가능해지면서, 매장이 아닌 곳에서도 주문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덕분에 고객은 매장에 방문해 바로 음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리스타는 이전보다 같은 시간에 훨씬 더 많은 음료를 만들게 됐습니다, 따라서 연봉이 아닌 음료 한 잔당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시점에 루이싱 커피의 제안은 꽤나 매력적이었을 겁니다. 이처럼 루이싱 커피는 제품 품질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루이싱 커피는 중국 소비자의 구매력을 감안해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루이싱 커피의 라떼 가격은 24위안으로, 중국 스타벅스 라떼보다 7위안 저렴합니다. 하지만 중국 스타벅스 라떼 가격은 중국에서만 비싼 게 아닙니다. 31위안은 약 5200원인데 한국(4600원) 보다 비쌉니다. 나아가 경제지표와 비교해보면 5200원이 ‘5200원’이 아닌 걸 알 수 있습니다. 중국과 한국의 노동청이 2017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베이징의 평균 월급은 155만 원이었고, 서울의 평균 월급은 354만 원이었습니다. 즉, 중국 스타벅스 라떼는 155만 원 가운데 5200원인 셈이고, 한국 스타벅스 라떼는 354만 원 가운데 4600원인 셈입니다. 금융 자문업체인 밸류펭귄은 이처럼 여러 경제지표를 감안한 국가별 스타벅스 라떼 체감 가격을 발표했습니다. 중국의 경우 7000원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중국 스타벅스는 기호식품이 아닌 사치품으로 인식됐습니다. 루이싱 커피는 스타벅스처럼 질 좋은 커피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마케팅을 한다고 하면, 광고나 할인 쿠폰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마케팅들은 잠재 고객군 가운데 한 명에게 노출됩니다. 그러나 루이싱 커피는 잠재 고객 한 명만을 목표로 두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5+5 프로모션이 있습니다. 5잔 구입 시 5잔을 추가 제공합니다. 즉, 잠재고객 한 명을 위한 마케팅이 아니라, 여러 잔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커피를 구입하는 한 명의 고객을 통해 많은 잠재고객들에게 마케팅을 하는 셈이죠. 이런 공격적인 프로모션이 가능한 이유는 자금력에 있습니다. 루이싱 커피는 여러 차례 투자를 받아왔는데, 지난 5월 같은 경우 2200억 원의 투자금을 받았습니다. 이런 자금력과 고객을 통한 마케팅은 성장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앞서 성장 비결로 고품질 합리적인 가격의 샤오미 전략과 다수의 잠재고객을 향한 프로모션을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루이싱 커피 성장의 핵심은 바로 중국의 신유통입니다. 신유통은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마윈이 말한 개념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문 새로운 유통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신유통은 왜 등장했으며,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신유통의 등장엔 2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채널이 서로 독립적인 채널로 존재할 때, 한계를 갖습니다. 온라인의 경우 2012년을 기점으로 성장세가 둔화 중입니다. 게다가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중국 소비자가 변합니다. 편의성을 제공하는 디지털에 익숙해진 반면 경험 중심 오프라인 소비를 선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알리바바의 티몰, 텐센트의 징동 닷컴에 이어 중국 3대 전자상거래 쇼핑몰인 vip.com 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오프라인 신규 고객 유치 비용은 76위안인데 반해 온라인은 200위안 이상입니다. 처음부터 온라인 비용이 오프라인보다 높았던 건 아닙니다. 온라인 시장이 커짐에 따라 경쟁자가 늘면서 비용이 증가하게 됐습니다. 따라서 고객에게 이전처럼 가격 할인을 제공하기 어려워졌고, 기업의 마진율은 감소하게 됐습니다. 즉, 온라인 단독 시장으론 한계가 있습니다.
중국 소비자는 편리한 디지털에 익숙해졌습니다. 미국에 블랙프라이데이가 있듯이 중국에도 블랙프라이데이가 있습니다. 바로 ‘솽스이(双十一, 광군제)’입니다. 광군제는 11월 11일로, 1이 사람이 서있는 것과 닮았다고 독신자의 날로 불립니다. 광군제는 2009년 11월 11일 처음 알리바바의 티몰이 독신자들을 기념해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2009년 매출 8천만 위안을 시작으로 2017년 매출 1682억 위안(약 28조 3000억 원)을 기록하며, 중국 최대 쇼핑을 위한 날이 됩니다. 재밌는 건 2017년 매출 가운데 90%가 모바일로 결제됐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현재 중국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틀어 최다 결제수단은 모바일 사용됩니다. 그 비중은 80%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qr코드를 통한 결제로, 오프라인 매장인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사더라도 qr코드로 결제를 합니다. 심지어 중국 거지조차 qr코드로 동냥을 할 정도입니다.
알리바바의 소매점인 허마셴셩은 중국 신유통의 대표적인 매장입니다. 결제는 qr코드로 이뤄집니다. 허마셴셩의 경쟁력 중 하나는 신선식품입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랍스터를 직접 잡을 수 있습니다. 재밌는 건 랍스터는 물론 육류처럼 다른 재료도 요리할 수 있는 요리사가 매장에 상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정 요금을 내면 그 자리에서 요리사가 해준 요리를 맛볼 수 있고, 매장 한쪽엔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로서리(식료품점)와 레스토랑(음식점)의 합성인 그로서란트로 유명한 롯데마트 서초점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중국은 생동감을 넘어 살아있는 경험을 제안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중국의 신유통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개별 채널로 존재했을 때, 뚜렷한 한계가 있었고, 소비자가 편의성이 강조된 디지털에 친숙해짐과 동시에 감각적인 오프라인 경험을 중시하면서 등장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신유통은 고객의 소비를 어떻게 바꿨을까요?
