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이삼팩토리 Jan 24. 2024

자율주행 대안 '원격주행', 미국서 상용화 시동

베를린서 개발하고 라스베이거스서 론칭한 독일 스타트업 '베이' 전격 탐구

지난 1월 22일 YTN 뉴스에 ‘렌터카 끝판왕…우버 위협할 혁신 등장’이라는 제목의 헤드라인의 영상이 소개되었다. 영상에는 익숙한 유럽 스타트업의 로고가 보였다. 주인공은 베를린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 ‘베이(Vay)’. 


내용은 더욱 흥미로웠다. 베를린에서 개발한 원격 운전 시스템을 탑재한 차량을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에서 론칭했다는 내용이다. 운전자가 없는 택시(렌트카)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그것도 미국에 서비스를 론칭한 유럽스타트업의 소식을 한국 뉴스에서 발견하다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법.        

YTN 뉴스에 등장한 베를린 스타트업 베이(Vay). 사진=유튜브 캡처


베이는 유럽 최대 모빌리티 스타트업 허브인 드라이버리(The Drivery)를 방문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가장 큰 사무실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모빌리티 허브 특화 공간인 메이커 스페이스(Maker Space)와 외부 공유 차량 허브에서도 기아 니로(Niro)에 라이다(LiDAR), 레이다(Radar), 카메라 등을 탑재한 베이의 원격 주행 차량(Teledrive)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다. 테스트 차량으로 기아 니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라면, 독일 땅에서 보이는 자국 자동차 브랜드를 그냥 지나치기 힘들 것이다.  


베이뿐만 아니라 드라이버리에 입주한 많은 스타트업들이 기아 니로를 테스트 차량으로 활용한다. 드라이버리 사업 개발을 담당하는 필립 폴만스(Philip Pollmanns)에 따르면 기아 니로 모델은 독일의 자동차 관련 스타트업들에 가장 인기 있는 모델 중 하나다. 니로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개발에 가장 적합해서라고 한다. 한국의 자동차를 사용해서 원격 주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베를린 스타트업 베이는 어떻게 미국에 먼저 진출하게 되었을까.  


2021년 유럽에서 투자를 가장 많이 받은 스타트업 


베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유럽 스타트업계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다. 


우선 지난 2021년 12월 9500만 달러(1230억 원)의 시리즈 B 라운드 투자를 성공리에 유치해, 그해 유럽에서 가장 투자를 많이 받은 스타트업이 되었다. 


투자자의 면면도 화려하다. 스포티파이(Spotify)와 잘란도(Zalando)의 이사이자 키네빅 상속녀인 크리스티나 스텐벡(Cristina Stenbeck)이 이끄는 스웨덴 투자사 키네빅(Kinnevik), 독일 10대 VC 중 하나인 프로젝트 A(Project A), 프랑스 유명 글로벌 투자사 유라지오(Eurozeo), 스카이프 창업자 니클라스 젠슈트롬(Niklas Zennström)이 설립한 런던 기반의 VC 아토미코(Atomico) 투자사뿐만 아니라 전 구글 CFO이자 X의 이사로 활동한 패트릭 피쳇(Patrick Pichette), 와이컴비네이터 CCO 출신 카사르 유니스(Qasar Younis) 등도 투자에 참여했다.  


특히 국제프로레이싱대회 포뮬러원(Formula1)의 전 챔피언 니코 로즈버그(Nico Rosberg)의 이름이 눈에 띈다. 


니코 로즈버그는 2016년 F1 대회의 챔피언컵을 거머쥔 후 바로 은퇴했다. 이후 투자자로 변신, 베를린의 그린테크 페스티벌을 창립해 지속 가능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그는 베이뿐만 아니라 유럽 최대 공유 마이크로 모빌리티 솔루션 베를린 스타트업 티어 모빌리티(Tier), 도심항공모빌리티(UAM) 개발하는 독일 스타트업 릴리움(Lilium), 볼로콥터(Volocopter) 등에 투자했다. 주로 모빌리티와 지속 가능성 분야에서 전문 투자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베이의 투자자들만 봐도 면면이 화려하다. 사진=vay.io


최초로 운전자 없는 자동차 운행 승인을 받다   


베이는 유럽에서 최초로 사람이 탑승하지 않은 무인 자동차를 공공도로에서 주행한 첫 스타트업으로도 유명하다. 2023년 2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베이는 그간 실험해온 원격 주행(Teledriving)을 시연했다. 이는 ‘자율주행’과 다르다.


 차량에는 운전자가 없지만, 차량과 떨어진 곳에 원격으로 운전하는 운전자가 있고, 이 원격 운전자가 차량의 모든 것을 관제한다. 원격 운전자는 운전대, 페달, 모니터가 장착된 원격 스테이션에 자리 잡고 있다. 모니터는 사각지대가 없이 360도의 시야를 제공하는 환경을 제공한다. 셀룰러 통신망을 통해서 차량과 원격 스테이션은 수많은 데이터를 주고받게 되고,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원격 운전자가 운전을 한다.       

