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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트 스페이스 Jan 15. 2018

매서운 한파 속 필라델피아 여행


필라델피아로 떠난 날은 아침 햇살이 무척 눈부셨다. 가끔 혼자서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남편과 동행하는 여행에는 좋은 점도 많다. 그 중 하나는 운전하는 남편 옆자리에 편하게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읽고 싶은 책들이 쌓였는데 시간이 많이 없었다. 뭐든지 넘치게 풍부할 때보다 부족하고 아쉬울 때 그 소중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의 조각조각들이 그렇게 소중하고 감사할 수가 없다. 찜질방처럼 뜨끈뜨끈한 자리에 앉아 책을 읽다가 커피 생각이 난다 싶을 즈음이면 어느새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가 멈춘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차 문이 열리고 향이 진한 커피가 내 손에 쥐어진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딸아이 손에도 책이 들려있다. 딸아이도 평소에는 뭘 하는지 모르게 바빠 책을 읽을 시간이 많이 없다. 여행중에 가장 책을 많이 읽게 된다. 



필라델피아에 도착하니 바람이 아주 매서웠다. 여행이란 발품을 많이 판 만큼 즐기는 것이므로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신나서 돌아다녔다. 뉴욕에서는 털모자 달린 롱패딩에 털부츠, 장갑에 목도리까지 꽁꽁 무장을 해서 다니기에 춥다는 생각을 별로 못했는데, 명색이 집 떠난 여행이라 가볍고 밝고 예쁜 색상의 코트를 골라 입고 온 게 잘못이었다. 예전 대학 다닐 때 멋쟁이 친구가 한 말, "진정한 멋쟁이는 여름에는 좀 더운 듯, 겨울에는 좀 추운 듯 해야한다" 던 말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나는 멋쟁이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역사적인 도시 필라델피아에 왔으니 역사를 모티브로 한 시내 한가운데 호텔을 잡았다.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서 옷깃을 꽁꽁 여미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로건 스퀘어 필라델피아 프리 라이브러리는 언제봐도 멋지다. 



미국에 도착해 많은 곳들을 옮겨 다니며 살았지만 그래도 필라델피아는 아련한 추억이 많은 곳이다. 기쁘고 설레고 아름다운 추억만큼 아프고 힘들고 외로웠던 시간들도 있었다. '추억은 모든 아픔을 감싸주는 보자기 같은 것' 이라 했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 시간들마저도 내게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 되어 남아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필라델피아 최고의 스테이크 집, 'Urban Farmer', 이곳에 오니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필라델피아 아트 뮤지엄과 가까운 곳이니만큼 레스토랑 벽면에는 예술작품들이 많이 걸려있다. 남편이 마음에 든다며 한참 바라봤던 한 작품을 그날 밤 필라델피아 뮤지엄에서 만나니 정말 반가웠다.  



든든히 속을 채우고 찾아간 곳은 로댕 뮤지엄, 하지만 오는 길에 들른 책방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해 아무래도 관람시간이 충분치 않을 것 같았다. 다음날 다시 오기로 하고 야외정원만 구경했다. 야외 조각품들도 가슴이 설렐 정도로 황홀하고 멋졌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필라델피아 뮤지엄 오브 아트였다. 예전 유펜에서 공부를 할 때 아이들 둘을 한국에 보내놓은 상태여서 남편과 둘이서 주말이면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사진을 찍는 건 좋아하지만 찍히는 건 그닥 즐기지 않아 독사진이 별로 없는데 이 앞에서 남편이 찍어준 사진이 있었던 것 같아 찾아봤다. 사진 속의 체리핑크 정장은 아직도 내 옷장에 그대로 걸려있는데 어느덧 15년의 세월이 흘렀다니 세월이 참 무상하다.



밤늦게 호텔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호텔 인근 A. Kitchen. A Bar 로 갔다. 딸아이는 와인 대신 푸짐한 저녁식사를 했다. 와인에서 아몬드 향이 났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 의 첫 문장, "씁쓸한 아몬드 향내는 언제나 그에게 짝사랑의 운명을 떠올리게 했다" 라는 문장이 생각났다.  



다음날 아침 호텔 창문으로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루종일 갈 곳이 많은데 춥고 길도 미끄럽겠다 걱정도 했지만, 그래도 호텔 창으로 바라보는 거리는 무척 운치있다. 꽁꽁 싸메고 내려가 로비에서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향기롭고 따뜻한 커피를 한 잔 얻어 마시고 길을 나섰다. 



밤에 들어갔던 화려하고 로맨틱한 곳들이 아침이 되니 차분한 모습을 보여준다. 



브런치를 먹으러 간 곳은 Ritten Square 바로 앞 Parc였다. 예약이 쉽지 않은 곳인데 다행이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음식맛도 좋고 무엇보다 직원들이 친절하고 서비스가 아주 훌륭하다.



건너편 광장으로 갔다. 눈발이 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야외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당근 하나가 다듬이 방망이 만하다. 



로뎅 뮤지엄으로 가서 찬찬히 구경을 했다. 몇년 전 파리의 로댕뮤지엄에서 보았고, 지난여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소마 미술관 영국 테이트 뮤지엄 초대전에서도 보았던 '키스' 를 다시 보니 감동이 새로웠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도 로댕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그리고 반스 파운데이션 Barnes Foundation, 감동의 뮤지엄이었다. 이곳에서도 로댕 특별전이 열린다. 



뮤지엄 관람을 먼저 마치고 여유있게 필라델피아 시내를 돌아다녔다. 유펜 교수로 재직 중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천재 건축가 루이스 칸을 기념하는 공원이 있었다. 



추운 줄도 모르고 신나게 돌아다니다 밤에 다시 돌아와 몸을 녹이고, 하루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풀었다. 2018년 새해 우리에게 다가올 희망찬 날들과 우리 가족에게 펼쳐질 멋진 미래와 작은 소망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 필라델피아 여행을 가자고 했을 때는 아직도 볼 게 남았냐고 남편도 아이도 눈을 동그랗게 떴는데 다녀오는 길에는 모두들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었다고 말해주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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