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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치 Jan 27. 2022

무려 1박2일 가족여행.. 웃으면서 끝낼 수 있을까?

 

“으.. 나 진짜 가기 싫어..”


가족 여행이 결정되고 여행 가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여행 좋아하는 애가 왜 그래? 할 수 있지만 가족 여행은 말이 다르다. 분명 출발하는 차에서부터 삐걱거릴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준비 안 끝났는데, 이미 차에서 시동 걸고 기다리는 아빠. 아빠가 버럭하기 전에 급하게 짐 챙겨 나오는 엄마. 중간에서 눈치 보는 오빠와 나. 안 봐도 눈에 그려지는 불편한 상황이 싫었다. 언제부터 우리 가족이 같이 여행 다녔다고 갑자기 여행을 계획한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1박 2일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느꼈다. 우리 가족도 웃으면서 여행할 수 있구나. 가족 여행 다음에 또 가도 되겠는데?



따로보면 다 괜찮은 사람, 그런데


우리 가족은 한 명 한 명 따로 보면 나무랄 곳 없이 좋은 사람들이다. 부지런하고 책임감 강한 아빠, 상냥하고 긍정적인 엄마, 똑똑하고 자상한 오빠, 대책없이 귀여운 나까지. 가족 모두 사람 좋다는 말은 빠짐없이 듣고 산다.


그런데 이렇게 괜찮은 사람 4명이 모이면 총체적 난국이다. 뭐랄까. 눈, 코, 입 따로 보면 이쁜데 모아 놓으면 묘하게 이상한 얼굴이랄까? 뭐든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어야 하는 파워 J 성향의 아빠는 이래도 좋고~저래도 좋고~ 느긋한 파워 P 성향의 엄마와 상극이다.


식당에 가면 아빠는 제일 비싸고 좋은 메뉴로 자리에 앉으면 바로 주문해야 한다. 반면에 엄마는 “보자 보자~ 여기 뭐가 맛있어? 뭐 먹지잉?” 신나게 고민한다. 그러면 바로 아빠한테 한 소리 날아온다. “거~ 볼끼나 뭐있노. 딱 보면 뭐 주문 해야될지 모르겠나.”


삐죽. 아빠의 신경질적인 말에 엄마는 또 의기소침해진다. 그러면 우리는 옆에서 아빠 눈치도 살피고, 엄마 눈치도 살펴야 한다. 상상만 해도 불편한 이 상황이 우리 가족의 현실이었다.


물론 이번 여행에서도 아빠는 차에서 “우-씨”를 몇 번이나 내뱉었는지 모른다. 아빠는 고속도로가 막히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추월할 때만 추월차선 사용하고 아니면 2차선 이용하면 차가 막힐 리가 없는데, 왜 막히냐는 것이다. 1차선에서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차들을 보면 욕한다. “즈 스끼는 빨리 가지도 못하면서 왜 1차선 써. 우-씨”


파워 FM인 아빠가 보는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그런 아빠와 함께 여행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많이 필요하다. 분명 아빠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여행 중 많이 발생할 것이다. 아빠의 습관성 ‘우-씨’에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대책을 세웠다.



화목한 가족여행을 위한 대책


1. 아빠의 체력을 고갈시키자.


일반적인 대화가 거의 불가능한 우리 가족을 위해 특별한 여행 코스를 준비했다. 대화가 필요 없는 4시간짜리 산행 코스다. 산을 좋아하는 아빠는 등산할 때만큼은 나름 온화하다. 예전에는 같이 등산할 때 늦게 올라온다고 잔소리를 했었는데, 이번엔 상황이 좀 바뀌었다.



아빠의 체력을 고갈시켜 말할 힘도 없는 코스를 준비했고, 예상대로 아빠는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여행 첫날 새벽 운전 3시간은 아빠의 체력을 빠르게 소진했다. 곧바로 왕복 4시간 코스의 등산을 감행했다. 뒤이어 숙소까지 1시간 30분 거리의 운전 역시 아빠가 맡았다.


참고로 아빠는 운전대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는 답답해서 못 견디는 스타일이다. 예전에는 뭐든 직접 해야 성에 차는 아빠와 함께 여행하는 일이 힘들었다. 사소한 일도 쉽게 넘어가지 않고 계속 지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알았다.


산에서 나무 줍는건 유전이었나?


이제보니 뭐든 직접 해야 하는 아빠를 만난 건 행운이다. 운전도 아빠가 다 해주시고, 맛집도 척척 다 찾아주시고 그냥 따라만 가면 되니 참 편했다. 물론 아빠가 잔소리할 체력조차 남지 않았던 것이 신의 한수였다.



2. 엄마는 오빠가 케어한다


경험에 의하면 등산도 안전한 코스는 아니었다. 아빠는 산을 날아다니는데, 엄마가 중간에 쉬거나 포기하면 싸움 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빠가 엄마를 전적으로 맡았다. 나는 아빠와 함께 산을 빨리 올라가고, 오빠가 엄마와 등산 속도를 맞췄다.


