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뉴스랩에 대한 회고와 느낀 점 1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들춰보다가 흠칫 놀란 대목이 있다. 장래희망을 적는 란에 <저널리스트>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지? 그 무렵 학교에서 왕왕시켰던 적성검사 따위에 PD, 기자가 어울린다고 나와서 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마 PD나 기자 중에 뭐가 좋은지 몰라서 그냥 저널리스트라고 적었을 것이다. 아무튼 쭉 막연하게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작년 여름 즈음에 어떤 사건으로 인해 내가 좋아하는 일이 정말 방송과 신문, 어쩌구 저쩌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쩐지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 세계에 적극적으로 입장하기 위해 (나름대로는) 고군분투하여 구글 뉴스랩을 시작하게 되는데...
뉴스랩을 시작하기 전에 이제 좀 구체적으로 좋아하기 시작한 일이 싫어지게 될까 봐 그게 가장 두려웠다.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도 싫어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 일을 탁월하게 잘 해내면 계속 재밌을 것도 같은데, 그 정도의 깜냥은 내게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스울 정도로 실무에 돌입하자마자 이 일이 싫어지려 했다. 나는 내 스스로에게 "온몸에 힘을 주고 있어... 열정 과잉인 것 같아... 주변을 좀 더 믿어봐!"라고 차분히 진단해주었다. 그리고 꾸준히 열정 넘치고 재수 없게 일했다.
그 조급함이 첫 번째 결과물이 발행되던 날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그날 밤 9시에 우리가 만든 것을 올리겠노라 계획했고, 약속했다. 이미 그렇게 여럿에게 약속해버렸으므로 계획은 변경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 낮 12시까지도... 낮 3시에도... 4시에도... 컴퓨터에서 실행 중인 프로그램에서 [내보내기]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대참사를 예감했다. 내 옆에 앉아있던 안나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 망한 것 같애.
그래 맞아 우리 이거 못할 것 같아!
.. 어떡하지?
안나는 나보다 한 살 많고, 건조한 표정으로 엄청 웃기고 말도 안 되는 농담을 자주 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기억 못 할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그때에도 별 표정 없이 현명한 말을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그 한 마디를 프로그램이 끝나는 때까지 단단히 마음에 새겼다. 되돌아보면 우리 팀의 멘토였던 상현님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의 능력치를 다하려 하지 말고 80% 정도만 하라고 하셨다. (밝혀도 되는 조언인가?...ㅎㅎ...) 그 말의 의미가 비슷한 뜻이 아니었나를 생각해본다.
너무 미치게 잘하고 싶었지만, 내 능력치 이상의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설사 어쩌다 그것을 해냈다고 하더라도 꾸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치게 잘하고 싶었으므로 미치게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계속 부정하는 쪽이 더 저주스러웠을 것 같다.
그 날 안나에게 그 말을 듣고 당연히 우리가 9시까지 우리의 창작물을 내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9시까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8시 50분 즈음에 9시 발행 예약 버튼을 누르고, 회사문을 박차고 나가서 치킨 가라아게와 야키토리를 먹었다. 어쩌면 포기이자 체념이었지만, 할 수 없는 것을 하고자 했을 때보다는 더 안정적으로 일했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주어진 일을 끝마치게 하고, 여전히 이 일을 좋아할 수 있도록 수호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앞으로 일을 할 때에는 언제든 한심한 사람이 되기를 더욱 주저하지 않으려 한다. 처음 계획한 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얼른 깨닫는 현명하고도 한심한 사람. 그런 의미에서 이 밖에도 느낀 바가 많지만 그것은 다음에 쓰려고 한다. 지금 이 글 또한 더 엄청 엄청 길고 멋짐이 폭발해버리게 쓰려고 했지만 그냥 이쯤 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인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