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두서없는 노총각의 dog백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흘러 추석이 되었다. 일년에 단 두번 온 가족이 모이는 자리. 모두가 "보통" 이라고 생각하는 노선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야 그다지 큰 일도 아니고 그냥 단순한 "귀찮은" 행사겠지만 그 노선에 동승하지 않은 사람들, 예를 들어 "취준생", "노총각/노처녀", "딩크족"...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귀찮은 행사가 아니라 참으로 마음 복잡하고 속 시끄러운 그런 행사가 아닐 수 없다.
1년에 단 두번 사촌들을 보는 자리, 작은어머니와 작은아버지들을 만나는 그런 자리를 나는 결코 싫어하지는 않는다. 음식을 준비하는것도 사실은 싫어하지 않는다. 음식 하는것도 좋아하거니와 오랫만에 가족들과 둘러앉아 시덥잖은 농담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한다. 안방에 누워 본방송 하고 몇번이고 케이블에서 재방송한 걸 또 콜라주 처럼 덕지덕지 붙여 특별방송이라고 내보내는 예능프로나 영화관에서 감명깊게 본 영화를 몇십분에 일도 안 되는 TV화면으로 봐야하는 특집영화들을 보느니 차라리 다리가 좀 저리더라도 기름쩐내에 코가 마비될 것 같더라도 음식준비를 하는걸 더 좋아하는 나다. 다만, 40 근처의 노총각, (대기업이나 전문직, 공무원이나 선생님이 아닌) 회사에 다니면서 본인 명의의 차와 집이 없는 남자를 대하는 주변의 시선이 껄끄러울 뿐이다.
- 이런 배배꼬인 말을 적고 앉아있는 이유가 뒤에 나온다.
남들 하는 그 모든 것들을 안 하고 있는 내가, 하나하나 클리어 했거나 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하는 괜한 자격지심에, 괜히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은 그런 이상한 느낌에, 그런 것들이 항상 나로 하여금 명절을 즐기지 못하게 하는 원인들이었던 것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 불편한 느낌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그게 나를 짓눌러서 내 나름대로의 "명절증후군" 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도 추석이 오기 2~3주 전 부터 그 "명절증후군"에 숨쉬기 힘들어 하고 있을 무렵 "명절 기차표 예매" 날이 다가왔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컴퓨터의 시계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마우스위에 올린 손가락을 달달 거리며 하등 쓸데없는 긴장감에 몸을 떨다 59가 00으로 바뀌는 그 순간 마우스를 클릭하게 만드는 그 짓을 올해도 변함없이 해야 하는 그 날이다. - 1분만에 매진된다는 아이돌들의 콘서트 티켓을 사려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럴까 싶다. -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던 나, 새벽부터 일어난 보람도 없이 결국 30분동안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다 남는 표를 억지로 사서 꾸역꾸역 내려갔던 나. 올해는 정말 '기차표 못 사면 그걸 핑계로 대고 안 가야지' 하는 탈출구를 만들어 놓고 마음 편하게, 릴렉스 한 상태에서 클릭을 했다. 그리고 정확히 1분 40초 만에 무엇엔가 홀린듯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왕복표를 샀다. "아부지 내 내리가니데이~!"
추석전날 도착하여 새벽 두시까지 밤을 까고,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송편과 전을 만들 준비를 했다. 가장 큰 작은어머니가 도착을 하셨고 함께 송편을 빚기 시작, 송편 빚기가 끝날 때 즈음 잘 나가는 사촌동생들과 제수씨들이 도착했다. 올해는 8개월 된 신상도 함께 왔으니 도착하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위풍당당하다. 녀석... 이번에 그렌저를 새로 뽑았구나, 멋진놈. 쭈그리고 앉아 송편을 빚고 있는 내 모습이 왠지 초라해 보이지만 내 인생은 내 인생이고 녀석의 인생은 녀석의 인생이니 저린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 인사를 하고 반갑게 맞았다.
그렇게 추석 행사가 끝나고 모두가 "처갓집"을 향한 후, 엄마와 나는 번아웃 상태로 누워서 뒹굴거리기 시작했다.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드라마가 재방송을 한다. 급하게 나오느라 실내화를 신고 나온 여자에게 남자는 자기 신발을 벗어 신겨준다. 여자는 한사코 마다하면서도 그 신을 신고, 남자는 여자가 신었던 실내화(슬리퍼)를 신고 멋지게 돌아서서 간다. '날씬하고 참 멋있네, 역시 배우는 배우야...' 하면서 촛점없는 눈빛으로 TV를 응시하고 있는데 -방금 TV를 '브라운관' 이라고 적었었다, 옛날사람- 뒤에서
"저렇게 해야 결혼해, 남자는 여자한테 저렇게 해야 하는거야." 엄마
"......??" 나
주무시고 있는 줄 알았던 엄마도 함께 TV를 보고 있었나보다. 갑작스럽게 들어온 훅이 호흡을 곤란하게 만든다. 이십대의 나, 아니 삼십대 초반의 나였다면 이 장면에서 화산이 폭발하듯 화를 냈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러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고 순간 호흡을 멈췄다가 피식 하고 헛웃음을 지었고 아무 말도 안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엄마의 독백,
"내가 집이라도 한 채 해줬어야 하는데, 그리고 차도 있었으면 좋았을 걸..."
