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자의엄마,치매에 걸리다> <증명과변명>
나의 고객은 주로, 치매환자와 죽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60대 이상이 가장 높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112 신고를 받는 나의 입장에서는 청년층의 자살 신고가 두드러진다고 느껴진다. 신고율은 청년층이 높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들의 죽을 이유가 뇌리에 더 남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죽을 이유란 사랑의 실패, 취업 후 무기력, 우울증으로 퉁친 애매한 불행들의 합 같은 것들인데, 콧구멍으로 날아드는 모래바람도 견디며 살다가, 정수리에 꽂힌 단 한 알의 모래알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이 그들의 마음인가 한다. 마음 편히 몸을 누일 자리 찾지 못해 육신을 버리려는 마음은 여태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알 수 없을 터, 어찌 그리 하나 같이 돌아갈 곳이 없다 말하는 걸까.
그에 반해 기어코 있던 자리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 어제 오후 신고된 치매환자 어르신은 지나간 자리를 되돌아오기를 여러 번, 대파 한 단을 어깨에 이고 얇은 두 다리로 골목길을 누비고 다녔다. 10시간 동안 cctv를 봤지만, 목적지 없이 이리저리 배회하는 어르신의 이동 기술을 쫓기엔 역부족이다. 따라간 이동 동선은 2시간 30분. 보호자가 알아차리고 112 신고한 게 실종된 지 2시간 30분 후니까 딱 신고된 시점까지만 쫓아간 셈이다. 어르신은 실종된 지 12시간 만에 이웃 주민의 신고로 발견됐다. 발생지에서 차로 30분 거리 집 근처까지 얼마나 돌아왔는지 알 수 없다.
치매환자 어르신은 어떤 실종자보다 추적 난도가 높다. 되돌아오기,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서 2시간 만에 나오기, 20초 걸리는 동선을 4시간 만에 지나가기, 택시 갈아타기, 기사님 마다 목적지 다르게 말하기 등 도주범 뺨치게 추적을 피하는 기술이 뛰어나다. 그래도 그들이 가고자 하는 곳은 언제나 집이나 고향이다. 마음의 목적지 없이 오로지 죽을 장소를 찾아가는 사람과는 사뭇 다르다.
치매환자와 청년층은 이토록 달라 보이지만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감정의 경험'이라고 공통적으로 답할 수 있다. 치매환자는 평생의 정체성을 이루는 기억이 사라져도 몸으로 익힌 기억과 감정은 여전히 남아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다운 판단을 한다. 청년층의 죽음은 대체로 우울과 강박에서 오고, 그 안에는 개별적인 경험과 감정, 개성은 무시한 채 사회가 부여한 기준에 일상적으로 실패한 데서 오는 패배감이 있다. 결국 사람을 그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도, 잃었을 때 죽음을 결심할 만큼 본질적인 것도 모두 '감정'이라는 뜻이다.
사람마다의 고유한 면면을 상상하되, 각기 다른 삶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찾는 일은 즐겁다. 문학, 사회과학, 철학, 자연과학을 두루 읽고 다양한 분야, 다른 연령층에 대한 이해를 넓혀 피부에 닿는 현장의 삶을 꿰뚫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욕심에 비해 책 읽는 속도가 너무 느리지.... 마음이 급하다.
* 요즘은 타자기 치는 재미에 빠졌다. 한 자 한 자 칠 때 마다 가슴이 시원해져. 느리게 시 한 편 치는 시간, 마음을 울린 책의 한 구절 치는 시간, 틀린 글자를 고치지 못해 아쉬워하는 시간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는다. '괴로운 건 바라는 마음 그 자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바라는 건 대부분 내게 주어지지 않는다. 매일 실패해도 괜찮아.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무엇인가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전율이 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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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의 엄마, #치매 에 걸리다>, 온조 아야코
44-46
- #알츠하이머 특징: 해마의 위축이 현저
- 해마: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
- 해마가 손상되면 과거에 저장된 기억은 지워지지 않지만 새로운 것을 저장하지 못하게 된다.
- 기억의 저장고는 대뇌피
- 해마는 새로운 사건을 대뇌피질에 저장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할 때(인코딩)도, 대뇌피질에서 기억을 꺼낼 때(리트리브)도 사용한다.
