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여행, 스타트업
처음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하게 된 것은 그저 약간의 일탈이었다. 교환학생이 끝나고 머리가 말랑해져 있을 무렵, 학교로 돌아가기 아쉬워 인턴 자리를 찾다가 발견한 공고.
홍대에 있는 여행 스타트업에서 콘텐츠 마케팅 인턴을 뽑는다는 거였다. 처음 들어보는 회사에 직무도 생소했지만 세 개의 키워드가 뇌리에 남았다. 홍대, 여행, 스타트업? 이 힙한 조합은 뭐지? 왠지 지금 아니면 못해볼 것 같잖아?
하지만 이상한 로망을 불러일으켰던 새 개의 키워드는 빠르게 현실로 대체되었다. 사무실은 작은 투룸 오피스텔이었고, 화장실을 가려면 대표가 앉아 있는 책상을 지나가야 하는 구조였다. 이 작은 회사에 나와 함께 입사한 인턴 동기들은 무려 6명이나 되었다. 우리를 위해 급하게 치운 듯한 방 한 칸에는 서로 등을 거의 맞대고 일해야 하는 책상이 닭장처럼 빼곡히 준비되어 있었다.
처음 했던 일 또한 단조로운 작업으로, 여행 관련 일을 하더라도 실상은 모니터 앞에 하루 종일 앉아 화면으로만 여행을 할 뿐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지각했다. 세계의 온갖 여행지를 할당받아 여기저기 정보를 짜깁기해 업로드하는 일이었는데, 그냥 길거리에서 아무나 데려와서 맡겨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나마 기대치를 충족했던 부분은 ‘홍대'였는데, 적어도 출퇴근 길에는 트렌드의 중심에서 일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저녁 약속을 회사 근처에서 잡곤 했다. 그랬기에 갑작스러운 이사 소식을 들었을 때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입사 후 한 달 남짓 지났을 때였다. 새로운 사무실은 갈월동에 있다고 했다.
지금도 생소하지만 당시에는 더욱 생소했던 갈월동은 남영역에서 서울역 사이, 숙대입구역 근처의 작은 행정 구역이다.
주요 장소는 구글맵에 따르면 삼성전자 서비스 용산 센터가 있다. (그만큼 아무것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무실은 숙대역에서도 서울역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야 했던 휑한 위치에 있었다.
당시 오피스텔을 벗어나 버젓한 사무실로 이사가게 되었다며 대표는 감개무량해했지만, 이곳에 지원한 이유 중 하나가 사라진 나는 망연자실했다.
이사 날, 갈월동의 첫 이미지는 어두컴컴하고 썰렁했다. 근처에 뭐 이렇게 아무것도 없지? 점심을 먹으려면 굴다리를 건너가야 하네? 맥없이 갈월동을 살피던 나에게 이제 여기에서 일하는 이유 따위는 희미해져 갈 뿐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로망을 충족시켰던 유일한 키워드가 사라지고 나니 역설적이게도 나머지 키워드들이 조금 더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우선 여행이라는 관심사와 일이 연결되었을 때의 시너지는 회사와 나 모두에게 윈윈이었다. 그저 돈 받는 만큼만 적당히 해야지 라는 마음가짐으로 일하는 것보다, 나라는 사람을 일에 어느 정도 녹여냈을 때 일의 과정과 결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일을 하는 나’보다는 ‘내가 하는 일’에 더 무게추를 두고 나니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점점 마음에 들었다. 물론 단순 작업에서 벗어나 조금씩 관심사와 실제 나에게 요구된 일과의 접점이 생겼던 덕택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스타트업의 매력이기도 했다. 인턴 첫 달의 지루한 반복 업무는 조금씩 창의성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다채로운 실험으로 진화해 갔다. 닭장보다는 조금 더 쾌적해진 사무실 한편에 마련된 회의실에서 치열한 회의를 마치고 나올 때면 모종의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웹사이트로 유입되는 트래픽을 늘리는 것이 중요 목표였던 스타트업 환경에서 마케팅이라는 업의 유의미한 면모를 발견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가치를 전하는 것.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후 커리어에서 계속 이어진 콘텐츠 마케터로서의 정체성이 처음 생겨난 순간이었다.
학생 때는 막연히 광화문에서 일하고 싶다는 이상적인 직장인에 대한 이미지가 있었다. 그랬기에 첫 인턴의 무대가 되는 장소에 그렇게 집착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갈월동 시절을 지나며 일에 대한 나의 생각에는 중요한, 그리고 앞으로의 나를 꽤나 고생시킬 변화가 생겼다. 어디서 일하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살고 싶다는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