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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전신간 Jun 11. 2023

이 수분 크림 사도 될까? 오늘로 세 번째

맞춤형 화장품이 정답은 아니다


1. 화장품 유목민을 아십니까


유목민이란, 정해진 거취 없이 목축업을 하며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다. 이들은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르지 않으며 가축을 이끌고 초원 등지를 찾아다닌다. 이 특성에 주목하여 '화장품 유목민'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화장품 유목민(또는 뷰티 유목민)은 다양한 이유로 현재 사용하는 화장품에 만족하지 못해서 이 제품, 저 제품을 연달아 구매, 사용하는 소비자를 말한다. 화장품 유목민은 기초면 기초, 색조면 색조 모든 화장품 영역에서 발생하고, 토너, 크림, 립밤, 섀도우 등 품목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여러 제품을 시도한 끝에 결국 맘에 드는 제품을 찾을 경우, 그 제품은 '정착템'이라고 부른다. 이 단어 또한 화장품 세계의 신조어로서 만족스러운 화장품, 두고두고 계속 쓰고 싶은 화장품을 뜻한다.


23년 6월 9일자 구글 '정착템' 이미지 검색 결과, 총 13개 중 10개가 화장품 정착템의 의미로 쓰였다.(출처: 구글 검색)


드디어 고된 유랑 생활 끝에 향후 몇 개월, 내지는 제품이 단종되기 전까지 마음의 안정을 찾은 당신에게 축하를!




2. 신중하게 고른 오답


답이 없나, 아니면 답을 못 찾는 건가.

지성 피부지만 맨 얼굴보다는 크림 하나라도 바르자고, 나름 고심해서 수분 크림 산다. 그런데 산뜻하다는 설명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은 맨 얼굴일 때보다 더욱 미끌거리고, 코 밑의 각질은 사라지지를 않는다. 어딘가 마음에 안 든다. 실패한 것 같다.


젤 타입 수분 크림의 상세 페이지 문구를 소비자 입장에서 읽어보았다. 내가 찾던 바로 그 제품인 것만 같다. (출처: 제품 검색 후 직접 편집)


오늘도 정착에 실패

지성 피부니까 지성 타입 제품을 샀을 뿐인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 애꿎은 내 취향과 피부 탓으로 돌리기엔 내 돈 주고 내 물건 사는데, 그 정도도 고려 못할 일인가 싶다. 각종 뷰티 스토어와 매장에서는 내가 당신의 정착템이라며 아우성이지만, 이 모든 게 그저 어렵기만 하다.


한 브랜드 내에서도 집중보습, 진정보습, 3초보습으로 나뉘고 '3초 집중 진정보습'은 없다. 셋 다 포기할 수 없어서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출처: 구글 검색)



3. 상세 페이지 아니고 상상 페이지


제품에 대한 기대가 현실과 어긋나는 이유 첫째, 상품의 정보를 이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제품에 대해 궁금해하는 건 딱 하나, '내 피부에 좋은가'. 이게 핵심이다. 그런데, 판매자도 이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판매자는 과대, 과장 광고의 범위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제품 상세 페이지에서 원하는 내용을 강조할 수 있다. 그리고 소비자는 제품의 이미지를 이해한 걸로, 제품을 이해했다고 착각한다. 


이 크림을 바르면 당장이라도 물방울이 튀길 것 같은 촉촉한 피부로 만들어줄 것 같다.(출처: 구글 검색)


이 착각은 상품 정보 제공고시에 나온 성분과 상세 페이지 내용을 비교해 가면서 해소'는' 할 수 있다. 그러나, 화장품의 전성분은 너무 어렵다.


소비자는 상품에 대해 알 권리가 있으므로, 고시 대상인 전성분 목록은 얼마든지 확인 가능하다. 그러나 전성분을 살펴본들 이 성분이 내 피부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여간 관심 있지 않은 이상, 보통 사람이 수많은 화학 명칭들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다.


