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트 스페이스 Dec 22. 2017

피츠버그에서 보낸 가슴 따뜻한 이틀


팬실배니아의 가장 유명한 도시 세 곳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주도로 착각하고 있는 필라델피아, 정말 팬실배니아 주도인 해리스버그, 그리고 또 하나의 도시는 한때 제철과 석탄으로 영광을 누렸던 도시 피츠버그 일 것이다. 피츠버그의 철강산업은 20세기 중반부터 서서히 쇠퇴했지만, 최근에는 스포츠, 문화, 예술, 교육의 도시라는 새로운 이미지로 발전하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피츠버그 하면 앤드류 카네기, 카네기 멜론, 앤디 워홀, 레이철 카슨, 하인즈 등이 가장 먼저 생각나고, 더불어 가장 많은 다리가 놓여있는 도시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이유는 한때 세계 최대 제철소 US Steel을 위시해 엄청난 제철소와 석탄광산이 있었기 때문인데, 피츠버그에 들어서면서부터 유유히 흐르는 엘러게니 강 Allegheny River을 가로지르는 노란색 다리를 많이 건너게 된다. 그중에도 세 개의 다리가 가장 유명한데, 똑같은 세 개의 다리를 묶어 Three Sisters라고  부른다.



이 세 다리 모두 피츠버그가 자랑으로 내세우는 대표적인 인물들의 이름을 딴 것인데, 팝 아티스트인 앤디 워홀 브리지, 레이철 칼슨 브리지, 그리고 로베르토 클레멘테 브릿지이다. 다리를 건너면서 저 멀리 보이는 야구장이 바로 PNC Park이다. 피츠버그 야구팀 Pirates 구장인데, 이름이 PNC Park인 이유는 팬실바니아 은행인 PNC Bank에서 이름을 따냈기 때문이다. 이 야구장으로 들어가는 노란 다리의 이름이 로베르토 클레멘테 Roberto Clemente Bridge이다.



피츠버그가 이렇게 로베르토 클레멘테를 기념하는 이유는, 흑인들의 메이저리그 입단을 금지하는 Baseball colorline을 깬 재키 로빈슨 버금가는 유명한 흑인 선수였다는 점뿐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독하게 가난한 환경을 딛고 불굴의 의지로 꿈을 이룬 뒤, 자신처럼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돕고자 많은 애를 쓴 마음이 따뜻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생전 사회봉사와 기부를 많이 하던 클레멘테는 1972년 대지진이 난 니카라과에 구호물품 전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자신이 직접 구호물자를 실은 헬기에 탑승하여 가던 도중, 바다에 추락하여 아까운 생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이 세상에 전해지자, 수많은 사람들의 애도의 물결이 강을 이루었고, 은퇴 후 5년 후에나 뉴욕 쿠퍼스타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관행을 깨고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73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된 역사적 인물이다.   



그렇게 피츠버그 시내를 둘러보고, 카네기 멜론 대학, 카네기 도서관, 카네기 뮤지엄, 앤디 워홀 뮤지엄까지 관람을 마친 뒤 예약해둔 강변의 분위기 있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피츠버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리버스 카지노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피츠버그는 관광명소들이 대부분 몰려있기에 구경이 아주 편한 도시인데, 카지노도 그중 하나이다. 카지노라고 해봐야 할 수 있는 거라곤, 슬롯머신 몇 번 당기는 것뿐이지만, 아주 가끔씩은 그 흥성스런 분위기에 취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평소에는 술 한잔도 내키지 않지만 왠지 카지노에선 칵테일이나 맥주도 맘껏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차를 두고 가기로 했던 것이다. 호텔 입구에서 셔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손님이 우리 부부밖에 없었다. 출발 시간이 다 되어오자 조바심이 나며 다른 손님이 없으면 그냥 우리 차를 타고 갈까 라는 생각을 했다. 고작 우리 둘 때문에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것이 맘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시간 맞춰 오신 기사님은 아주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피츠버그에서 갈만한 관광지 이야기도 해주셨고, 하인즈 필즈와 우리가 몰랐던 피츠버그 역사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특히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 토박이로 자랐기에 아름답고도 가슴 아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계신 듯했다.



