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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Jun 26. 2024

2023년 2월 일기

2024년 6월에 돌아보는

  이제 대학원 수업을 들으면 일주일에 두 번은 원치 않아도 책상에 앉아 있을 것이다. 학업과 직업을 병행할 때는 철저한 복습만이 답이다. 복습까지 하려면 일주일에 네 번은 저녁 내도록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한다. 10년 전에는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세워 장학금도 타고, 차석으로 졸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만큼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다. 처음 학교는 취업만 생각하고 갔고, 두 번째는 커리어를 위해 갔다면, 이제는 내 안에 감동만을 위해 공부하고 싶다. 경험하는 세계를 확장하여 인식의 차원을 넓히고, 배웠던 것은 다시 보며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할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점심시간에는 홀로 근처 공원을 걷는 것이 좋겠다. 매일은 무리다. 바쁜 신고 처리 중에 팀원들은 나 몰라라 하고 내 안의 계획만 실현시킬 수는 없다. 사람들과 화합하는 노력,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점심시간에 속을 비우고 산책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처럼 굶고, 가만히 있고, 명상하기를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불교에서 말하는 3독이 탐욕, 진에, 우치이다. 화(진에)는 고통을 견디며 반응 없이 흘려보내고, 무지(우치)는 찰나마다 정언명령을 고민하는 신실한 태도이면 족한데, 탐욕이 문제다. 텅 빈 말을 멈추지 않고, 지나가는 말에 쉽사리 반응하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며, 나에게 이로운 이를 떠나보내기 두려워하는 것 모두가 탐욕이다. 내 것을 비우고 겸허하게 살려면 내 하루부터 정비해야 한다. 하루의 작은 노력들은 인생 전체와 다름이 없다.
  작은 선택을 경시하지 않고 정갈하게 사는 게 목표다. 타인의 욕망에 휘둘리다가 의지 한 톨 남지 않은 순간, 나의 지향점을 돌아보고 다시 힘내서 나아가야겠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가야 할 곳에 닿아 있겠지.


11월부터였다. 누군가는 승진하고, 나는 아니고. 어떤 사람들과 엮일까 전전긍긍하고. 노예처럼 부리려고 나를 찾는 이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누가 나와 일할까 두려워하고. 이 시기에 도드라졌던 사람은 재수 없기로 유명한 어느 과장이었다. 팀원 하나를 형사과로 보내기 위해 이리저리 선을 달던 팀장은, 학연과 지연 주연과 흡연까지 묻고 다녀도 그 과장과 친하다는 사람 하나 나오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따지기 좋아하고 작은 거 하나 눈 감지 못하고 무안 주기 일쑤고 인사치레 못하는 직원 하나 눈 밖에 나면 쫓아낼 때까지 눈치 주는 그 안하무인이, 의외로 청렴한 위인이었던 것일까.
  진창 속에 살면서 나 혼자 고고하기를 바랄 수는 없겠지마는, 하루에도 수만 명의 욕구와 설움의 칼이 제멋대로 날뛰는 직장에서 언제까지 제정신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직원들 감정 따위는 무시하는 외곬 과장이라고 좋은 인사권자인지도 모르겠고, 은퇴를 앞둔 팀장이 제 설움에 동해서 늙은 주임을 모른 체하지 못하는 것도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별별 사람 다 있는 조직에서 일 좀 못한다고 해서 정 없이 단칼에 자를 수도 없다는 말도 이해는 한다. 옳고 그름을 잘라내기엔 생을 덮쳐오는 그물이 너무 많다.
  나는 흔들리는 인간일 뿐이었다. 어디로 내쳐질까 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가올 변화가 두렵고, 가고자 하는 방향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내가 주임이 되고, 팀장이 되면 포용하지 못했던 그들의 사정을 떠올리며 후회할까 봐, 시원스레 결단 내리지도 못하고 몰래 미워했다. 나를 부리려는 사람의 노골적인 요구에 맞추느라 깨어 있는데도 꿈꾸듯 구름같이 고민이 몰려왔다. 이 모든 흔들림 속에서도, 변할 수 있는 건 나 하나, 잡을 수 있는 건 나 하난데, 내가 잃은 건, 잊은 건 나 하나였다.
  타인의 이기심에 놀아나 에너지를 뺏기지는 말자. 나도 늙고 쇠약하고 죽어갈 운명을 타고난 인간인데, 늙어서 서럽다는 타인의 슬픔을 다 짊어지려 하지는 말자. 서러워서 서러움만 끌어들이고 속내에는 제 몸뚱이 뉘어 술 한 잔 얻어먹을 생각만 하는 꼴은 단호히 미워하자. 훗날 포용하지 못했다 나 스스로를 탓할지라도, 내 수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포용하고 그 모자람을 받아들이자. 타인의 요구에 종속되지는 말자. 그의 뜻을 국민의 이익과 나의 성향에 맞추어 일을 하는 그 과정도 뜻깊을 수 있도록, 내가 제풀에 무너지지 않도록, 타인의 요구만 망령처럼 남아 왜 나를 괴롭히지 않도록, 나를 잘 돌보자. 내 자리가 어디든,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여름의 김반장에게