연구원 관점에서 제품을 분석했다. 성분에 익숙해지면 누구든지 이 정도 분류는 할 수 있지만, 함량까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출처: 제품 검색 후 직접 편집)


또한 성분이 효과를 나타내려면 함량도 중요한데 함량 정보는 공개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제품 선택 시 소비자가 이를 활용하기란 쉽지 않다.




4. 내가 좋아하는 걸 너도 좋아


제품에 대한 기대가 현실과 어긋나는 이유 둘째, 내가 좋아한다고 피부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지성 피부가 화장품 정착이 제일 어렵다고 본다.


건성 피부는 맨 얼굴이 불편하니까 세안 직후 어떤 제품이든 바르는데, 지성 피부는 피지가 분비되어 당장은 불편하지 않지만 수분이 증발한 피부 위로 피지가 덮이는 셈이므로 유수분 균형은 틀어진다.


세안 후 건성 피부는 곧바로 화장품을 발라서 유수분이 공존하고 지성 피부는 유분만 있다.(출처: 직접 편집)


그래서 지성 피부도 화장품은 필요한데, 넘치는 피지를 소위 개기름이라고 표현할 만큼 부정적으로 인지하고 살다 보니 뭘 바르든지 끈적이거나 무겁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보습제 특유의 촉촉함을 끈적임으로 받아들이고, 산뜻한 사용감에 치중해서 제품을 구입한다.


그러면 당장은 '촉촉하다, 끈적인다'와 같은 사용감만 알 수 있으니 정작 피부에 필요한 제품은 쓰지도 못 채로, 쓰면 쓸수록 이번에도 정착에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5. 예측불허의 인간


이처럼 시행착오를 겪는 게 힘들어서 원래 쓰던 걸 계속 쓰는 사람도 있고, 일부는 지금 쓰는 게 아주 마음에 들진 않아도 혹시 새로운 제품을 쓰면 트러블이 날까 싶어서 정착하는 경우도 많다.


많은 선택지를 전전하던 화장품 유목민 생활을 끝낼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출처: 구글 검색)


오직 나의 피부와 취향에 최적화된 화장품이 있다면 그 제품만 쓰게 될까? 맞춤형 화장품은 취향에도 맞고 피부에도 적합한 화장품을 찾던 사람을 위한 해결책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화장품 유목민이라는 용어도 이제는 시대의 산물로 남게 될 것이다.


약 5년 전 맞춤형 화장품 브랜드로 소개된 LG생활건강 르메디 기사 사진(출처: 구글, 하단 기재)


그러나 맞춤형 화장품 하나만으로 나를 가꾸는 일이 쉬워질 순 있어도, 이로서 피부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이 일단락되거나 제품의 다양성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명시된 효능대로 효과를 발휘해야 하고, 기대와 어긋나면 부작용이라고 하는 의약품과 달리 화장품은 그렇게 진지하고 심각하게만 볼 물건은 아니다.




6. 답은 원래 없었다




나의 모든 걸 파악한 최적의 선택지를 받아도 거기에 없는 그 무언가를 꿈꾸는 게 사람이다. 유목민 생활은 물론 고달프지만, 과거의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흥미를 갖고 계속 다른 제품을 찾아 나서는 사람도 여전히 있을 것이다.


맞춤형 화장품을 쓰더라도 각 브랜드의 제품마다 차이가 있을 테니 그걸 비교하는 것도 재미고, 기성품과 비교해서 그 제품이 나의 맞춤형 화장품, 즉 정착템이 되는 새로운 발견을 할 수도 있다.


여드름을 화장품으로 박멸할 순 없지만 이렇게 알바생이 추천하면 솔깃해지고 재밌는 유목민 생활은 계속 된다.(출처: 구글 검색)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지만 맞춤형 화장품내게 맞는 제품을 찾는 유목민 생활이 너무 길어진 찰나 방황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즐거움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길잡이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자료 출처


https://cosinkorea.com/mobile/article.html?no=47965

내 피부에 맞는 화장품, 로봇이 2분 만에 만들어준다 - 파이낸셜뉴스 (fnnews.com)

https://www.cosinkorea.com/mobile/article.html?no=19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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