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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트 스페이스 Dec 12. 2017

추억이 많은 도시 필라델피아 걷기


잔잔한 선율이 가슴을 타고 들며 왠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필라델피아 거리 Streets of Philadelphia"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창백한 톰 행크스와 강인한 모습의 덴젤 워싱턴이 열연한 [필라델피아]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오래전 유학생 신분으로 필라델피아 시내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첫 느낌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네 살짜리 아들은 시댁에, 백일 된 딸은 친정에 맡겨놓고 공부를 시작한 내게 필라델피아는 암울한 잿빛 도시였다. 십 년 만에 하는 공부는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고, 늦게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몇 배는 더 공부해야 했다. 새벽까지 도서관을 지키며 집, 학교 도서관만 오가다 보니 갈수록 우울해지는 나와 부딪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벼운 산후 우울증과 함께 지독한 향수병을 앓았었던 것 같다. 맘 둘 곳도 없고, 젖이 채 마르기도 전에 떼어 보낸 갓난쟁이 딸도 너무 안아 보고 싶고, 모든 게 힘들었다. 주말부부였던 그때 남편이 오는 어느 주말 아침에 "그동안 행복했었어. 잘 살아"라는 짧은 메모를 써 놓고 한국행 비행기를 탄 적도 있었다. 참으로 철없는 아내였다. 필라델피아가 내게는 그렇게 맘 아픈 도시였다.   


팬실배니아 주의 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인 필라델피아는 팬실배니아의 주도는 아니지만 미국에서 여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미국 최초의 수도였기에 경주처럼 미국 중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장 많이 오는 도시 중의 하나이다. 필라델피아에서 살 당시에는 잘 몰랐었는데 역사의 숨결이 살아 있는 도시에 산다는 건 참으로 축복받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필라델피아 시청 건물의 꼭대기에는 필라델피아의 아버지 윌리엄 팬 William Penn 의 동상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이 윌리엄 펜의 이름을 따서 '팬실배니아'라는 주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윌리엄 펜이 1682년 팬실배니아의 주도로 정했던 필라델피아는 그리스어로 "형제애"라는 의미이다.


미국 독립 직후 뉴욕이 몇 년 간 임시 수도 역할을 했었고 1791년부터 1800년 미국의 수도를 D.C.로 정하기 전까지 10년간 필라델피아는 미국의 공식적인 수도의 역할을 담당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 명소인 '독립역사공원 Independence National Historic Park' 에는 1776년 6월 28일 토마스 제퍼슨과 벤자민 프랭클린에 의해 독립 선언서가 기초되었던 '인디팬던스 홀 Independence Hall' 이 있다. 이 곳에 가면 토마스 제퍼슨이 1776년 미국 독립 기념서를 처음 썼던 역사적인 책상도 구경할 수 있다. 온 세상에 자유를 선포하고 "이 땅에 자유가 넘치게 하라"라는 문구가 새겨진 '리버티 벨 Liberty Bell' 앞에 서면 숙연해진다. 미국의 화폐를 만드는 United State Mint도 처음 필라델피아에 세워졌으며, 그리고 First Bank of the United States 도 이곳에 있다.



