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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N페르소나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고통에 대하여

by 김반장

한 인간의 정체성은 그 사람이 감내하는 고통으로 가늠할 수 있다. 나는 내게 주어진 고통을 사랑하는 편이다.

나에게는 솔로몬증후군이 있었다. 정답을 외치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 증상이었다. 그러나 나의 정답이 언제나 세상의 정답은 아니므로, 상황과 욕망이 덩굴처럼 얽혀 사건은 곧잘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의 옳음'은 타인의 불안을 자극했고, 각자 옳음을 증명하는 전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전투는 끝날 줄을 몰랐다. 승리는 영원하지 않고 패배자는 어떤 형식으로든 복수를 했다. 보복에 대항해 봐야 아무 말도 먹히지 않았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 이제는 죽겠구나 싶을 때쯤, 전투사슬이 툭 끊어졌다. 그제야, 삶은 또 다른 문을 열었다. '시시비비로부터 해방되어야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걸 배운 것이다.

열심히 옳고자 하는 노력은 얼핏 훌륭해 보이지만, 그것을 결과나 타인의 반응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여긴다면 인생에 득 될 것이 없다. 강박적인 노력은 삶을 승리와 패배로 양분하는 전투로 축소시킨다. '열심히'는 사회의 기능주의적인 명령을 이행하는 방식이지, 그것이 증명해야 할 나의 존재 가치는 아니다.

시시비비의 문제에서 벗어나면 타인의 말에 덜 자극받게 된다. 누군가의 충고/조언/판단/비판은 그 사람의 한계에서 최선일뿐이니 내용은 듣되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다. 하루에 몇 명이 나를 관통하고 지나가든, 사람들의 말에 나의 반응이 휘둘리지 않는다. 아니, 잠시 휘둘릴지라도 영혼은 훼손되지 않는다. 영혼은 고요 속에서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고요의 가장자리에는 '용서'의 문이 있다. '나는 옳다'는 '모자란 나를 용서할 수 없다'와 같다. 모자란 나를 용서하지 못해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증명하면 이내 타인의 옳음이 반격한다. 모자라도 괜찮고, 틀려도 괜찮다고, 그렇게 나를 용서해야 수치심이 무기를 내려놓고 연약한 고요의 심부로 흘러간다.

나를 용서하면 타인도 오래 미워할 수 없다. 나랑 맞지 않다고 판단했던 사람도 시간이 흘러나와 어우러지는 면이 보이고, 내가 호감을 가졌던 대상은 나를 의존하게 하여 구속하기 쉬우니, 누가 나에게 진정 좋은 것인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을 용서하고, 호불호로 선뜻 반응하지 않는 태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호는 집착을, 불호는 불쾌를 일으키고 모자란 나는 쉬이 고통에 빠져든다.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고 피하고 싶은 것을 피할 수 없는 팽팽한 대립 사이에서, 나는 '아 몰라'를 시전 하기로 했다. '막살겠다'는 선포다.

'막 산다'는 말은, 어떤 옳고 그름에도 구속되지 않고 어떤 이익도 좇지 않으며 삶의 흐름에 몸을 맡겨 그 고통마저도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고통은 내가 아니다. 강물을 흘려보내자. 애써도 될 일이 안 되지 않고 안 될 일이 되지도 않는다. 흔들려도 괜찮다. 고통스러워도 괜찮다. '착'에 머무르지 말고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그냥 살자.'

때때로 살이 타고 가슴이 텅 빈 느낌이 든다. 얼어붙은 열망이자, 거세된 욕망이자, 집착의 그림자다. 살아있는 한 완벽한 해방은 없다. 삶은 쉼 없이 생동하고, 무언가 해결됐다거나 나아졌다는 희열은 이내 추락한다. 이성복 시인의 말처럼, 결론은 없다. 나는 언제나 미완성인 채 우왕좌왕 살아간다.

점점 삶에 대해서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과정 속에서 흔들리고 헤매면서 '옳음 지향'의 움직임만 있을 뿐, '옳음'은 도달할 수 없어 나의 현존은 거대한 불확실성의 우주에서 현기증을 느낀다.

타인의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곧 깨지고야 말 유리조각 같은 조언은 삼키는 게 낫다. 그러나 기어코 한 마디를 하고 말았다면, 그 또한 내가 틀릴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되어야 하고 세계를 향해 마음을 여는 전제에서 사랑의 실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고통스러운 삶의 전투에서 벗어나 자신을 용서하고 타인을 친절하게 대하는 데 도움을 준다.



< #내가틀릴수있습니다 >

- 17년 간 승려로 살아간 스웨덴 수행자

15 의식적 현존 상태, 즉 지금을 온전히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 = 알아차림awareness

130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주문 세 번 외기

141 "나티코, 이 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행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네. 이 일을 끝내고 우리가 어떻게 느끼느냐, 그 점이 중요하다네."

176 "잘 들어보세요.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무작정 믿지 않아야 합니다.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아야 합니다. 현재 상황을 온전히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온 우주가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라 운행된다는 근본적 진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진실이 뭐냐고요?"

당신이 알아야 할 때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178 생각과 통제력을 내려놓기, 내면을 돌아보고 경청하기, 현재에 집중하기, 정기적으로 편안하게 쉬기, 신뢰하며 살기. 이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두 생각에 휘둘리는 대신 우리의 현실에 더 깊이 뿌리내린 소중한 것들을 탐지하는 일이지요. 생각이 거품처림 이는 곳에서 등을 돌리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우리의 생각은 더 가치를 띠게 되지요. 우리 안의 현명한 직관이 더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생각의 질이 개선됩니다.

185 통제 욕구를 내려놓고 당면한 상황을 의식하려면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기를 내야 합니다.

186 영적 성장의 결정적인 도약은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기를 내는 데서 이뤄집니다. 우리의 무지를 편견으로 가리지 않을 때, 우리 마음대로 앞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참아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가장 현명해집니다. 삶을 뜻대로 휘두르려고 노력하는 건 끊임없이 흐르는 물살을 맨손으로 붙잠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끊임없는 변화는 자연의 속성입니다.

306 (죽음) 제목: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
307 이제 저는 축복받은 자의 기쁨을 느끼며 어떤 예측도 불허하는 모험을 떠납니다. 걱정도, 의심도 더 이상 없습니다.
당신의 존재가 햇볕처럼 따뜻했습니다.
온 마음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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