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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사진을 보내면 지적이 돌아온다

이 글은 육개장 한 냄비로부터 시작되어....

by 아드리셋


부추전 사진을 보내면, 부추가 너무 적다

애들하고 방학 때 간단하게 싸 먹은 김밥 사진을 보내면, 당근을 넣지 왜 안 넣냐

육개장 사진을 보내면, 겨울 대파는 맛있는데 파를 왜 이리 적게 넣었냐

새로운 레시피로 한 샐러드 사진을 보내면, 후추가 너무 많이 뿌려졌네


애들 사진 보내면, 웃음이 자연스럽지가 않네

교실에서 찍은 단체사진 보내면, 키가 너무 작아 어떡하냐


이번엔 또 뭐부터 지적할까?

사진 보내면서도 궁금하다.

근데도 매번 사진을 보낸다.






옛날에 내 친구는 시어머니한테 애기 사진 보내면 애가 춥겠다, 덥겠다, 양말을 안 신겼네, 머리가 차갑겠네 어쩌고 저쩌고 너무 짜증이 나서 시어머니한테 애 사진 안 보내게 된다고 했었는데. 난 그래도 이것저것 같이 공유하고 싶은 게 많은 친정엄마라 별 수가 또 없다.


특별히 엄마랑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니까. 이것저것 사소한 걸 함께 하고 싶은 보통의 모녀 사이. 거기다가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의 의무감 한 스푼 얹는다. 내가 아니면 누가 엄마한테 이렇게 시시콜콜 얘기해 주겠어. 100이면 100 매번 저렇게 반응하는 건 아니니까. 열에 한두 번은 지적 없이 그냥 맛있겠네, 귀엽네 하기도 하니까. 아무래도 바로 나오는 지적보단 바로 나오는 칭찬, 감탄, 인정이 더 좋다.


걱정해서 하는 소리란 건 안다. 오랜 주부, K-어머니의 평범한 잔소리, 아이들의 할머니가 하는 흔한 걱정일 수도 있다.

건강에 안 좋은 밀가루 보단 부추를 많이 먹이고 싶으니까, 평소에 안 먹는 당근을 김밥에라도 넣어 먹이고 싶으니까, 대파를 듬뿍 넣으면 국이 맛있어지니까, 사진으로 봐도 후추가 많으니까.

억지웃음보다는 자연스러운 웃음 즉 내가 웃겨가며 똥 얘기 해가며 꺄르르 웃어 넘어갈 때 순간포착해서 엄청 정성스럽게 찍은 그런 사진들이 이쁘긴 할 테니까. 또래에 비해 키가 작은 손주가 너무 걱정되는 할머니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좋은 소리만 듣고 살겠다는 뜻도 아니다.


이해와 별개로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또 또 또. 그냥 좀 넘어가지? 그냥 좀 좋은 점만 봐주지? 아니 뭐 그렇게 중요한 문젠가? 대체 얼마나 완벽한 사진을 봐야 만족스러울까?

큰 상처나 사건은 아니지만,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이런 지적이 자꾸 쌓이다 보니 요즘은 내 낮은 자존감에 이런 것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단 생각이 든다. 물론 엄마 탓을 하고 싶진 않다. 엄마 탓 부모탓은 세상에서 제일 쉽지.


그렇다고 엄마가 여태 나를 엄청 들들 볶은 것도 아니다. 교육열이 높은 사람도 아니었고, 완벽 완벽 완벽을 매일 염불 외는 빈틈없는 사람도 전혀 아니다. 그저 엄마도 자존감이 낮을 뿐. 자신의 삶에 늘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스스로 내가 집에서 하는 게 뭐냐, 나는 게으르다(참 바지런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더 부지런한 사람만을 동경한다), 나는 요리도 못한다(실제로 잘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한심하다, 이런 생각에 지배받고 있는 사람.(천성도 있겠지만, 전업주부로의 오랜 삶이 한몫할지도 모른다.) 그런 사고방식이 자꾸만 (본인의, 딸의, 또는 만사의)덜한 점, 모자란 점을 무의식적으로 바라보게 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뭐가 한심해, 아니야 아니야 하면서 이야길 들어주지만(물론 본인은 받아들일 생각 1도 없지만), 어느 순간 나 스스로도 엄마처럼 생각하고 있음을 느낀다. 걱정처럼 보이는 지적을 지긋지긋해하면서도 어느 순간 나도 아이들한테 수시로 그러고 있음을 깨닫는다.


가난의 대물림만큼이나 무섭다. 낮은 자존감의 대물림. 내 말, 내가 삶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 무심결에 아이들에게 툭 내뱉는 리액션들. 어떤 교육보다 자연스러우면서 중요한 것들. 난 엄마랑은 좀 다르고 싶은데 닮아가는 거 같아 영 달갑지가 않다. 엄마들의 흔한 잔소리라고 치부하기엔 찝찝한 구석이 있다.

무조건 칭찬만 해줘야 한단 게 아니다. 나쁜 점보단 좋은 점을 보고, 안 한 것보단 한 것을 보고, 안 예쁜 것보단 예쁜 걸 보고 싶다. 그러면서도 필요한 지적은 놓치지 않고 싶다.(글로 쓰면서도 벌써 어렵네)


다르고 싶단 생각을 끝까지 놓으면 안 될 거 같다. 오래도록 보고 듣고 자랐으니 억지로라도 더 애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엄마한테 저녁 육개장 사진 하나 보냈다가 글감까지 생긴 저녁. 운이 좋은 날이다.



후추가 많은 샐러드


대파가 적은(가라앉아서 억울한) 육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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