그렇게 뒷자리에 앉아 고개를 쑤욱 빼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피츠버그 앨러게니 강을 따라 아름다운 야경에 흠뻑 빠져있던 사이 셔틀은 어느새 거대한 불빛이 번쩍이는 카지노에 도착했다. 보통 셔틀 이용 시에는 일인당 $5 정도의 팁을 드리는데, 이렇게 우리만 탄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살짝 고민을 하다가 아무래도 너무 죄송해서 택시비보다 더 챙겨 드리고 내리니 한결 맘이 가벼웠다. '굿럭' 이라며 활짝 웃으시더니 재미나게 놀다가 전화를 하면 데리러 오겠다고 하시며 명함을 주셨다. 기사님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우리는 굿럭은 아니었다. 그저 적당하게 재미있게 놀다가 기사님을 만나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하얀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기사님이 우리를 실어다 주신 곳은 호텔이 아니었다. 오는 길에 알려주신 몇 군데를 직접 보여주시고, 어린 시절 살던 동네인 워싱턴 마운틴, 그리고 피츠버그의 가장 아름다운 야경을 보여주셨다.



차를 멈추고 잠깐 내려보라고 하신 곳은 전망대였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나 락커펠러 센터 꼭대기에서 보는 맨해튼의 뷰나 에펠탑이나 몽파르나스에서 바라보는 파리 시내의 분위기와는 또 다른 감동이 느껴졌다. 건너편 교회 세인트 메리 오브 마운트 처치도 아주 유명한 곳이라고 했는데 정말 밤늦도록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구석구석 설명을 들으며 구경을 하고 밤늦게 호텔로 돌아왔다. 뜻밖의 호의에 정말 너무 감사했고 설레었다. 그냥 자기에는 왠지 너무 아쉬워 바에서 칵테일을 마셨는데 금방 취기가 올라와 잔을 들고 방으로 와서 영화 한 편을 보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아침, 기사님의 충고대로 아침 일찍 그랜드 뷰 스트릿 전망대로 다시 가서 피츠버그의 전경을 눈에 담았다. 현란한 불일치 반짝이는 야경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건너편 언덕에는 카네기 라이브러리 마운트 워싱턴 브랜치가 있고, 국가 사적지로 지정되어있었다. 전망대에서 조금 더 내려가, 어젯밤 기사님이 구경시켜주었던 실로 스트릿으로 갔다. 이발소, 스테이크 집, 아이스크림 가게, 오래전 형무소였다는 건물, 술집, 기사님이 어렸을 때는 빵집이었다는 작은 그로서리, 정육점들이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이 모여있는 정겨운 곳이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 바로 인클라인을 타는 곳이 있다. 철강사업을 위해 자재를 옮기던 길이었고, 이렇게 인클라인이 생기기 전에는 노동자들이 계단을 이용해 자재들을 옮겼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다 인클라인이 생기고, 마치 지하철처럼 사람들은 통근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기사님의 할아버지는 42년간이나 그 인클라인을 타고 워싱턴 마운틴에서 아래로 통근을 했다고 하신다. 우리도 타보고 싶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깔끔한 분위기였고, 편도는 $2.75, 왕복은 $3.75였다. 내부는 아주 깔끔했다. 주말 아침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전망이 참 좋았다. 아래를 바라보니 아찔했다.



