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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만 Feb 14. 2022

다이어트하는 건 고양이인데... 집사가 더 힘든 이유

[혜민의 참깨와 함께⑪] 누군가의 밥상이 신경쓰인다면



참깨가 우리 집에 온 지 1년이 되었다. 인스타그램에 참깨 일상을 공유할 계정을 만들어 두근거리는 마음을 담았던 후로 1년이 지난 것이다.



집사인 내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참깨의 예방접종을 맞히는 일이었다. 작년 1월, 참깨를 처음 만나던 날이었다. 참깨를 임시보호 하던 분은 내게 참깨의 건강수첩을 주셨다. 당시 필요한 접종은 다 했으니 1년이 지난 후 챙겨줬으면 한다고 당부하셨다.


             

▲  우리 참깨의 건강수첩 ⓒ 조혜민



얼마 전, 접종을 위해 동물병원을 찾았다. 참깨 이동장을 들고 동물병원에 걸어가는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솔직히 나도 느꼈다. 이전과는 다르게 참깨가 조금, 아니 많이 무겁다는 것을. 하지만 내 팔의 감각을 믿지 않았다. 내 눈에 참깨는 여전히 작고 귀엽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사선생님이 참깨를 체중계에 올렸을 때, 나는 더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한살이 조금 넘은 참깨의 체중은 5.2kg이었다. 의사선생님이 말했다. "참깨 무게가 조금 나가네요." 사실, 최근에 내가 참깨를 부르는 애칭이 바뀌긴 했다. "아구, 우리 뚠뚠이!!!"


             

▲  우리 뚠뚠이 ⓒ 조혜민



입이 짧고 까다로운 고양이었으면 하는 마음


집사로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난 참깨의 체중보다 식성에 관심이 많았다. 나를 만나기 전, 꾸준히 자율급식을 해왔던 참깨는 우리집에서 뭐든 다 잘 먹었다. 고양이가 입이 짧고 까다롭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참깨는 아니었다. 어떤 사료든, 습식캔이든 잘 먹었다.



이처럼 잘 먹는 참깨의 모습이 좋으면서도, 한편 속상했다. 참깨는 가끔 사료를 토했다. '이 집에서 언제든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참깨가 급히 배를 채우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나와 우리집이 참깨에게 아직 편하지 않아서 비롯된 일인 것만 같았던 것이다.



나의 이런 고민을 참깨도 알았던 걸까. 한두 달 정도 시간이 흐르자 참깨는 사료를 남기기 시작했고 선호하는 츄르도 생겼다. 참깨는 맘에 들지 않으면 냄새만 맡고 고개를 돌리기 일쑤였다.



그 덕분에 참깨가 외면한 사료와 간식은 방 한편에 남기 시작했지만 나는 뿌듯했다. 이제야 참깨에게 내가 가족이 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행복한 나는 참깨가 좋아하는 간식과 사료를 맘껏 먹을 수 있도록 챙겨주었다. 그리고 우리 참깨는 '뚠뚠이'가 되었다.


            

▲  1년 전 참깨의 모습 ⓒ 조혜민



특명, 참깨 다이어트를 성공시켜라



체중 조절을 위해 의사선생님이 제안한 제한급식을 시작하기 위해 집에서 자료들을 뒤적였다. 자율급식을 할 경우, 고양이의 식사량을 제대로 알기 어렵고 고양이 역시 먹는 즐거움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한 살 이후에는 제한급식을 하는 게 비만 때문이 아니어도 필요하다는 얘기들이 이제서야 귀에 들어왔다. 반성한 나는 제한급식기를 바로 구입했다.



하지만 제한급식기를 낯설어 한 건 참깨가 아닌 나였다. 내 눈엔 급식기가 정해진 시간에 주는 사료양이 (실제로는 아니지만) 너무 작아 보였다. 텅 빈 그릇 앞에서 참깨가 반짝이는 눈으로 애옹하며 울 땐 사료 봉투를 들고 수없이 고민했다.



가장 난처한 건, 그동안 내 밥상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던 참깨가 적극적으로 '사람 밥'에 돌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하필 내 밥상은 요즘 들어 점점 더 튼실해지고 있었다.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나를 위해 엄마가 반찬을 챙겨준 덕분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나는 마음을 다잡고 참깨 앞에서 냉정해지기로 했다.


             

▲  어느 날 새벽, 눈 떠보니 날 보고 있던 참깨 ⓒ 조혜민



누군가의 밥상이 신경 쓰인다는 것 



참깨의 밥그릇을 두고 시작된 나의 고뇌는, '누군가의 밥상을 신경 쓰는 일은 상당한 애정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친한 친구에게 밥은 잘 챙겨 먹는지 묻는 것, 그리고 길고양이를 만났을 때 뭐라도 줘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사료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은 모두 상대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 빵집에서 평일 저녁 알바를 하는 동안 나는 자주 끼니를 놓치곤 했다. 그때 함께 일하던 '직원 아주머니'는 나를 살뜰히 챙겨주셨다. 몸살 기운이 있던 날에는 빵집 CCTV 사각지대인 공간 한쪽에 들어가라고 하더니 죽과 약을 먹으라며 토닥여주시곤 했다.



 일상을 채워주었던 지난날들의 따스한 온기 덕분에 나도 참깨를 만날  있었던  아닐까 싶다. 참깨의  그릇을 보는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도 참깨의 건강을 위해 조금  노력해봐야겠다. 운동하자, 참깨야~


( 글은 2022 2 14,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 통해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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