57-59
- 알츠하이머 뇌 특징
1) 해마가 심하게 위축 2) 대뇌피질에 포함된 후두정피질 활동 약화
- 쉴수록 활발하게 활동하는 영역=기억의 정리
- 후두정피질, 해마가 이 정리정돈에 중요한 역할
- 치매는 현실 자극이 정리정돈 되지 않아 의미파악 어려움
78-79
기억ㅡ단기기억(몇초): 전두엽
ㅡ장기기억
ㅡ서술기억(언어로표현가능):해마
ㅡ절차기억(몸으로기억):대뇌기저핵, 소뇌
*164 절차기억의 학습은 해마가 없어도 가능
166-173
감정 1) 몸의 반응: 정동emotion
2) 정동 자각, 의식에서 느껴진 감정feeling
육체에 가까운 부위, 생명체로서 원시적인 부위일 수록 마지막까지 남는다
- 인류의 뇌:대뇌피질:이성
- 포유류의 뇌: 대뇌변연계:감정
- 파충류의 뇌:뇌간:생명유지
* 치매환자는 이성은 잊어도 감정은 남는다
* 감정시스템이 먼저 작동하고 대뇌피질이 경험을 분석, 축적, 수정
* 감정 관할하는 편도체가 손상되면 의사결정 불가
184-185 맹시-감정시스템
집1 / 좌측에 불난 집2
후두정피질 오른쪽이 손상되어 왼쪽 인식 못하는 편측공간실인 환자는 집2의 화재 깨닫지 못하지만 "어디 살고싶냐" 물으면 무의식적으로 집1 선택
의식적으로는 못보지만 무의식은 본다=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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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명과변명 > - 죽음을 계획한 어느 청년 남성이 남기는 질문들, #안희제
26 그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꺼내지 않기에 그 누구도 상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누구도 상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기에 그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꺼내지 않는다. 이해의 불가능성과 침묵 혹은 생략은 그런 순환 구조 안에 있다. 상대의 감정과 삶을 넘겨짚는 일은 이 순환 구조에서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넘겨짚기는 폭력적이면서 윤리적인 행위다.
84 사실 대상화 자체는 피할 수 없다. 어떤 상황이든 우리가 상대방에 대하여 무언가를 결정하고, 판단하고, 그 결정과 판단을 바탕으로 행동하려면 그의 특정한 부분을 부각시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복잡하고 고유(85)한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가 모른다는 뜻은 아니다. 대상화의 구체적인 방식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85 그래서 나는 제안하고 싶다. 대상화 자체는 피할 수 없으니, 조금 더 윤리적인 대상화를 고민하자고.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진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결과가 폭력적일지 아닐지에 대한 불학실성도 감안하고, 계속해서 수정해 나가야 하는 것이겠지만. 윤리는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실천이니까. 대상화도, 윤리도, 관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구체적인 행동 하나하나의 문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윤리는 실무다.
85 우리는 모두 전형적인 인간들이지만, 우리의 전형성은 각자의 삶 안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배치되면서 서로 다른 인간을 만들어낸다. 윤리적인 글쓰기란 전형성의 내용보다 전형성의 독특한 배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일 테다.
135 시험 사회는 질문과 성찰을 차단하고 실패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게 만들며, 시험 실패를 개인의 능력 자체에 대한 부정이나 망각으로 연결한다. 고려하지 말아야 할 매몰 비용인 노력을 회수할 수 있는 투자금으로 여기게 만들어서 계속 스스로 희망고문을 하게 만든다.
194 우진이 'K-타임라인'이라고 부른 한국적 생애주기는 다음과 같다. 10대에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20살에 대학에 입학해서 1~2년 안에 군대에 다녀오고, 그로부터 2~3년 뒤에 대학을 졸업해서 20대 중후반에는 어딘가에 취직하고, 그 사이에 연애도 하고, 30살 전후로는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그런 생애주기. 그러나 우진은 수능 공부를 6년 하는 동안에 대학교 1학년을 다닌 뒤 1년 휴학을 하고 군대를 다녀왔고, 대학 자퇴를 결심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우진의 20대 후반이었다. 생애주기에 대한 그의 계획은 산산조각 났다. 그런 상황에서 주식투자는 우진에게 유일한 선택지로 주어졌다.
한국 사회의 근대화와 부동산 투기의 연관성을 연구한 인류학자 최시현은 부동산 투기가 사회적으로 부당하고 정치적으로 동의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나와 우리 가족이 그 상황으로 인한 불이익은 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195) 정말로 "고작 그 정도의 마음'을 먹었을 뿐인 일이 "사회적 불평등과 시민들의 주거 불안으로 이어진다."고 아프게 지적한다. 그저 남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괜찮은 대학을 나와서 적당한 나이에 취직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싶었던 우진의 마음, 그리고 이미 모든 것이 글렸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고작 그 정도의 마음에서 시작한 주식 투자 안에서, 우진은 덫에 걸렸다. 자기 착취의 덫.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의 덫. 외면의 덫. 돈의 덫. 또 다른 강박과 불안의 덫.
299 무언가가 나의 진실을 건드린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나에게 상처를 주고,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쉽게 드러낼 수 없는 그런 마음들을 수치심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는 우리의 수치심으로부터 세계의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믿는다.
299 우진에게조차 우진은 수수께끼였다. 당신에게도 우진이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