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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오 May 13. 2023

완고하면 안 돼?

말 못 하는 고집을 위한 항변

무슨 이야기를 하던 중 "완고하다"는 표현이 나왔다. 익숙하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단어. 불쑥 등장한 도심의 여우에게 시선을 빼앗기듯 마음이 멈춰 섰다. 두 발을 굳게 디딘 누군가의 등판, 어느 발길도 허락하지 않는 산봉우리, 아찔하게 푸른 어스름이 스쳐 지나갔다. 


나에게 완고함이란 뭘까? 물러서지 않는 것. 나는 무엇에 대해 완고할까?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것. 보이지 않는 실에 의해 딸려 나온다. 찾아보니 완고(頑固)의 사전적 의미는 "융통성이 없이 올곧고 고집이 셈"이다. 융통성이 없다는 부정적인 느낌. 올곧다는 긍정적이다. 고집이 센 건 양쪽 모두. 구글에 완고라고 쳐 봤다. 의외로 기독교 관련 레퍼런스가 주를 이뤘다. 흥미로워. 


2019년 1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침미사에서 한 강론을 정리한 내용. 그는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라며 히브리서의 구절을 인용했다. 성 스테파노가 자신에게 돌팔매질을 할 사람들을 향해 완고하다는 표현을 썼다고도 했다. 교황에게 완고함이란 “영적인 고집”이다. “적대적이고”, “고집스러우며”, "아집에 매몰"돼 있고, “성령께 열려 있지 않은" 태도다. 나아가 “이념적인 사람들”의 프로필과 연결 지었다. “교만한 사람들”과 “오만한 사람들”*.


다른 교파의 기독교 텍스트도 비슷한 논조다. "완고함이란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것, 타성에 젖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지나친 자기 확신을 갖는 것"이라며 어리석음과 동일시하거나**, 아담의 타락한 본성을 보여주는 성질***로도 묘사됐다. 완고함은 용인될 수 없는 것이며 불순종이다. 참고한 기독교의 모든 텍스트가 설파하는 바였다.  






기독교는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을 주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가치체계다. 완고함이 불순종이라면 거리를 두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종교가 없고 선택적 순종을 지향한다면 다를 수 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과 '순순히 따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아집과 신념이 그렇듯, 순종과 맹목의 간극도 얇다. 맹목은 무섭다. 검고 매끈한 에일리언. 위험한 흑백논리를 낳는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 나오는 유럽 선교사들이 떠올랐다. 배교의 의미로 성화 밟기를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그를 거부하는 완고함은 나쁜 것일까?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완고함을 변호하고 싶은 이유다. 특정한 것에 대한 견해나 태도로 보면 한층 선명해지는 상대성. 부당하고 가혹한 언행에 대한 완고한 거부, 유해한 관계나 상황에 대한 완고한 차단,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행사해서 안된다는 완고한 명제, 삶에 닥친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완고함. 자신을 얕보는 시선에 굴하지 않는 완고함. 위험하고 어리석은 파멸의 징조인가? 





문득 다른 생각들이 궁금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완고함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내용을 올렸다. 그것을 확인한 사람들 다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000에게 완고함이란?"


"갑자기?"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지만, 뜬금없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을 공유해 주었다. 





짧고 긴, 갖가지 대답들. 모두를 관통하는 교집합은 없었다. 공통점이라면 맥락. 각자의 맥락에서 완고함을 다르게 해석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완고함은 물리 법칙이 아니니까. 오직 인간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상상의 산물이다. 상대적일 수밖에. 성서의 부정적인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무조건 나쁘게 보는 것이 찜찜한 이유다. 

 





일본 친구 하야마의 말이 와닿았다. 완고함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는 이유는, 그것을 '의견이나 생각을 바꾸지 않는 사람'과 연관 짓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거라는. 문화권을 막론하고 완고함에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이유. 우리가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타인의 완고함을 대하기 때문은 아닐까? 나의 생각과 다른데, 그것을 바꾸지 않을 때의 불편함. 의견이나 생각을 쉽게 바꾸는 사람은 긍정적인 걸까? 역시 애매하다. 결국 맥락의 문제로 돌아온다. 


완고함의 맥락과 밸런스가 가진 중요성은 넬슨 만델라의 삶에서 볼 수 있다. 불의와 억압에 대한 저항의 상징.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분리 및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에 반대한 죄로 27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뿌리 깊게 자리한 남아공에서 인종주의 타파에 대한 만델라의 완고함은 부질없어 보였다. 그것은 단순히 결단력과 끈기가 아니었다. 타협을 거부하거나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과도 달랐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고의적 전략에 가까웠다. 그는 완고함을 관철하면서도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실용주의적 자세로 균형을 맞췄고, 결국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완고함은 대화와 협력을 방해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손상시킬 수도,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끈기, 결단력, 아집, 자기 합리화, 자의식 과잉, 방어기제가 모두 담겨있다. 무엇을 취하느냐에 따라 위의 대답들처럼 소중함을 지키는 힘이 될 수도, 고지식하고 폐쇄적인 틀이 될 수도, 얽히고설킨 뿌리뭉치가 될 수도 있을 거다. 


(아무 설명 없이 던진 질문에 멋진 답변을 준 인스타그램의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Ceraso, G. "하느님의 말씀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성장시키는 생명입니다", 바티칸 뉴스, 2019년 1월 17일

**김찬영, "완고함의 수건을 벗으십시오", 기독교대한감리회 웹사이트, 2019.04.27

***Tozer, A. W. (2015) "십자가에 못 박혀라", 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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