".......???????"
파이팅 사인도 없었고, 주변을 빙빙돌며 날리는 잽도 없었고, 정말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에서 훅이 들어온 후, 고개를 숙인 나에게 다음 타로 어퍼컷이 들어왔다. 머리가 아찔해지는 순간, 이 상황에서 나는 무언가 대답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나는 저 독백에 대답을 한다기 보다 그 동안 내가 생각해 왔었던 것들이 내가 믿어 왔던 것들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이 상황을 먼저 정리해야 했다.
- 아니, 그럼 엄마는 지금껏 내가 너무 결혼이 하고 싶은데 내 명의의 집이 없고 차가 없어서 못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난 한번도 엄마에게 결혼이 하고싶어, 그런데 안돼, 그래서 힘들어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왜 저렇게 안타까운 얼굴로 말을 하는거지? 일단 물어보자.
"엄마 혹시 내가 차가 없고 집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거야?" 나
"그렇잖아, 집이 있고 차가 있으면 아무래도 좀 더 쉬웠겠지. 차가 있어서 데리러 가고 데려다 주고 그런 거 여자들이 좋아한다고. 너는 그런걸 아무것도 안 하니까..." 엄마
"아냐, 차 있고 집 있는 사람들도 결혼 안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을 해." 나
"하긴 그것도 그렇다." 엄마
"그리고, 너 뱃살만 좀 줄이면..." 엄마
훅과 어퍼컷에 이어서 다운이 된 나를 사정없이 밟아버리시는구나. 뱃살이라니, 이건 정말 상상도 못했던 공격이다. 예상치 못했기에 더욱 데미지도 컸던 공격.
뱃살 이야기는 할 수 있다. 못 살던 시절에야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을테고 아프리카 어디 부족은 살찐 사람이 인기가 많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시절, 그 장소에서의 국한된 이야기고 여긴 2018년도의 한국, 늘씬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모두들 닭가슴을 뜯어먹고 브로콜리를 씹어먹으며 헬스클럽으로 무거운 발을 옮기고 그 결과를 찍어서 경쟁하듯 SNS에 올리는 곳이 아니던가, 내가 음식 사진을 신나게 올려대듯이 말이다. 하지만 엄마의 말은 그런 맥락이 아니었다. "결혼"과 연관된 "뱃살" 은 결혼을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이다. 나는 결혼을 너무나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는데 집이 없고 차가 없고 배가 나와서 못하고 있는 마흔 가까운 노총각이었던 것이다, 우리 엄마의 눈에.
엄마와 한번도 그런 이야기를 해 본적도 없고, 엄마 역시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명절날 내 눈치를 보는 우리 친척들처럼 엄마도 눈치를 보고 있었나 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 요즘말로 "할많하않"상태였나 보다. 그런 엄마의 눈에 비춰진 사촌동생들의 모습은 나를 집이 없고 차가 없고 배가 나와서 결혼을 못하고 있는 노총각으로 만드는 촉진제가 되었었던 모양이다.
- 사실 아까부터 차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지만 나는 지금 면허도 없다. 면허증을 따려고 하면 항상 다른 급한 일이 생겼고 그러다 보니 지금이 된 것이다.
완전히 만족하진 않았지만 근 일년간은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산다고 자부하고 있었고 결혼을 안(못)한 모든 청춘남녀가 그렇듯 나는 인생의 우선순위를 결혼에 두지 않았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 생각했고 그걸 증명하듯 비싼 음식도 사 드리고 공연도 보여드리고 용돈도 드리고 하면서 잘 살고 있다고 계속 어필해 오고 있었다, 나름대로. 그래서 엄마도 그렇게 날 봐 주고 있는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 엄마의 눈에는 나는 "결혼을 못 하는 사람" 이었다. 엄마가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생각을 못했기에 더욱 충격이 컸고 아무렇지 않은 듯 크게 웃으며 넘어갔지만 계속 마음이 무거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집을 사고 차를 사고 결혼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럴 생각은 더욱 없다. 결혼을 안(못)하고 있는 상황이 죄송스러워 불효막심한 이 자식은 웁니다 이런 신파극을 찍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누구보다 날 이해하고 날 믿어주고 내 편이 되어 줄 거라 생각했던 엄마의 입에서 나온 너무나도 의외의 발언에 생각보다 정신적인 데미지를 많이 받았던 듯 싶다. 아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 졌는지도.
- 여기까지 쓴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았다. 참 두서없고 혼란스럽다. 그런데 내 기분이 정말 그랬다.
- 솔직히 지금도 그렇다.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이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냥 하늘 우러러 부끄럼 없이... 라고 하기엔 너무나 부끄러운 짓을 많이 하긴 했지만, 아무튼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합법적인 인생을 살면 되는것이 아닌가. 엄마의 마음이 그렇다고 해서 엄마를 위한 인생을 살아주지는 못하겠지만 어쨌건 나는 "결혼을 못 하고 있는 사람" 이었다. 그래, 나는 그런 사람. 앞으로 얼마가 될 지는 모르고 어쩌면 평생 이렇게 살 지도 모르겠지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