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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Dec 05. 2024

스타트업에서의 일과 삶: 성장의 이면

스타트업에서 일해보니 어때?

커리어의 시작부터 10년째 스타트업에서 일해왔지만, 사실 하나로 뭉뚱그려 ‘스타트업계’라고 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이제 막 창업한 학생 창업팀부터 IPO 직전인 곳까지 워낙 다양한 규모와 업종의 회사들이 스타트업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풀타임으로는 3곳, 파트타임이나 컨설팅 등으로는 그보다 좀 더 많은 스타트업을 경험하면서 내가 겪은 스타트업에는 공통분모가 있기는 했다.


모두가 자기에게 주어진 것 이상의 일을 하고, 그러기를 기대받는다는 점이다.


추가 인력이 필요한 순간에도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하며 내부에서 추가적인 리소스를 거둬들이는 느낌이랄까?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다. 장점은 커리어적인 성과를 이룰 가능성은 분명 크다는 것. 단점은 일과 삶의 분리가 어려워진다는 것.


물론 초기 멤버라면, 회사가 잘 될 경우 연봉 상승이나 스톡옵션 등 아쉽지 않은 보상을 챙길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규모가 커지고 더 이상 초기 멤버의 특권을 누리기 어려운 때에도 이런 분위기는 비슷하게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이걸 모두가 군말 없이 하는 이유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키워드가 개인 입장에서는 ‘성장’인 것 같다.


스타트업 업계에 발을 처음 들일 때, 스스로 일을 진행하고 책임질 수 있는 주도성과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함께 만든다는 것의 반짝거림에 매력을 크게 느꼈다. 재택, 원격 근무가 생소하던 시기에 일과 삶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결합하며, 적은 인원과 예산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내고, 동료들과 식사 시간에도 일 얘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그런 분위기 말이다.


한때는 일하기 좋은 공간을 찾아다니는 것이 취미였기도.


하지만 한 번씩 조금 거리를 두고 돌아보면 다른 면이 보일 때가 있다. 일터에서의 시간이 비단 일에 대한 태도뿐만 아니라 가치관, 생활방식을 포함하여 꽤 넓은 범위에서 심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친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아 시간 아깝다. 이럴 시간에 책이나 한 권 더 읽을걸’이라는 생각이 드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소름이 끼쳤다. 한창 일에 미쳐 있을 때였다. 생산성을 중시하고, 의미 없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건 내 원래의 특성도 있지만 린, 애자일, 그로스가 얽힌 스타트업 문화 내에서 더욱 과잉 최적화된 면도 있었다.


삶에서 일 말고 다른 부분이 없는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닌데.


이후에 번아웃을 겪으며 이 부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았는데, 내가 느낀 문제의식은 구체적으로 이런 것이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 환경과 이를 버티게 해 주는 부가적인 요소(유연한 근무, 좋은 팀워크와 문화, 숭고한 비전 등)들의 결합에 너무 익숙해져 스트레스 상황 자체에 대해 인지를 못 하고 있었던 것. 공기업에 다니는 남편은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꼭 그렇게 성장을 해야 해?’라고 묻기도 했다.


이것 또한 정답이 아니라 하나의 패러다임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 경영자, 더 나아가면 투자자, 궁극적으로는 자본의 논리로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을 하도록 촉진하는 시스템인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스톡옵션이라는 개념은 노동자와 자본가를 왔다 갔다 하게 만들며 스스로를 더욱 몰아붙이는 원동력이 되는데, 대체 언제까지? 그건 아무도 모르며, 계속 더 성장할수록 좋다가 여기에 대한 자본의 답인 것 같다.


타인이나 미래의 자본을 빌리는 레버리지의 약점은 과욕을 부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VC라는 특수한 자본 조달 방식을 통해 레버리지를 최대로 끌어와 현재에 투자하는 스타트업의 구조 상 이는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속성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타트업 구성원의 입장에서는 ‘stop’을 외칠 수 있는 선택지가 퇴사 이외에는 없는 경우가 많다.


당시의 나는 정말 운 좋게도 회사에서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조금 긴장을 내려놓아도 성과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며 조심스럽게 번아웃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뭔가 하나만 어긋났어도 나는 완전히 소진된 채 튕겨져 나갔을 것이다.


바닷가에서 멍 때리기. 이번에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을 감안해도, 일에서의 성취와 좋은 동료들을 중시하는 나에게 여전히 스타트업은 매력적인 일터이다. 다시 커리어의 시작점인 20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비슷한 선택을 할 것 같고, 이 업계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전에는 성장에 대한 갈망에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뛰다가 넘어지기도 했다면, 지금은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일을 바라보려 노력하고 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성장에도 이면이 있다. 양 쪽을 모두 볼 수 있는 것이 좀 더 현명하고 지속 가능한 태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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