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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국부랑자 Aug 04. 2018

독일보다 더 독일스러운 휴양지, 마요르카

스페인 섬 마요르카의 한 호텔 이용기 

 늘 아프리카 여행에 목말라있던 나는 구글에서 항공권을 검색했다. 너무 비싼 항공료 탓에 포기하고 지도상에 표시된 프랑크푸르트발 항공권들의 가격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한 섬. 이름하야 마요르가(mallorca)였다. 친숙한 이름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섬은 독일 사람들의 무수한 여행썰의 원천이었다. 독일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늘 여행 얘기를 하게 되는데 그때 대부분이 언급하는 인생 섬이 바로 마요르카다. 그런데 비행기표 가격이 왕복 99유로. 한국돈으로 13만 원밖에 안 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저 마요르카의 해변에 서면 아프리카 대륙이 보일 것만 같았다...(는 상상일뿐) 그래서 무턱대고 결제부터 하고선 여행정보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왠 걸... 배낭여행은커녕 전부 신혼여행이나 바캉스같이 휴양을 즐기러 가는 곳이 아닌가. 난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휴양이란 것과는 거리가 있었기에 여행도 늘 방수 기능이 장착된 배낭과 함께했었다. 그렇게 패닉에 빠져 며칠을 보내고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휴양을 즐겨보자는 생각에 통장 잔고를 영혼까지 끌어모았고 호텔을 예약하기로 했다. 갔다 오면 소시지와 빵만 먹어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던 순간이었으리라.


휴양이라곤 모르지만 여행에서 잔뼈가 굵은 나는 제주도의 두 배가 넘는 큰 섬에서 주요 해변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 방법은 바로 호텔의 밀집도를 보는 방법이다. 여행정보가 빈약한 이 섬의 주요 해변가를 내가 알리가 만무하기에 호텔 검색사이트에서 지도로 호텔을 표시해두고 호텔들이 밀집한 해변 위주로 후보군을 추려냈다. 그 결과 가장 핫플레이스(?)라고 추정되는 Alcudia 해변으로 가기로 했다. 


호텔에서 찍은 Alcudia 서북쪽 해안


내가 잡은 호텔은 그중에서도 서북쪽에 위치한 모래사장 바로 앞에 있었는데 이게 공항에서 참 멀었다. 지도에선 참 가까워 보였는데 새삼 지도의 축척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된 계기였다. 처음에 영어로 손짓 발짓해가며 교통권을 사고 버스를 탔다. 이때부터 정말 걱정이 컸는데 이 버스가 호텔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까지 가는지 난 몰랐다. 구글맵이라는 훌륭한 친구가 옆에 있어도 너무 멀리 내려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 고민을 하다가 지쳐서 난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그냥 알쿠디아 어딘가에만 내려주시면 ㄳㄳ 이런 심정으로 잠을 청했다. 그런데... 잠결에도 들린 구원의 소리가 있었다. 바로 내가 예약한 호텔...그 호텔 이름을 기사 아저씨가 말해주면서 다음 정류장이라고 방송해주셨다. 이 방송이 호텔에서 준 돈으로 광고처럼 나온 방송이었다면 자본주의에 감사한다. 


긴 걱정과 간단한 해결 끝에 호텔에 와서 체크인을 하면서 오버부킹 때문인지 업그레이드를 시켜줘서 개인 옥상 테라스가 딸린 방으로 안내받았다. 급식체로 표현하자면 이런 게 바로 개꿀? 무튼 그렇게 무사히 호텔까지는 입성했지만 내겐 그 어떤 여행책자도 없었고 어디까지 내가 사용할 수 있는 호텔시설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저 사진에 보이는 나무로 만든 파라솔에 가서 드러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 고향 부산의 가르침에 따르면 분명 유료다. 해운대와 송정의 바가지요금이 생각나서 감히 누워보겠다는 생각을 못했다. 그렇게 해변가에서 물장구나 좀 치면서 놀고 나니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근데 다시 시내까지 나가자니 엄두가 안 나고 호텔 바는 왠지 두려웠다. 그래도 너무 목이 말라서 호텔방에 가서 지갑을 가지고 내려와서 해변을 지나가던 중 문득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같은 일회용 컵에 다양한 음료수들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의 팔목에 나처럼 팔찌가 채워져 있다는 사실도 인식했다. 아, 설마 저게 공짜일까? 라는 생각과 함께 호텔 예약할 때 보았던 "all-inclusive"라는 문구가 뇌리를 스쳤다. 에이 설마...그냥 수영장 같은 시설만 포함이겠지...반신반의하며 호텔 데스크에 어쭙잖은 영어로 물어봤다. 그녀는 날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놈... 이런 생각이었으리라. 


그러다 또 나의 뇌가 열일을 했다. 옆에서 어떤 독일인이 무려 "독.일.어"로 지 할 말을 겁나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근데 더 웃긴 것은 직원이 독.일.어로 대답하는 게 아닌가? waaaaaaaaas ist passiert?(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가 입에서 절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조심스레 물어봤다. 나 독일어로... 말해도 돼?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warum nicht?" 즉 왜 안 되냐...? 였다. 충격과 혼돈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난 독일어로 내 궁금증이었던 올인클루시브의 뜻을 물어봤다. 그러자 호텔바, 식당, 파라솔 모두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다는 뜻이란다. 오.마이.갓 그렇게 내가 흘려보낸 반나절은 무음료 무파라솔 무식사로 가득찼었다. 


양손 가득 스페인 맥주인 에스트렐라 맥주를 받아 들고 파라솔에 누웠다. 그때서야 사방에서 들려오는 독일어 소리. 참 행복이란 별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없던 게 생기는 거. 그게 행복이란 생각을 하며 휴양을 즐겼다. 그 끝에는 황홀한 일몰과 일출이 있었다.

일출


아름다웠다. 여태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은 공감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죽자살자 걷고 또 걸었다. 그런 것만이 여행이라 생각했다. 휴양이란 그저 돈 많은 자들의 사치라 여겼다. 내 그런 오만과 편견에 후회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눈물 나는 그 순간이 행복이었다. 비록 저 끝에 아프리카 대륙이 보이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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