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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만 Feb 20. 2022

일용직 노동자가 사망한, 산재입니다.

사고에 대한 조사 뿐 만 아니라 책임도 분명히 져야합니다.


안철수 선거운동차량 사고 소식을 접하며 마음이 참 어렵다. 참담하고 슬픈 동시에 이 사고에 대한 책임은 대체 어떻게, 누가 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버스 기사가 우리 아빠였을 수도 있는데’ 하는 마음이 쉽게 떠나지 않는다.


예전에 버스운전을 하던 아빠가 정년퇴직한 후 택시를 막 시작할 무렵, 생각만큼 벌이가 되지 않아 쉬는 날 알바를 시작했다. 낚시동호회가 대절한 관광버스를 운전하는 것이 아빠의 일이었고, 첫 알바를 시작하기 전, 아빠는 그 차량을 보러갔다와선 조금은 불안해했다.


버스기사였던 아빠가 보기에 관광버스 차량이 많이 낡았고 이곳 저곳 문제가 많아 보였다고 했다. 이에 대해 관광버스를 운영하는 사장에게 말했지만 그는 “몇 번만 쓰고 버릴 차량이어서 괜찮아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아빠는 불안했지만 아빠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그렇게 아빠는 첫 알바를 떠났고 몇 시간 후, 그 관광버스는 뉴스에 나왔다. 뉴스에서 아빠는 조모씨로 등장했고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속도로를 운행 중이던 관광버스에서 불이 나 승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24일 오전 11시께 전북 완주군 용진면 완주순천고속도로 순천방향 완주분기점 인근에서 조모(58) 씨가 몰던 관광버스에서 불이 났습니다.


조 씨는 운행 중 차량 이상을 느끼고 갓길 정차 뒤 살펴보니 조수석 뒷바퀴에서 불이 나 119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고버스에는 낚시객 19명이 타고 있었지만 모두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고 관광버스는 전소됐습니다.


소방과 경찰은 관광버스 조수석 뒷바퀴가 마찰열에 의해 과열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아빠의 말에 따르면 고속도로를 가던 중 관광버스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고, 이에 사장에게 연락하려고 핸드폰을 뒤적이던 중 문제가 커질 것 같다는 생각에 우선 갓길에 정차한 후, 급히 모든 손님들을 내리게 했다고 한다. 그 때, 버스는 이미 불이 붙기 시작한 직후였고 얼마되지 않아 버스는 완전히 다 탔다.


누구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인 일이었다. 아빠가 빠르게 문제를 인지하고 정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큰 일을 치룬 후, 아빠는 어떻게 되었을까. 200만원 정도 가량의 돈을 물어주고 끝났다.


왜냐. 낚시객들은 관광버스에 두고 내린 비싼 낚시용품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고, 아빠가 운전 도중 핸드폰을 봤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사장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운전자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말고도 내가 모르는 여러 일들이 아빠에게 벌어졌을 것이다. 아빠는 이래저래 보험사를 찾아가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 일에 대한 판단이 어떻게 적용될지에 대해 알려고 애썼다. 그러나 별 수 없었다. 그저, 그래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넘기는 것이 우리 가족의 최선이었던 것 같다.


저 사고 당시 뉴스에 나온 영상을 보던 나는 손을 벌벌 떨었다. 버스가 정말이지 불에 완전히 다 탔기 때문이다. 형체만 간신히 보였다.


여러가지로 마음이 참 복잡하고 어렵다.



——————————————————


며칠 전, 이 글을 쓰면서 그리고 글을 쓰고 나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몸이 아팠다.


나는 대선 속에 ‘더 말을 보태기에 위험하고 부담스러우니 아무도 말하지 않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느정도 수준에서 개입해야 할 문제인지 고민될 순 있다. 한 캠프의 사고를 ‘이용’한다고 비춰질지에 대한 우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누군가는 말해주길 기다렸다. 내가 가진 위치성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기대했다. 운이 나빠서 발생한 일이 아니라 일을 하다가 사망한 산재라고 말이다. 이 말을 쓰고보니 내 위치성 때문에 비롯된 생각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 항상 경계는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필요한 우리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그래도 장례치르고 있는데 대통령이 조화보낸 것까지 비판해야 하느냐, 아무리 그래도 그 사람이 죽었는데 그렇게까지 해야하냐 와 같은 생각하지 못했고 고민하지 못했던 경계들이 우리 앞에 계속 놓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 그 경계들은 우리의 삶을 더 나아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의 우리가 누구인진 나도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깜깜한 곳에 혼자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또한, 물론 나도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출근했다가 돌아오지 못한 일용직 노동자의 가족은 이 사고를 어떻게 마주하고 있을지, 추스리고 있을지 답답하다. 너무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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