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지만 너져분한
나는 옛날부터 옷에 있어 취향이 확고했다.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빨아도 줄지 않고, 변색되지 않으며, 보풀이 일어나지 않는,
그러면서도 세련되고, 유행을 심하게 타지 않으며, 편하면서 어느정도 꾸민것같은 그런 도시여자 스타일.
여기에 더 추가하자면 키가 작은 편이라 굳이 수선집에 가져가 사이즈를 줄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옷을 선호한다.
조금 애매하고 복잡한 기준 덕에 옷을 한번 사려 하면 며칠을 고민하고 고민해야했다.(취향도 있었지만 한정된 돈안에서 최대의 효과를 뽑아야 하는 것도 있었다.) 그래도 한번 고민고민해 산 옷들은 기본 4~5년은 입었고 그 이상된 옷들도 있었다. 수년이 지나도 입고 다니는 옷들을 보면서 스스로 뿌듯해하기도 했다. '역시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어'라며.
처음 성인이 되고 옷을 살때에는 내 스타일을 몰랐다. 그저 유행만 따라하기 바빴던거 같다. '요즘 이게 유행이래','이 브랜드가 잘나간대' 이말에 현혹되기 쉽상이었고 남들이 입은 것들이 이뻐보여 나와 어울리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지르고 봤다. 피부톤과 맞지 않는 옷컬러와 몸에 비해 너무 큰 티셔츠와 촌스러운 야구 모자..어우.. 이런 작은 시행착오들을 겪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나와 어울리는 디자인들을 조금씩 찾아갈 수 있었다.
확고해진 취향덕에 옷장을 열어보면 바지나 티셔츠 모두 색깔이나 디자인이 다 비슷비슷하다. 혼자 멍하니 앉아 한가한 주말에 뭘할까 고민하다 열어본 옷장을 보니 나도 참 한결같구나를 느꼈다. 주인을 담아 소박한 옷장안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얀색 셔츠들이 걸려있고 아래에는 무채색의 와이드 팬츠들이 깔려 있었다. 제일 밑에 칸에는 겨울옷과 언젠가는 들겠지 하고 버리지 못하는 가방과 겨울 귀도리와 담요, 쓰다만 공책 들이 왜 저기 있는지 모르겠으나 한대 뒤섞여 있다.
날 닮은 옷장은 참 소박하고 너져분하면서도 그 안에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가지런히 각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무리 나름의 질서가 있다한들 한번씩은 그 질서를 다시한번 잡아줘야 한다. 내 기억속에서도 파묻혀진 옷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먹고 옷장에 있던 옷들을 다 꺼냈다. 좁은 원룸이 옷으로 쌓여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 작은 장롱안에 이 옷들이 어떻게 다 들어가 있었던 걸까. 혼자사는 옷장이 분명 맞거늘. 오랜만에 보는 티셔츠도 보이고, 잊고 있던 옷을 보며 새 옷을 얻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호기롭게 처음 옷들을 꺼낼때에는 금방 정리를 할 줄 알았는데 옷을 보며 잠깐씩 추억에 잠겨보기도 하고 쉬기도 하다보니 한두시간이 훌쩍 가있었다. 이제 슬슬 옷장 정리가 지겨워져 급하게 옷을 다시 옷장안으로 넣었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살까말까 고민하던 니트 소재의 얇은 반팔 티가 옛날에 구매해 놓은게 있어 돈을 아끼게 되기도 했고, 자리만 차지하던 버릴 옷들을 정리하기도 했다.
아, 오늘도 잘살아냈다. 그렇게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