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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오 May 07. 2020

갈등

사라지지 않는 개별성의 증명

문득 예전 텔레비전에서 유시민 작가가 한 말이 떠올랐다.


“갈등을 없애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아니라 갈등을 잘 관리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갈등은 어디에나 있어 왔다. 인류의 역사는 온갖 갈등의 점철이다. 대부분은 말로 서로를 이해시키려는 노력보다 힘의 승부였다. 그 싸움들의 승패가 지금 우리의 모습을 만들었다. 수많은 전투에도 갈등은 소멸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그 속에서 살아간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것. 갈등은 필연적이다. 일란성 쌍둥이도 결국 서로 다른 개체다. 각기 다른 성장 환경에서 자라난 우리들이 완벽한 동일성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뱃속에서 날 열 달간 키운 어머니도 나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나와 같은 뱃속에서 자란 내 동생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감각과 가치관의 간극에서 싹트는 갈등은 역설적으로 자연스럽다.  


부정적인 영역에 종속된 갈등은 권장되거나 양지로 나오지 못한다. 우리는 자의와 타의로 그것을 회피하고 축소하는 여러 방법을 습득한다. 외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때로 그 존재를 부정한다. 모두가 서로 다름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배설물. 그것을 없는 취급하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의문이 생긴다.


부모, 형제, 친척, 친구들.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중에 갈등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사람은 존재한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 갈등이 없었던 경우는 단 한 명도 없다. 피하려고 애를 써도 소용 없다. 충격 뒤엔 관계가 더 돈독해지곤 한다. 갈등에 내재된 부정적 에너지의 놀라운 치환. 


개인적으로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꼽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1995년작 ‘공각기동대’에서 소령 쿠사나기 마코토는 이렇게 말한다. “모두가 똑같은 규격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은 어딘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어”. 서로가 같기를 바라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대한민국 사회를 생각해 볼 때 더더욱 경종을 울리는 말이다. 어려서부터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을 배웠지만 그 말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은 생각 의외로 깊고 어둡다. 어째서 서로의 다름, 그것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를 애써 외면해야만 할까? 구성원의 자유로운 목소리를 좌시하지 않는 북쪽의 ‘공화국’이 유원지의 왜곡된 거울처럼 보이는 것은 비단 나뿐의 생각인가? 비친 상이 길쭉하거나 짧을지언정, 그것에 비친 것은 나 자신이다.


역사는 갈등이 우리 곁에 항상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한 그것을 통해, 때로는 뼈아프게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어 왔고 지금 이곳에 있다. 갈등을 관리하려는 진지한 고민보다 사람들은 둘, 셋으로 나뉘어 서로의 입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는데 더 치중한다. 그런다고 내가 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라지지 않는 것이 사라질 리도 없다. 나는 아까의 말을 떠올린다.


“갈등을 없애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아니라 갈등을 잘 관리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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