오빠 말에 의하면 엄마가 계속 그만 올라가고 싶다고, 나중에 너 내려오면 중간에서 만나자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아빠의 잔소리를 피할 수 없다.


여행 시작부터 분위기를 망칠 수 없었던 오빠는 엄마가 덥다고 벗은 무거운 겉옷을 대신 들고 등산했다. 엄마는 무사히 정상까지 올라왔고 우리 가족 다 같이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컵라면 4개 있는 사진이 왜이렇게 좋지?



아빠도 “느그엄마, 예전 같았으면 즈~ 밑에서 안 올라오고 기다렸을낀데, 많이 발전했다.”고 말하며 씨익 웃었다. 굉장히 만족스러워 보였다. 오빠가 화목한 가족 여행을 위해 큰일 한 부분이다.



내가 준비한 대책은 이 2가지였다. 그런데 여행 중 뜻밖의 아군을 만났다. 바로 엄마와 아빠의 긍정적인 변화다.



많이 부드러워진 아빠


사실 체력을 많이 소진해서 말할 힘도 없었다고는 했지만, 우리 아빠 이 정도로 피곤해하는 사람은 아니다. 진짜 미친 체력을 자랑한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부드러워지셨다. 원래 밥 먹고 커피 마신다고 하면 째려봤는데, 이번에는 아빠가 먼저 카페를 제안했다.


밥 먹고 아이스크림 먹으면 살찐다고 한 소리 하셨는데,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나면 한소리 했는데, 이번에는 아빠도 느긋하게 기다려주셨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별 탈 없이 여행할 수 있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원래는 식당 가는 길에 의견 안 맞아서 다시 집에 오는 그런 가족이었다.




힘들어도 쉬지 않고 함께한 엄마


엄마는 체력이 약한 편이었다. 잠도 많고 느긋한 스타일이다. 그래서 아빠랑 많이 부딪히는데, 엄마도 많이 변했다. 아빠 따라 새벽 운동을 시작한지 3년이 넘었다. 예전에는 여행가면 "엄마, 차에 있을게. 구경하고 와"가 단골멘트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끝까지 모든 코스에 동참했다. 첫날 2만보 걷고, 다음날도 반나절 만에 만보를 걷는 힘든 여정이었지만 포기 하지 않았다.






아, 우리도 진짜 가족 같네


예전에는 사소하게 부딪혔던 부분이 이번 여행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이게 가족인가. 몇십년 만에 느껴본 감정이다. 화목한 가족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줄 알았다. 내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화목한 가족 관계였다. 아무리 좋은 일이 많이 생겨도 늘 마음 한구석은 우울함이 있었다.


가족만 생각하면 눈물이 날만큼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다. 퇴사를 결정했던 때도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아 정서적으로 꽤 불안했다. 그냥 다 따로 따로 살면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한적도 많았다. 다 따로 떨어져 살다가 한 번씩 얼굴보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마음속 깊이 원하던 가족의 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난 우리 가족 모두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 지금처럼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며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싸우기 싫어서 떨어져 지내는 가족은 되고 싶지 않다. 조금씩 더 가까워지기 위해 한 번씩 부딪히는 것 정도는 쿨하게 받아드리고 싶다. 이제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 노력하고 있으니까.



가족같네. 우리도 진짜 가족같다!! 1박 2일 함께 여행하면서 한 번도 싸우지 않고 행복하기만 한 여행이 될 줄 상상도 못했다. 화목한 가족은 누구 한 명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글 쓰면서 여행을 돌아보니 가족 모두 이번 여행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빠가 퇴직하면 자유인이 되어 전세계를 여행하겠다고 하시는데, 그 여행에 우리도 껴도 될 것 같다.


가족 여행 한 번 성공했다고 너무 오바했나. 그치만 이 행복한 기분을 잊고 싶지 않다. 아빠가 다음 여행은 제주도라고 했다. 아빠는 혼자 여행 계획 말한건데, 오빠가 옆에서 가족 여행으로 선언해버렸다. 제주도로 가게 되면 한라산 등산하고 다같이 기절하는 코스가 좋을 것 같다.




최대한 대화는 줄이고 몸이 힘든 여행이 우리 가족에게 딱 맞다. 아 ! 행복하다 !



싸울 기력도 없다!극기훈련 여행 코스


- 새벽 6시 태백산으로 출발

- 오전 10시 태백산 등산 4시간

- 숙소까지 이동 1시간

- 숙소는 해변가 산책 가능&온천 가능

- 숙소 도착 후 바다 구경

- 오후 5시

- 모든 체력 소진 후 저녁&술한잔

- 숙소로 돌아와 기분좋게 맥주 한잔

- 밤 10시도 전에 다같이 기절

- 다음날 온천욕으로 다함께 릴렉스

- 맛있는 해장으로 술기운 빼기

- 산책하면서 좋은 풍경 구경하기

- 바다보면서 커피 마시기

- 도째비골 미끄럼틀 타기(짱무서움)

- 오후 3시 여행 더하면 싸움남

- 빨리 집에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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