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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삼팩토리 Jan 09. 2024

'두 개의 심장' 가진 이주 창업자들의 송년회에 가다

베를린에서 만난 이주 배경 가진 창업자들의 성공과 혁신

베를린은 인구의 22%가 외국인이다. 재밌는 것은 베를린 창업생태계에서도 그 비율이 유지가 된다는 것이다. 베를린의 스타트업 창업자 21.2%는 외국인이거나 이주한 사람들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미국의 기업가정신센터(Center for American Entrepreneurship)가 2017년 발표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창업가의 이주 배경은 혁신적인 기업이 성공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독일의 창업생태계에서는 그 연구의 결과를 뒷받침할 만한 수많은 성공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2023년 베를린시의 인구 구성. 사진=베를린-브란덴부르크 통계청


터키계 독일인 연구자 우구르 샤힌(Uğur Şahin)과 외즐렘 튀레지(Özlem Türeci) 부부의 생명공학기업 바이온텍(BioNTec)의 사례는 유명하다. 이들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백신을 개발해 전 세계에서 주목받은 이민자 출신의 창업자 부부다.  


이 부부는 2001년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암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가니메트(Ganymed)제약을 설립해 2016년 일본 아스텔라스제약에 약 14억 달러(1조 8200억 원)에 매각했다. 그 사이 2008년 암에 작용하는 mRNA 기반 면역 치료제를 개발하는 또 다른 회사 바이온텍을 설립했다. 


이때 치료제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해 초빙한 사람이 헝가리 이민자 출신으로 미국에서 연구하던 카탈린 카리코(Katalin Karikó) 박사다. 카리코는 당시 변방이라고 여겨지던 mRNA 연구를 30여 년간 포기하지 않고 지속했다. 바이온텍의 기술에 그녀의 연구가 도입되면서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카탈린 카리코 박사는 2023년 공동 연구자인 드류 와이즈먼 박사와 함께 노벨생리의학생을 수상했다. 


바이온텍뿐만이 아니다. 10분 배송으로 유명한 유니콘 ‘고릴라즈(Gorillas)’(터키), 한국 배달의 민족을 인수한 ‘딜리버리히어로(Delivery Hero)’(스웨덴), 과학자와 연구자를 위한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 ‘리서치 게이트(ResearchGate)’(시리아), 오픈뱅킹 플랫폼 ‘래이즌(raisin)’(조지아), 중고자동차 거래 플랫폼 ‘아우토아인츠’(Auto1.com)(터키), 여행 플랫폼 ‘오미오(omio)’(인도), 다양한 여행 액티비티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마켓 플레이스 겟유어가이드(GetYourGuide)(중국), 의사과 병원 매칭 플랫폼 ‘쿠노메디컬(Qunomedical)’(캄보디아·중국), 클라우드 코어 뱅킹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맘부(Mambu)’(우크라이나·포르투갈·캐나다)의 공통점은 창업자들이 모두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주한 창업자들이 설립한 독일의 유명 스타트업.


#이주한 창업자들이 독일 창업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  

독일 스타트업협회(Startupverband)는 2021년에 ‘이주 배경 창업자 모니터(Migrant Founder Monitor)’를 발간해 이주 배경 창업자가 독일 혁신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여기에서 이주 배경이란, 창업자 본인이 독일로 이주한 경우뿐만 아니라 부모 세대가 이주해 독일에서 태어난 2세 창업가들도 포함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독일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20% 이상을 차지하는 이주 창업자들은 독일 경제 혁신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특히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에 월등히 이주 창업자 비중이 높은데, 이들은 대부분 이주 1세대다. 이는 독일이 스타트업의 국제적인 핫스폿으로서 매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주 1세대 창업자의 91%가 학위를 보유했고, 그중 절반은 STEM(이공계) 분야의 학위를 가졌다. 전체 창업자 84%가 학위를 보유한 것보다 더 높은 수치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주자들은 전체 독일 노동 인구의 25%, 자영업·프리랜서의 21.7%, 스타트업 창업자의 20.3%를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베를린(21.2%)과 쾰른, 본, 뒤셀도르프 등이 속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26.6%)가 이주 창업자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베를린은 해외에서 이주한 1세대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는 독일에서 태어난 이주 2세대가 창업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독일 도시별 이주 배경을 가진 창업자의 비율. 사진=독일 스타트업협회


이주자들이 창업한 스타트업의 54%는 영어를 업무 공식 언어로 사용하고, 평균적으로 팀원의 47%가 외국 출신이다. 이는 이들 스타트업이 해외 네트워크를 더 쉽게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독일 스타트업에 외국 출신 직원이 평균 27%인 것과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이주 1세대 스타트업의 평균 직원 수는 10.2명(일반 스타트업은 14.3명), 투자 유치는 평균 110만 유로(일반 스타트업은 260만 유로)였다. 이 수치는 독일 창업 생태계에 또 다른 과제를 던져준다. 이주 창업자들이 성공하는 데 여전히 많은 장애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두 개의 국적,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테크업계에서는 이주 창업자들이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를 응원한다. 투하츠(2hearts)는 테크신에서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만든 커뮤니티다.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테크회사에서 일하거나 투자자이거나 앞으로 창업하고 싶은 대학생이거나 누구든 ‘테크신’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간단한 자기소개를 통해 투하츠 커뮤니티에 가입할 수 있다. 그 이름처럼 한국-독일, 터키-독일, 베트남-독일 등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국가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두 개의 심장’을 모두 뛸 수 있게 커뮤니티가 지지해주고 돕는다. 


