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벤처캐피탈협회 벤처캐피탈 신규인력 양성과정 후기
스톡옵션을 행사한 이후로, 그전까지 '스타트업 마케터'로 스스로의 일을 정의했던 나의 관점이 조금 더 넓어졌다.
초기 스타트업에서 성장을 함께한 경험을 바탕으로, 마케팅 분야에만 한정 짓지 않고 뭔가 더 할 수 있는 영역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매력적인 공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서 진행하는 벤처캐피탈 신규인력 양성과정 모집 공고였다. 내가 교육을 들었던 2021년에는 5기였는데, 지금은 벌써 11기를 모집 중이다.
당시의 공고와 현재 공고를 비교해 보았다. 지원자격이나 모집 과정, 커리큘럼, 수료생 특전 등 굵직한 부분은 여전히 유사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2021년에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모든 수업과 워크샵이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는데, 현재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강의가 진행된다는 차이는 있다.
서류와 면접 심사로 이루어졌는데, 서류에서는 3개의 항목이 있었다.
1. 지원동기 및 포부
2. 벤처캐피탈리스트로서의 강점
3. 경력기술서
지원동기 및 포부에서는 간단히 나의 이력을 소개한 뒤 VC가 되고 싶은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적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은 높은 투자수익뿐 아니라 시장 확대, 산업 성장까지 이어지는 선순환의 시작임을 경험하면서, 이를 효과적으로 촉진하는 VC업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쿠팡의 NYSE 상장과 크래프톤, 하이브 등 신진 기업들의 성공을 필두로 한국의 콘텐츠와 플랫폼 경쟁력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국내 스타트업들이 전 세계적으로 가치를 더하고 저변을 확대하는 과정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벤처캐피탈리스트로서의 강점은 스타트업에서 마케터로 일한 경험과 타 스타트업 컨설팅 경험 등을 강조하며, 실무 레벨에서도 비즈니스 성장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어필했다.
하나의 프로덕트에 대해서도 창업가, 실무진, 고객의 시선은 조금씩 다르며, 이 차이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는지가 성공 여부를 가른다고 생각합니다. 투자 이후의 사후 관리 차원을 넘어서, 저는 창업가와 임원들뿐만 아니라 실무진과도 주기적으로 세션을 잡고 사업 전략과 마케팅을 함께 고민하며 진정한 성공을 돕는 vc 파트너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경력기술서는 프로젝트와 성과 위주로 지금까지의 경력을 담백하게 서술했다. 당시 기사를 찾아보니 최종 경쟁률은 4:1 정도였다.
면접은 7:7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는데, 다대다 면접은 오랜만이라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내에 여러 명이 답변하는 다대다 면접의 특성상 다른 분들이 답변할 동안 생각할 시간도 있고, 각자 답변하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아서 면접 난이도가 어려운 편은 아니었다.
1분 자기소개와 VC의 핵심 역량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두 개가 공통 질문이었고, 추가 질문은 자기소개 내용을 기반으로 개인별로 1-2개 정도씩 이루어졌다. 나에게는 스타트업에서의 경험에 대해 질문이 들어왔고 예상 가능했던 질문이라 무난하게 대답했다.
벤처캐피탈 신규인력 양성과정 교육을 같이 듣게 된 동기들은 총 50명이었는데, 7개의 팀으로 나눠져 8주간 교육 과정을 함께했다. 대기업이나 연구소 재직 중이거나, 의사, 약사, 변호사, 변리사 등 다양한 업계에서 경력을 쌓으신 분들이 모여 있었다. 석사, 박사 학위가 있는 분들도 많았다.
교육은 주 5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기에 교육 참석을 위해 퇴사나 휴직을 하신 분들도 있었다. 나의 경우, 당시에는 교육이 100% 비대면으로 이루어져서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근무 시간 일부를 교육에 할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교육이 오프라인으로 이루어지기에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할지 여부를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커리큘럼은 꽤나 알찼는데, VC 시장에 대한 산업적인 지식부터 다양한 분야의 투자 이력을 지닌 현업 VC 분들의 실무 강의, 법적인 쟁점과 계약서 작성 방법까지 유용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강의별로 다양한 강사 분들을 만나고 쉽게 접하기 힘든 VC업계의 생생한 경험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강의를 인상 깊게 들은 몇 분께는 이메일로 따로 질문을 드리기도 했는데, 궁금했던 내용에 대해 상세히 답변해 주셔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수료 시 150만 원의 교육비를 전액 환급받을 수 있는데, 내가 들었던 5기에는 출석, 필기시험, 발표점수, 과제 참여도 점수 4가지 항목을 합산해서 80점 이상인 경우 수료가 가능했다. 시험은 총 3회 퀴즈 식으로 이루어졌는데 강의를 성실히 듣고 복습을 어느 정도 해야 했다. 마지막 주차는 실무 워크샵으로, 팀별로 기업 하나를 선정하여 실제 VC의 업무인 심사보고서, 투자계약서, 투자조합 제안서를 작성하고 발표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VC 업무를 맛보기로 직접 경험하고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현업 VC분들의 과제에 대한 피드백도 받을 수 있었다.
교육 수료 후 VC 인턴십 기회가 있는 게 이 교육의 특장점 중 하나였다. 실제로 교육 과정 중 총 6곳의 VC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나뿐만 아니라 당시 함께했던 팀원들 모두 여러 곳에서 면접 제안을 받았다. 동기들 중 반 정도는 인턴십에 참여했고, 현재 정규직 투자심사역으로 경력을 잘 쌓고 있는 분들도 꽤 많다.
결론을 말하자면, 스타트업 마케팅 경력으로 VC가 될 수 있을지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목적은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달성했다. 교육 과정에 합격하고 여러 곳에서 면접 제안을 받은 것 자체가 '아, 내 경력이 VC업계에서도 어느 정도는 관심 가질 만한 경력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던 과정이었다. 물론 이후에 VC로서의 커리어 역량을 키우는 건 다른 문제겠지만, 적어도 스타팅 포인트는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경우 재직 중이었기 때문에 기준을 조금 높게 잡고, 연락이 온 모든 곳의 면접에 참석하지는 않았다. 제안이 온 VC 중 매력적인 곳의 최종 면접까지 올라가서(1:3의 경쟁률이라고 했다) 탈락했다. 그런데 다른 면접을 준비하던 와중에 새로운 국면이 열렸는데, VC 교육 수료 이력을 좋게 본 다른 초기 스타트업에 합류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계속 인턴십에 도전하여 VC로의 커리어 전환을 타진해 볼지, 초기 팀에 합류할지 고민 끝에 후자를 선택했다.
벤처캐피탈 신규인력 양성과정 교육을 통해 내가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내부 관점에서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것과 스타트업에 자금줄을 대는 VC 입장에서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이런 양쪽의 관점을 융합하려는 시도는 VC로 일하든, 스타트업 내부에서 일하든 분명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만, 그럼에도 나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직접 플레이어로 참여하며 만들어갈 수 있는 일에 더 매력을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이후에 초기 스타트업에 합류해서 IR을 준비하고 계약서를 검토하면서, 교재를 참고하기도 하고 교육에서 들었던 실무적인 내용을 활용하기도 했다. VC 커리어에 관심이 있다면, 혹은 당장 VC로 일하지 않더라도 현재 업무와 확장성을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 확인해보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