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 시기와 목적이 명확한 돈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2024년 6월부터 시작된 개인투자용 국채 청약 제도. 첫 청약 시에는 흥행에 성공한 듯하더니 점차 채권 금리가 낮아지면서 지난 9월에는 10년물, 20년물 모두 청약이 미달되었다.
처음 제도 도입 시부터 관심 있게 지켜는 봤지만 청약 신청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 10월 청약에는 신청을 했다. 그것도 매번 미달이었던 20년물에. 이번에도 역시 10년물과 20년물 모두 미달이 났고, 특히 20년물 경쟁률은 0.26:1로 굉장히 저조해 신청한 금액을 100% 다 받을 수 있었다.
이렇듯 개인투자자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개인투자용 국채 20년물에 청약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기준금리 인하
9월 미국의 금리 인하 빅컷 이후, 10월 11일 자로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0.25% 낮춰 현재 기준금리는 3.25%가 되었다. 금리 예측은 투자의 대가들도 함부로 하지 않는 영역이라고 알고 있다. 앞으로 20년 동안 기준금리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현재보다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면 장기보유가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빠른 시일 내에 기준금리가 급격히 올라 후회가 된다면? 중도 환매를 신청하는 것도 가능하다.
2024년 10월 개인투자용 국채 금리 & 수익률
10년물: 3.4% (10년 후 세전 수익률 39.7%, 연평균 수익률 3.97%)
20년물: 3.492% (20년 후 세전 수익률 95.1%, 연평균 수익률 4.75%)
장기적으로 20년물 국채 금리 3.492%는 복리 감안 시 연평균 세전 수익률 4.75% 정도가 된다. 적어도 물가상승률보다는 높을 가능성이 클 것 같고, 정부 보증으로 원금이 보장되고, 만기 보유 시 분리과세되는 혜택 등을 고려해 봤을 때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미래 재무 상황
하지만 첫 번째 이유만으로는 청약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 같다. 여기에 더해 개인적인 상황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바로 올해 말에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 아이의 탄생을 준비하며 재무 계획을 좀 더 입체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특히 당장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앞두니 미래 소득을 보수적으로 계산할 필요가 있었다. 당장은 1년 정도만 쉬고 복직할 계획이지만, 주변 육아 선배들의 경험을 들어보니 여러 변수들로 계획이 달라질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다.
지금까지는 맞벌이를 하면서 가계 소득이 꾸준히 우상향해왔지만, 처음으로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이 되니 안전자산에 대한 니즈가 커지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왕 할 거면 복리의 이득을 최대한 취하기 위해 10년물보다 20년물에 청약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10월물 청약 기준, 10년물은 최종 수익률 약 40%, 20년물은 약 95% 정도였다.
3. 투자금의 사용 목적과 시기
마지막으로 미래에셋증권의 상품 설명 페이지에서 의외로 설득된 포인트였는데, 상황별로 국채 투자의 효용성을 보여주는 이 부분이었다.
앞서 말했듯 첫 아이의 탄생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자녀 학자금이라는 상황은 꽤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투자 목적으로 성큼 다가왔다. 올해 청약을 하면 20년 후 아이의 대학 등록금으로 쓸 수 있겠구나! 만약 아이가 대학이 아닌 다른 길을 간다고 해도, 성인이 된 자녀의 새로운 시작을 돕는 자금이라 생각하니 꽤나 의미 있고 든든한(?) 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외 경제나 우리 가계의 재무 사정이 어떻든, 20년 후 자녀가 성인이 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용 목적과 시기가 명확한 자금이라면 중간에 해지하지 않고 복리의 이득을 끝까지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금융기술이란 결국 사람이 만들어 낸 타임머신이다.
다만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돈을 시간여행시킬 뿐이다.
재밌게 읽은 윌리엄 N. 괴츠만의 <금융의 역사>라는 책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아직 탄생하지도 않은 아이의 미래 학자금이라는 가능성을 고려하던 나에게 새삼 와닿는 문장이었다. 20년 후 이 투자를 나는 어떻게 평가할까? 차라리 미국 주식이나 더 살 걸 하며 아쉬워할지, 안정적인 목돈을 만들어둔 걸 뿌듯해할지 나도 궁금하다.
+덧.
국채 청약을 위해서는 미래에셋증권에서 국채투자전용 계좌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는데 계좌 개설 단계에서 얼굴인식이 자꾸 실패했던 것이다! 몇 번 시도하다 결국 포기하고 남편 계좌로 개설했다. 찾아보니 이런 경우가 꽤 많았는데, 지금은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어 영업점을 방문해야 한다고 한다. 만약 국채투자에 관심이 있고, 신분증 사진을 찍은 지 시간이 꽤 지났다면 정신건강을 위해 미리 계좌를 만들어 두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