필라델피아에 살 때 가장 좋아했던 곳은 필라델피아 뮤지엄 Philadelphia Museum of Art 이었다. 벤자민 프랭클린 파크웨이의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하며 차를 달리다 보면 만나는 게 되는 곳으로 미국의 3대 뮤지엄의 하나이다. 영화 록키에서 록키가 조깅을 하다가 손을 번쩍 든 곳이라 '록키 동상 Rocky Statue'  서있다. 당시 뮤지엄의 연간 멤버십을 끊어 주말마다 뮤지엄을 돌아보러 다니는 것이 가장 큰 낙이었다. 바람도 좋고, 물도 좋고, 아트도 참 좋았다. 뮤지엄 안도 좋지만 필라델피아 뮤지엄 뒤로 유유히 흐르는 스컬킬 리버 Schuylkill River를 따라 운전하는 일이 정말 행복했다. 그 외에도 필라델피아에는 크고 작은 뮤지엄도 많은데 대표적인 곳이 로댕 뮤지엄이다. 파리에 있는 로댕 뮤지엄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미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인 에드가 알렌 포우 Edgar Allan Poe 뮤지엄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필라델피아를 방문한다면 인근에서 갈만한 곳이 몇 군데 있다. 그중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곳 The Sweetest Place on Earth"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허쉬 팍이 최고이다. 펜실베이니아 주도인 해리스버그에 위치하고 있어 필라델피아에서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허쉬 다크 초콜릿과 키세스 본고장인 허쉬 팍의 가로등은 키세스 모양이고, 길이름도 코코아 애비뉴, 초콜릿 애비뉴이다. 마치 로알드 달 Ronale dahl 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 Charlie and Chocolate Factory]에 나오는 것과 같은 꿈과 환상의 마을이다. 이 곳에 가면 허쉬 초콜릿 영화관, 허쉬 가든, 역사와 전통을 읽을 수 있는 허쉬 박물관도 둘러볼 수 있다. 허쉬 초콜릿의 창립자이자 박애주의자이며 자선사업가로도 잘 알려진 Milton Hershey는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수 있는 작업 환경을 주기 위해 마을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거품 목욕의 스파를 자랑하는 다이아몬드 4개짜리 호텔 허쉬 호텔은 밀튼 허쉬의 아내인 캐서린이 꽃과 초콜릿 목욕을 좋아한다는 데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또한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물원이며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규모의 롱우드 가든이 바로 필라델피아에 있다. 1700년 피어스 가문으로부터 시작된 피어스 공원을 대부호 피에르 듀퐁이 1906년에 구입했다. 수목원의 이름을 롱우드 가든으로 바꾸고 벌목 위기에 처한 나무들로 가득한 공원을 가꿔 새로이 개장했다. 델라웨어는 듀퐁 주식회사에서 세금을 모두 지원하므로 텍스가 없는 주이며, 롱우드 가든 또한 비영리 단체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랭캐스터에는 전통 생활 방식을 고수하는 아미쉬 Amish 마을이 있다. 현재는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맨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이 그곳 랭캐스터라고 한다. 필라 시내에서 아미쉬 복장 한 사람들 아마 길에서 자주 보게 된다. 필라델피아는 뉴저지도 가깝다. 애틀랜틱 시티 바닷가는 생각보다 아주 운치가 있다. 비치파라솔 드문 드문 펼쳐진 여름 해변가는 여름의 느낌 그대로 청량하고 낭만적이었고 살을 에는 듯한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쓸쓸한 겨울 바다는 그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미국이 재미없는 천국이라고는 하지만 쇼핑의 천국은 분명하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땐 그로서리 구경도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특히 펜실니아는 옷이랑 신발에 텍스가 없어서 좋다. 필라델피아의 대표적 쇼핑으로는 '킹 오브 프러시아 King of Prussia' 같은 고급 몰이나 '프랑클린 밀스 Franklin Mills' 같은 아웃렛이 있다. 그리고 레딩 Reading이라는 타운에 VF outlet 도 있는데 꽤 큰 놀이동산도 있다. 당시 $10 넘는 건 감히 엄두도 못 내어 별명이 $9.99 였던 가난한 유학생이라 맘껏 쇼핑할 여유는 없었지만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고 좋은 향기가 나고 서점도 있고 카페도 있는 쇼핑몰이 참 감사했다. 당시 공부를 하며 컴퓨터 랩에서 받은 주급으로 주말이면 쇼핑몰에 들러 딸아이 옷을 샀고 그때는 그것이 내가 딸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엄마 노릇이었다.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며 아이들과 함께 필라델피아를 다시 방문했다. 이번에는 많이 걸을 작정으로 시청 바로 옆 호텔에 묵었다. 호텔방에서 바라보는 저물어가는 필라델피아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단잠을 자고 내려간 브랙퍼스트 바의 모습이 산뜻하고 맘에 들었다. 여행을 다닐 때면 늘 딸아이가 아침으로 와플을 만들어주는데, 딸아이가 와플 기계만 하나 있으면 장사해도 되겠다고 해서 같이 웃었다. 블루베리와 딸기도 참 달콤했고, 함께 마신 커피맛도 일품이었다.



백팩에 물을 넣고 운동화 끈 단단히 메고 호텔을 나서 맨 먼저 바로 옆 시청 구경을 갔다. 기프트샵에서 남편과 각각 티셔츠 하나씩을 샀다. 남편이 산 티셔츠에는 벤자민 프랭클린이 그려져 있고 "맥주는 신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행복해지길 원한다는 증거"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맥주 없이는 못하는 우리 남편에게는 딱 맞는 말인 것 같다.



필라델피아 프리 라이브러리 앞에는 셰익스피어 미모리얼이 서있다.



헌법 박물관 구경도 하고, 워싱턴 스퀘어 팍도 구경했다. 건너편 월넛 스트릿 극장은 20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라고 한다.  



필라델피아의 레딩 마켓은 뉴욕의 첼시마켓, 보스턴의 퀸시마켓과 함께 아주 유명하다. 필라델피아 차이나 타운으로 갔다. 예전에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뉴욕 팬 스테이션으로 간 기억이 났다. 포천쿠키에 든 작은 종이를 하나씩 둘씩 모으고 있는데.. 이렇게 엄청난 포천 쿠기 박스 더미를 보니 허무해졌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포천 쿠키 공장에 들러서 아예 종이를 한 뭉치 얻어오기고 했다.



벤자민 프랭클린 뮤지엄을 관한 뒤 열 세개의 별로 미국 국기를 처음 만 Betsy Ross Museum 을 방문했다. "미국 국기가 탄생한  The Birthplace of the American Flag"인 이곳은 내셔널 뮤지엄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소장된 전시품은 많지 않지만 미국 국기 탄생의 역사적인 장소라는 의미만으로도 한 번쯤은 들러볼 만하다. 미국 식민지 당시 그녀의 가족이 실제로 거주하던 집을 개조해 만든 터라 무척이나 아담하고 소박하다. 뮤지엄 건물 바로 앞마당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우물 같이 생긴 곳에는 고양이 조각상이 있다. 조각상 아랫부분에는 초기 국가를 만들 당시 독립을 선언한 13 주의 이름이 '올드 글로리 Old Glory'라는 이름 아래 새겨져 있다. 조지아, 놀쓰캘롤라이나, 버지니아, 메릴랜드, 팬 실바니아, 뉴욕, 뉴저지, 델라웨어, 뉴저지, 뉴욕, 코네티컷, 매사추세츠, 뉴 햄셔, 미시간이다.