필라델피아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톰 행크스 주연의 [필라델피아] 라면 피츠버그는 제니퍼 빌즈의 현란한 댄스로 가득한 멋진 영화 [플래시 댄스] 가 떠오른다. 특히 아이린 카라가 부른 주제곡 'Flashdance.. What a Feeling' 은 영화를 안 본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노래지 않을까. 도발적이고 대담한 포즈와 인형같이 아리따운 외모, 육감적인 몸매의 매력적인 여주인공 제니퍼 빌즈는 제철소 용접공으로 일하는 열여덟 소녀이다. 낮에는 제철소에서 일하지만 밤에는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춘다. 댄서가 되고 싶은 꿈 때문이다. 밤낮없이 일하면서도 꿈을 좇아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영화는 제각기 가슴 가득 꿈을 간직한 친구들과의 우정을 클로즈업한다. 피겨스케이터를 꿈꾸는 친구 지니가 있고,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 하는 지니의 남자 친구도 있다. 어느 날, 알렉스에게 새로운 인연이 찾아오는데 제철소의 사장 닉이었다. 닉은 나이트클럽에서 알렉스를 처음 보았고, 모든 남자들처럼 알렉스의 춤추는 모습에 홀딱 반했다. 제철소 한 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알렉스에게 다가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묻고, 프랑스어로 된 책인데 그림들만 본다고 말하자, 자신의 전부인도 그랬다 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알렉스와 닉은 가까운 사이가 된다. 어느날 알렉스는 용기를 내어 발레학원을 찾아가는데 왠지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돌아온다. 댄스대회 참가를 원했지만 추천서가 필요하다는 말에 낙담하는데, 알렉스를 따라온 닉은 그 사정을 알게 되고 전화를 걸어 청탁을 한다. 참가 통지서를 받고 뛸 듯이 기뻐하는 알렉스, 하지만 닉이 손을 썼다는 걸 알고 미친 듯이 화를 낸다. 고민 끝에 참가하게 되고, 모든 심사위원들의 혼을 쏙 빼 놓을 정도로 멋진 광란의 춤을 보여준다. 알렉스는 닉에게 달려오고, 알렉스가 꿈을 이루길 누구보다 바랬던 닉은 빨간 장미 한 다발을 안겨주며 축하해준다. 30년이 훌쩍 넘은 영화이지만, 다시 봐도 새롭고 설레고 멋진 영화이다. 희뿌연 연기, 소음, 땀과 먼지가 가득한 제철소 노동자들의 애환과 꿈이 녹아있고, 카네기 뮤지엄 등 피츠버그의 많은 장소들을 만날 수 있다.



800피트의 길이에 70도의 경사를 유지하는 인클라인은 운행시간이 1분 정도밖에 안되지만 엄청 천천히 가기에 엘리게니 강과 피츠버그 다운타운을 감상하기에 아주 좋다. 아래 역사에 도착해서 인근 거리를 걸어 다니며 구경을 했다. 마운트 워싱턴의 경사진 언덕에 설치된 인클라인은 처음에는 화물을 실어 나르는 용도로 세워졌지만, 점점 화물보다는 사람을 더 많이 실어 나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역사는 독일 이민자들이 한창 성장하던 철강회사의 일자리를 찾아 피츠버그로 몰려들던 18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노동자들이 일을 하는 곳은 강가이지만, 비싼 강변에 집을 구할 수 없었던 가난한 노동자들은 싼 곳을 찾아 이 높은 언덕에 정착을 했고, 매일매일 이 높은 언덕에서 아래 강변까지 다니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독일에서 흔했던 케이블카를 생각하게 되고 1870년에 모노겔라 인클라인이 처음 건설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언덕을 따라 수많은 인클라인이 노동자들을 실어날랐지만, 새로운 길이 생기고 인클라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대부분의 인클라인이 사라졌고, 오늘날은 그 역사를 간직하는 의미에서 두 개의 인클라인만이 남아있고, 피츠버그의 대표적인 관광 코스가 되었다. 내려와서 주변을 구경하다 보니 또 한 대의 인클라인이 언덕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다시 인클라인을 타고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피츠버그 다운타운의 모습을 다시 한번 눈과 마음에 가득 담은 뒤 천천히 차를 돌렸다. 피츠버그를 떠올리면 늘 제철소의 소음, 연기, 뿌연 하늘 등이 먼저 생각났는데, 이제는 낯선 관광객 부부에게 밤늦은 시각까지 피츠버그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여주고, 어린 시절 알싸한 추억까지 나눠주셨던 친절한 할아버지가  나면서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추억이 많은 도시 필라델피아 걷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