온라인과 오프라인 그리고 유통을 결합한 신유통은 여러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고객에 관련된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해, 최적의 제안이 가능해졌습니다. 또 유통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0으로 수렴하기 위한 첫 단계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이런 변화가 아닙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소비자가 구매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거칩니다. 이를 구매 의사결정 과정이라 부릅니다. 구매 의사결정 과정은 기술과 시장의 변화에 따라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기본 틀은 변하지 않습니다. 욕구 확인 – 정보 탐색 – 대안 평가 – 구매 – 구매 후 평가 순으로 진행됩니다. 디지털은 이 과정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제 반드시 집에 있는 데스크톱을 통해 정보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스마트폰을 들고 어디서든 언제든지 정보를 탐색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 qr코드나 삼성 페이 같은 결제 수단으로 결제가 간편해졌습니다. 덕분에 정보 탐색을 위해 소비되는 시간과 결제를 위해 줄을 서야 하는 시간이 줄었습니다. 즉, 과거엔 각각의 과정들이 공간과 시간의 제약으로 파편화되어 있었습니다. 디지털이 발전하고 보급되면서 이런 과정들이 하나로 결합됐습니다. 따라서 구매하기까지 걸리던 시간이 크게 단축됩니다. 기업들은 이 시간을 점유하기도, 때론 더 단축시키기도 하면서 다양한 소비방식을 소비자에게 제안하게 됐습니다.
맥락적 소비란 특정 상황에 최적화된 소비를 말합니다. 때문에 같은 제품이더라도, 소비자의 욕구에 맞춰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제안됐습니다. 루이싱 커피의 경우, 4가지 형태의 매장이 존재합니다. Elite, Relax, Pick Up, Kitchen입니다. 이처럼 구분한 이유는 상황에 알맞게 커피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Elite, Relax 매장은 스타벅스처럼 공간 중심의 매장입니다. 반면, Pick Up 매장은 오로지 테이크아웃을 위한 매장입니다. 따라서 테이블, 소파 같은 공간을 위한 소품이 없습니다. Kitchen 매장은 디저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출시한 디저트 전용 매장입니다. elite나 relax 매장은 고객의 구매 후 시간을 점유하고, 픽업 매장은 커피 자체에 집중하며 구매 후 시간 점유를 줄였습니다. 전자는 일행과 보내는 즐거운 시간이나, 자기 계발을 위한 고객의 상황에, 후자는 커피가 주는 효용을 누리고자 하는 고객의 맥락에 최적화됐습니다.
맥락적 소비가 고객이 상황에 최적화된 소비방식을 제공했다면, 심층적 소비는 오프라인의 경험은 물론 디지털을 통해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는 소비입니다. ar, vr 같은 신기술과 키오스크나 터치스크린 같은 기기들이 상용화되면서 가능해졌습니다. 중국의 스포츠용품점 인터스포츠는 ‘intelligent wall’로 불리는 매직미러를 통해, 구매자의 후기와 상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공간과 시간에서 온오프라인이 갖고 있는 장점을 결합한 소비를 즐길 수 있습니다.
라스트 마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라스트 마일은 제품이 고객에게 전달되는 마지막 1마일을 상징합니다. 즉 유통상 최종 과정을 뜻합니다. 더 이상 줄을 서서 구매를 할 필요가 없으며, qr코드로 구매가 가능합니다. 게다가 루이싱 커피는 물론 대부분의 매장에서 더 이상 영수증이 필요 없게 됐습니다. 고객은 지갑 대신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결제를 할 수 있습니다. 앞서 감각적인 경험 사례의 허마셴셩은 3km 내 30분 배달 서비스도 운영 중입니다. 모바일 주문, 매장 주문에 관계없이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건 매장 천장에 달린 컨베이어 벨트 덕분입니다. 주문을 받는 즉시, 직원이 주문대로 장바구니에 담아 컨베이어 벨트로 배송을 시작합니다. 이처럼 편의적 소비는 결제수단은 물론이거니와 구매과정에서 기술로 편의성을 극대화한 소비입니다.
한국에서도 맥락적 소비와 심층적 소비, 편의적 소비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중국과는 다릅니다. 중국의 경우, 3가지 유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파편화되어 있습니다. 생동감을 넘어 진짜 살아있는 신선식품을 제공하는 허마솅셩이나, 고객의 맥락을 고려해 4가지 형태의 매장을 운영하는 루이싱 커피를 봤을 때, 한국의 신유통은 소비자의 욕구에 맞춰 최적화했다기 보단, 새로운 트렌드를 기업 입장에서 쉬운 형태로 제안하고 있습니다. 즉, 고객을 위한 신유통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선 새로운 기준을 통한 타겟팅이 필요합니다. 과거엔 2030 여성은 카페를 많이 이용한다 처럼 인구통계학적 지표를 통한 접근이 다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카페를 이용하는 이유가 다르듯이, 성별과 나이는 고객의 취향과 상황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정량적인 지표가 아닌 정성적인 지표를 데이터 기반으로 고안해 타겟팅해야 합니다. 신유통은 결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의 유통이 아닙니다. 접근 방식이 다른 유통입니다. 이젠 기업이 아닌 고객을 위한 유통이 필요한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