뮤지엄 입구에는 베시 로스의 생애에 대해 짧게 설명이 되어있다. 1752년에 태어난 로스는 무려 열일곱이나 되는 형제자매 가운데 여덟 번째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바느질을 즐겨했고 솜씨도 무척 뛰어났다. 1776년 독립전쟁에 참가한 남편이 전사한 후 자녀들과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즈음 조지 워싱턴이 찾아와 독립국가가 된 미국에 국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대략적인 디자인을 이야기해 준 후 다음 달 7월 4 일로 예정된 미국 독립 선언 때 사용할 성조기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다. 당시 조지 워싱턴은 자신이 생각하는 디자인에 대해 "별은 하늘을, 빨간색 바탕은 모국인 영국을, 흰색 줄은 독립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777년 6월 14일 그녀가 만든 성조기는 미합중국의 국기로 정식으로 채택이 되고 이름도 "Stars and Stripes" 가 된다. 초기에는 별이 13개뿐이었지만 그동안 26번이나 별의 숫자를 바꾸어 왔는데 1950년 하와이를 의미하는 마지막 50번째 별을 그리면서 50개의 별이 그려진 현재의 성조기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빨간색과 흰색의 13개의 줄은 그 당시 독립을 선언한 주의 숫자를 여전히 상징하고 있다.   



실내로 들어가면 그녀의 가족이 생활했던 당시 모습들을 그대로 볼 수가 있다. 계단이 워낙 좁고 전체 공간도 협소하여 관람이 그다지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역사를 함께 한 공간에 서있다는 느낌만은 그 어느 곳보다 강렬하게 느껴졌다. 한쪽에는 벳시 로스가 남편과 함께 운영했던 실내장식품과 옷감을 판매하던 샵이 재현되어있고 그 당시 복장을 하고 베시 로스 코스프레를 하는 아가씨가 있었다. 참 친절하게도 맘껏 사진을 찍으라며 국기를 활짝 펴 들고 웃으며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고 아이들에게 초기 국기인 올드 글로리의 부분 부분을 보여주며 제작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좁다란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재미있는 전시가 많이 나온다. 벳시 로스는 워낙 타고난 손재주가 좋아 옷감을 만지는 일 외에도 각종 일을 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총을 만드는 일이었다고 하며, 당시 총의 제작 방법까지 상세히 전시되어 있었다.



기프트샵에는 맘에 드는 물건들이 많았다. 리본이 이쁜 티셔츠를 한 장 구입했다.



필라델피아의 또 다른 관광 명소로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지역으로 인정받고 있는 엘프레스 골목이라 불리는 앨프레스 앨리 Elfreth's Alley 가 있다. 필라델피아의 옛 도심인 오울드 시티 Old City 에 해당하는 이 곳에 사람들은 1700년대부터 옮겨와 주택지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1700년대 필라델피아의 특징이었던 자갈길 cobblestone 이 역시 이 골목길의 가장 큰 특징이며 현재 National Register 에 등재가 되어 있다. 이 곳에는 대장간을 운영하거나 금속 세공, 유리공예 혹은 장사고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 주로 모여 살았는데 특히 이 엘프레스 앨리는 그 당시 이 곳에 거주했던 대장장이 제리미 앨 프레스 Jeremiah Elfreth 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한 때 이 곳에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공장이 들어서고 시커먼 매연으로 뒤덮이고 음산하고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었다고 한다.


1934년 마을 주민들이 엘프레스 골목 공동체인 EAA (Elfreth's Alley Association)를 설립한 이래로 전통과 역사를 소중히 간직해 나가고 있다. 이 골목에는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사는데 해마다 6월 초에는 Fete's Day라는 행사를 열어 방문객들에게 집을 오픈하기도 하고 다양한 국가의 음식을 나누 먹는 파티를 연다고 한다. 또한 필라델피아의 가장 기념할 만한 날이자 국가적 행사인 7월 4일 독립기념일과 10월 마지막 밤 할로윈 행사는 놓치기 아까운 볼거리와 추억을 제공한다고 한다. 엘프레스 앨리 뮤지엄도 있어서 이 앨리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잘 알 수 있으며 각종 기념품도 구경해 볼 수 있다. 골목의 끝부분에서는 방송국에서 나온 사람들의 촬영이 한창이었다. 앵커가 한바탕 속사포같이 이야기를 끝내고 난 후 PD처럼 보이는 사람이 끝까지 신기하게 구경을 하고 있던 우리에게 한마디 하겠느냐고 물었다. 처음 와본 거리에 대해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다시 왔던 길을 천천히 걸어 시청 앞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어느새 저 멀리 분수에 황홀한 빛깔의 노을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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