윅스(Wix)의 독일어권 지역(DACH) 총괄본부장 출신 이스켄다르 디릭(İskender Dirik), 다국적 미디어 회사 베텔스만의 M&A 부문 부사장 출신 옥타이 에리치야즈(Oktay Erciyaz), 독일 최대 출판기업 악셀 슈프링어(Axel Springer) 투자·운영팀장 출신 귈자 빌케(Gülsah Wilke), 알리안츠와 삼성 카탈리스트 펀드의 투자부문장 출신 민성 션 킴(Min-Sung Sean Kim)이 투하츠의 창립 멤버다. 앞의 세 사람은 터키 출신, 민성 션 킴은 한국 출신이다. 테크신의 ‘인싸’들이 뜻을 모아 만든 덕에 멋진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투하츠 온라인 슬랙채널에서는 크고 작은 질문과 토론이 오간다. 오프라인으로는 다양한 멘토십 프로그램, 구인구직, 투자 관련 행사도 일어난다. 현재 약 2000명의 멤버를 보유한 투하츠는 베를린에서 시작해서 뮌헨, 함부르크, 런던, 비엔나, 취리히까지 그 범위를 넓혔다. 정기적으로 밋업을 실시하고, 주제별로 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해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도록 한다.       


지난 6일 투하츠와 프로젝트 A가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의 송년회를 열었다.


지난 6일 베를린에서는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의 송년회가 열렸다. 독일의 유명 VC인 프로젝트 A(Project A)는 공간을 제공하고 프로젝트 A가 다양성을 어떻게 지원하는지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프로젝트 A는 2012년 설립되어 지금까지 180여 건의 투자를 진행한 독일 Top10 VC 중 한 곳이다. 이날 행사는 이주 배경을 가진 창업 생태계의 다른 구성원을 만나고, 프로젝트 A라는 VC의 오피스도 구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갑작스레 눈이 펑펑 오는 상황에서도 5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프로젝트 A의 벤처 개발 부문 부사장 샬롯테 니클라스(Charlotte Niklahs)는 프로젝트 A가 다른 VC와 차별되는 점이 ‘스타트업의 운영 지원(operational VC)’에 있음을 강조했다. 프로젝트 A는 단순히 투자만 하는 VC가 아니라 포트폴리오 기업이 여러 영역의 운영 지원을 받도록 제품, 데이터, HR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방대한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보통 VC치고 꽤 큰 규모인 120명의 팀원이 있는 이유도 포트폴리오 스타트업이 원할 때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들 네트워크의 비밀은 ‘다양성’에 있다. 여성의 비율이 높고, 이주 배경을 가진 직원들도 많아서 해외 네트워크의 접근성도 높다. 


송년회에서는 프로젝트A 소개에 이어서 자유롭게 참여자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 어색하지 않도록 입장할 때 배부받은 이름표의 색깔대로 삼삼오오 그룹을 나누어 대화하다가도, 시간이 지나고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또 다른 규칙으로 그룹을 나눠 자연스레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이곳에서는 모두 이방인, 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익숙하다. 완벽하지 않은 영어나 독일어에도 주눅들 필요가 없다. 다만 자신의 관심사와 하는 일, 특히 베를린의 창업 생태계에서 현재 몰두하고 있는 주제로 편하게 이야기 나누면 된다.        


베를린 창업 생태계 구성원 50여 명이 송년회에 모였다.


베를린의 핀테크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되어 필리핀에서 이주한 J,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파키스탄계 투자자 M, 폴란드에서 이주해 베를린에 리걸테크 회사를 설립한 S, 한국에서 나고 자라 독일에서 자동차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을 창업한 P. 이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고, 편안하게 한 해를 마무리했다.  

베를린이 창업 생태계로서 뜨거운 이유는 아마도 이런 다양성 덕분일 것이다. 


국적, 피부색, 성별을 떠나 누구나 베를리너(berliner)로서 아이디어를 펼쳐볼 수 있는 혁신의 장. 2024년 새해에도 베를린은 전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하도록 판을 내어주는 테크신의 신나는 비빌 언덕이 될 것이다. 


*이 글은 <비즈한국>의 [유럽스타트업열전]에 기고하였습니다.


이은서

eunseo.yi@123factory.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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