원격 스테이션에스 운전자가 운전하는 모습. 사진=vay.io


원격 스테이션에는 차량의 운전에 필요한 페달, 운전대 등 기존 자동차의 요소가 있다. 개조한 원격 차량의 구성 요소와 원격 스테이션의 모든 구성 요소는 차량 안전 인증기관인 튀브 쥐트(TÜV SÜD)의 안전 인증을 받고, 함부르크교통국(BVM)에도 승인을 받았다. 이로써 운전자 없는 차량이 일반 도로에서 주행하는 유럽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베이는 이를 위해 1년 이상 튀브 쥐트의 시스템 검사를 받았다. 모든 시스템의 기능 안전뿐만 아니라 사이버 보안에 대한 위험 분석을 진행하고, 문서 검토를 바탕으로 실제 도로 및 폐쇄 도로의 시험 주행을 거치고 나서야 최종 인증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자동차 산업의 기능 안전에 대한 국제표준 ISO 26262에 맞추어 개발된 것이다.  


이 표준에 맞추기 위해 원격 운전자(Teledriver)를 위한 몇 주간 실습 및 이론 교육과정도 마련했는데, 자동차 사이버 보안을 위한 ISO/SAE 21434 인증을 통해 완성했다. 기존의 국제표준 및 인증에 기반해 베이만의 새로운 교육 커리큘럼 등을 개발하고 행정 당국과 깊은 협력 끝에 성취한 값진 결실이다. 


유럽 행정의 속도와 유연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베이의 이런 성과가 얼마나 큰 것인지 이해할 것이다. 항간에 독일 당국과 이러한 규제 기반을 함께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 베이의 컴플라이언스팀장이 얼마나 유능한지 이야기가 될 정도다.  


베이가 바라보는 자율주행의 미래 


스마트폰 지도에 내 위치를 찍고 택시를 불렀다. 몇 분 후 차가 한 대 다가와 선다. 차 안에는 운전자가 없다. 원격 운전자가 내 주문내역을 바탕으로 원격으로 차를 운전해서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베이의 서비스에는 자율주행 기술과 유사한 몇몇 기술이 적용되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자율주행 기술은 아니다. 차 주변을 실시간 화면으로 보고 주변 소음까지 들으면서 누군가가 운전하기 때문에 자율주행이 아니라 ‘원격 주행’으로 부른다. 원격 스테이션은 일반 자동차와 비슷한 페달, 운전대 등 일반 차량을 운전하는 것과 유사한 환경으로 꾸며져 있다.  


공유 차량 서비스로 차를 짧게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차가 있는 곳까지 찾아가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는데, 베이의 차량은 차를 주문하면 자기가 있는 곳까지 차량이 오기 때문에 편리하다. 


우버, 택시 등 일반 택시 서비스보다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다. 요금이 1분에 약 400원, 30분에 1만 2000원 정도다. 잠시 경유를 하는 경우엔 분당 40원가량이다.  


베이는 개발과 테스트를 독일 함부르크에서 진행했지만, 고객에게 요금을 받고 서비스를 상용화한 곳은 미국이다. 지난 1월 17월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 네바다대학교와 시내 예술지구에서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독일이 아닌 미국에서 먼저 상용화한 이유는 사람이 운전대를 잡지 않은 차량이 도로를 통행할 수 있는 규정이 미국에서 먼저 마련됐기 때문이다. 


다음 상용화는 당연히 독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아직 도로 시험 주행은 테스트 차량에만 허용된 터라, 서비스로 제공하기까지는 거쳐야 할 산이 더 남아 있다. 베이 측은 “함부르크시와 지속적으로 논의 중이고, 계속 진전하고 있다”고 긍정적인 전망을 보였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 서 있는 베이의 원격 주행 차량. 사진=vay.io


시장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그동안 자율주행 기술의 안전성을 두고 끊임없는 반론이 있었기에 ‘원격주행’이라는 대안을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특히 작년부터 몇몇 도시에서 소개된 무인 자율주행 로보택시가 크고 작은 사고를 내면서 안전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 베이 측은 “원격 주행은 자율주행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보완하는 기술이다. 운전자 없는 차량이 운전되는 것이 아니라 원격 운전자가 고객에게 차를 배달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베이는 앞으로 서비스 가용성을 확대해 라스베이거스 안에서 평균 5분 이내에 차량을 제공할 계획이다. 자동차 제조사와의 협력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철옹성 같은 독일 행정과 규제망도 하나하나 해결하다 보면 ‘독일 개발(feat. 한국), 미국 데뷔’의 글로벌 합작 유니콘이 생겨날 것 같다. 


*이 글은 <비즈한국>의 [유럽스타트업열전]에 기고하였습니다.


이은서

eunseo.yi@123factory.d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