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란 무엇일까?
나는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참 인상 깊게 보았다. 처음 방영될 때 본 것은 아니고,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제목에 이끌려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 미정은 반복되는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어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러다 회사에서 직원 행복 지원을 위한 동호회 가입을 하라고 한다. 말이 행복 지원이지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에게는 고역처럼 느껴지는 일이었다. 그러다 아무 동호회에도 들어가지 못한 세 사람이 모여 만든 동호회 이름이 ‘해방 클럽’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 중 하나를 떠올려 본다.
우리... (동호회를) 진짜로 하는 건 어때요? 해방 클럽. 전 해방이 하고 싶어요. 해방되고 싶어요.
어디에 갇혔는지는 모르겠는데 꼭 갇힌 거 같아요. 속 시원한 게 하나도 없어요.
갑갑하고 답답하고. 뚫고 나갔으면 좋겠어요.(미정)
어디에 갇혔는지는 모르겠는데 갑갑하고 답답한 기분. 뻥 뚫고 나가고 싶은데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겠는 막막함. 너무도 익숙한 그 감정에 공감이 되었고, 해방이라는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해방을 이룬 것만 같았다. 임신과 육아는 늘 축복처럼 묘사되지만 막상 내가 경험한 현실은 마냥 행복하고 아름답지 않았다. 임신 기간 겪어야 하는 수많은 어려움과 막막함 들은 예상보다 나를 더 힘들게 했고, 입덧만 끝나면 좋겠다 하며 버티면 무거운 몸과 부종이라는 어려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아이만 낳으면 좋을 것 같다며 버티면 육아라는 큰 산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는 마치 예측 불가한 과제들이 불쑥불쑥 나타나 나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마치 천국에서 24시간 노동하는 느낌이랄까... 그 혼돈의 시기에 내 곁에는 사랑스러운 아이도 있었고, 자상하고 날 아껴주는 남편도 있었고,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부모님도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무언가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들었고, 나의 그 기분을 어떤 말로 표현해 보아도 속 시원함이 없었다. 그런데 ’ 해방‘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냥 행복해야만 할 것 같은 시기에 왜 나는 갇힌 기분을 느꼈을까? 나는 왜 해방이란 단어에 매료되었을까?
사람은 반복되는 일상에 곧 지루함을 느끼는 것 같다. 그토록 좋아하고 설레던 상대도 막상 만남이 지속되고 시간이 지속되다 보면 설렘이 사라지듯, 새롭고 신기하고 설레는 것들이 지겹고 버텨야만 하는 과제로 바뀌어 버리는 순간들이 우리 인생에 종종 찾아오는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연애도 직장 생활도 결혼 생활도 비슷한 흐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아이를 확인한 날,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었던 날, 아이를 처음 안아본 날, 아이가 ‘엄마’ 하고 불러준 날, 아이가 혼자 일어서 한 발짝 내디뎠던 날 등등 아이가 나에게 준 수많은 설렘과 행복이 있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부터 나는 그 순간들을 조금씩 잊었고, 현재를 살아내느라 바빴던 것 같다. 직장 생활하랴, 아이 키우랴 바빴던 나날들 속에 아이라는 존재가 점점 당연해지고, 때론 버거운 존재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나는 화가 잔뜩 나있던 것 같다. 쉴 틈 없는 하루하루가 지겹고,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인생이 무료하게 느껴졌고, 그 무엇보다 나의 전부라고 느끼던 아이가 마냥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는 나 자신이 못나 보이고 싫었다. 일종의 죄책감이었던 것 같다.
복직하고 너무 힘들었을 때, 난 내가 맘에 들지 않아 졌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돌아보면 약간의 우울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방법을 몰라서 나만의 동굴에 갇혀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해방이라는 단어를 마주했고, 이 드라마를 계기로 많은 생각들을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세상이 있고, 너무 지치거나 힘든 순간들이 찾아오면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아름답고 소중한 우리의 삶을 외면한다. 적어도 나란 사람은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갇힌 세상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해방은 나에게서 시작될 수도 있고, 타인에 의해 시작될 수도 있다. 때론 나의 외롭고 지친 마음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에서 해방이 시작되고, 때론 누군가가 힘들어하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나를 해방시켜 주기도 한다. 결국 사람이다. 우리는 사람과 연결되고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안정감을 느끼고 해방을 느끼는 것 같다.
때론 알고도 실천이 안 되는 간단한 방법이지만, 계속 새겨두면 전보다는 더 빨리 해방될 수 있다. 해방이란 거창한 게 아니었다. 육퇴 후 아이들 몰래 시켜 먹는 치맥, 어느 날 불쑥 떠나게 된 여행, 남편과의 평일 데이트, 오랜 친구와의 만남, 작고 소소한 쇼핑 등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해방될 수 있다. 그리고 그 해방감이 주는 행복으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일상을 즐겁게 이어갈 수 있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도 있듯, 얼마나 자주 해방될 수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그러니 어딘가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더 깊게 파고들지 말자. 그 상자를 뚫고 스스로 나오던지, 내가 나만의 세상에 갇히지 않게 해 줄 인생의 동반자를 곁에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