  안녕? 나는 2월 24일 토요일 새벽까지 당직을 하고 온종일 자다가 밤늦게야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너의 이름을 부르려니 어찌나 어색한지, 미루고 미루다 보니 이 시간이 되었구나.
  너의 여름은 어떻니? 겨울의 나는 추웠고, 흔들렸고, 무심했어. 금요일엔가 사무실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렇더라고. 출근할 때는 추워서 서글프고, 출근해서는 타인의 욕구에 휘둘리면서 하루 중 대부분을 무감각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고. 유독 추위에 약한 나에게 겨울은 들이키는 숨마저 가혹한 계절이야. 한숨마다 차가운 소주가 흐르기를 기다리는 빈 잔처럼 공허해.
  그런 생각을 해. 어떻게 이렇게 매일 살지? 삶에 어떤 희망이 있지? 대단치 않은 기대에 파묻혀 작은 걱정거리들이 몰래 앉은 딱지처럼 거슬린다. 서로 원하는 바가 없다며 서로의 요구를 예상하다 결국 아무도 원치 않았던 길을 가는 얕은 배려로 점철된 내 삶이 날지 못하는 새의 날갯짓 같아. 이렇게 하루, 이틀 살다가 운이 좋아 늙어 바스러질 때까지 살아남는다면 진눈깨비같이 작은 불행들에 미끄러져 버리는 건 아닌지 몰라. 기형도의 시처럼 말이야.

'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 나는 불행하다 /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 진눈깨비'

  퇴직 후의 아버지는 병원 가기가 두렵고, 퇴직 전의 팀장님은 혼자 떠안을 시간이 두렵고, 늙은 주임들은 자리 잃을까 두렵고, 나는 삶의 과제를 다하지 못할까 봐 두렵고. 두려움에 병처럼 시달리다 허무하게 가버리는 것이 인생이라서 제각기 그리 불행한 걸까. 지나고 보면 그럴 거야. 아무리 두려워해도 닥칠 일은 파도처럼 덮쳐 오고, 불안에 내몰려 방언 터지듯 떠들어 봐야 도움 되는 것도 없더라고. 그러니 조금 덜 두려워하고 조금 덜 불안해했어도 괜찮았을 거라고.
  어떻게 살기는, 그냥 살지. 희망이 뭐 기는, 모르고 살지. 한평생 애써도 가닿지 못할 길이면 생각해 봐야 안 될끼고, 하루하루 살다 보면 뭐든 되어 있겠지. 찰나에 영원이 있다 하니 주어진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고, 엄습하는 두려움에서부터 눈을 돌려 일생을 담은 문학을 읽다 보면 사람 사는 일이 별게 있겠거니, 하고 조금 멀리 보이는 듯도, 가까이서 비벼대는 강아지의 눈망울이 보이는 듯도 하는 거야.
  뭣이 그래 대단하게 살 거라고 걱정만 한가득 안고 사는지. 대단한 건 또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그래 몸피 부풀리며 경계하고 사는지. 당장의 불쾌한 기분에서 도망치듯 술을 부으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는 하는지. 막다른 길에 내몰려도 '살아야 한다'는 정언명령 외에는 온통 흩어지고 산산조각 나는 말장난 같아서, 사람 죽이는 맞는 말도 뿌리치고 인정 없는 옳은 말도 무시했더니 남는 거는 서러운 인생사 한 시대를 이고 가는 인간에 대한 애틋함 뿐이라. 예전에는 설레고 기쁜 것이 사랑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불쌍하고 안타깝고 서글픈 게 사랑이라 여기는 이유가 그건 가봐.
  여름의 __아. 어차피 여름이면 해결되거나 포기했을 일이 지금의 나를 괴롭히고 있겠지. 너를 생각하면 나 조금은 위로가 돼. 괜찮은 거 같아. 숙제 같기만 했던 '토지'도 읽고 있고, 이것도 저것도 다 감기몸살의 원인 같았던 격정도 잘 지나가고 있어. 역사가 어떻게 나를 정의하든 현재에는 혼돈뿐이라는, 지향하는 바가 있는 인간은 방황하더라도 날마다 애쓰고 괴로워하며 옳은 길을 알고 있더라는, 책 속의 말들을 되새기며 삶을 멈추지 않는 것만으로도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혜자가 그러더라. 자기 자신이 너무 애틋하다고. 나도 내가 너무 애틋해서 유독 불쌍하고 서글프려니, 하고 그냥 살면 될 것 같아. 그러니 너도, 혹여나 또 무언가에 시달리고 있다면, 애틋한 자신을 부둥켜안고 텅 빈 질문만 생성하지 말고, 그냥 살아. 될 대로 되라지, 배짱부리면서. 겨울의 내가 지금의 네가 되었듯, 너는 또 다음 겨울의 내가 될 거잖아. 두려워하고 걱정한다고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나고, 될 일이 안 되지는 않을 테니, 애써서 오늘 하루 살았으면 그만인 거야.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

2023년 2월 겨울의 ___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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