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야기

결혼 12년 차가 되어서야 깨달은 것들

by Kalyn

나는 20대 끝자락에 남편을 만났다.


당시 나는 비혼주의였지만, 연애는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서른을 앞둔 시점에 모임에서 만나거나 소개받은 남자들은 연애 대상으로도 별다른 매력이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게 지겨워질 무렵, 의외의 소개팅 제의가 들어왔다. 그것도 내 절친의 대학 동기의 친구.


정말 기대 없이 소개팅에 나갔다. 하지만, 그간 느끼지 못했던 설렘과 기대감을 느꼈다. 그렇게 우리 인연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은 갓 대학원을 졸업해 입사한 사회 초년생이었고, 나는 4년 차 공무원이었다. 우리는 20대 끝자락에 만나 사랑에 빠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이란 게 하고 싶어졌다. 이유는 뻔하게도 매일 붙어있고 싶어서.


부모님은 반대하셨지만, 이미 콩깍지가 제대로 쓰인 딸을 말리는 데는 실패하셨다.


우리는 1년 6개월이 되는 날 꿈같은 결혼식을 하고 허니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행복한 신혼 생활을 즐겼다. 결혼해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했던 나였지만, 결혼 후 1년 정도 되자 우리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곧 임신을 했다.


첫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여러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잘 극복해 나갔고, 아이를 키우는 행복이 너무 컸다.


그리고 첫째가 4살이 되는 해에 나는 복직을 했다. 둘째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복직과 동시에 마음을 접었다. 나 혼자 등, 하원을 담당하는 것이 너무 벅찼다. 당시만 해도 남편 재직 회사에 자율 출근제가 없었다. 남편은 자상하고, 집안일과 육아도 잘했다. 무엇보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했다. 하지만 난 육아의 많은 부분을 내가 더 해야 하는 것이 점점 화가 났다.


그런데 복직하고 반년 정도 되었을 때 둘째가 찾아왔다. 그 당시 나는 너무 바빴고, 힘들었고 화가 많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그때는 남편을 상당히 좋아하고 있었나 보다. 분명히 너무 바빴고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데 둘째가 생겨서 나는 막막해서 눈물이 났고, 남편은 외동에 확고했던 사람이었음에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터울, 내가 계획했던 터울로 둘째가 찾아온 게 기적과도 같았다.


나는 바로 다음 해부터 쭈욱 4년을 휴직했다. 아이 하나 키우는 것과 둘을 키우는 것은 너무 큰 차이였다. 두 배로 힘든 게 아니라 정도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내려놓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수 있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알차게 바쁘게 살았던 것 같다. 돌아보면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들도 참 많았다. 코로나 시기는 정말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많은 추억을 쌓게 해 준 소중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 사이 첫째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둘째도 어린이집에 갈 정도로 컸다. 마지막 육아휴직 1년은 남편도 휴직을 해서 정말 꿈같은 일상을 보냈다.


꿈같은 일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바로 시간에 쫓기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음이 너무 감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4년 만에 다시 복직을 했다. 둘째는 유치원에 입학했고, 이제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순진한 생각이었을 뿐... 나와 남편은 분 단위로 쪼개서 움직여야 했다. 우리는 마치 맞물려 있는 톱니바퀴 같았다. 하나가 멈추면 돌아갈 수 없는 톱니바퀴. 남편은 등원, 나는 하원 또는 내가 등원, 남편이 하원을 번갈아 하며 하루하루가 흘러갔고, 주말은 챙기고 돌봐야 할 여러 가지 일들로 빠르게 지나갔다. 바쁜 와중에 여행도 가고, 즐거운 이벤트도 많았지만, 일상을 쫓기듯 사니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다시 휴직을 결심했다.


나에게 남은 휴직은 가족 돌봄 휴직 밖에 없었다. 둘째가 아직 미취학 아동이고, 무급 휴직이라 허가는 쉽게 났다.


내가 휴직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쫓기듯 살고 싶지 않아서다.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리겠지만, 그간 애쓴 나의 10년, 나의 청춘에 대한 보상을 주고 싶었다.


시간에 쫓기면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없어진다. 그러면 마음이 점점 차가워지고 뾰족해진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가족에게 차가운 말투로 말하게 되고,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러다 종종 다투고, 화해하고, 또다시 일상을 산다. 그러다 또 비슷한 상황에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일로 다시 싸우게 되고, 그 강도는 점점 세진다. 결국 화해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마음은 아물지 않은 채로 계속 곪게 된다. 심하게 싸운 날은 상대가 죽도록 미워서 결혼 생활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혼을 하면 어떨까 하고 머릿속으로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미운 남편을 안 봐도 된다니 마음이 너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바로 상처받을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저렸다. 그러다 다시 나를 돌아본다. 잘못은 남편에게만 있는 게 아니란 걸 나도 안다. 다만 나는 싸울 상대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내 하소연을 들어주고 내 힘들고 고된 일상을 알아주고 어루만져줄 대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늘 그 마음을 표현하는데 미숙했고, 남편은 그 마음에 공감하는 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일상이 너무 고되고 힘이 들 때마다 나는 엄마가 필요했던 것 같다. 말 안 해도 다 아는 우리 엄마. 말 안 해도 알아서 척척 해주는 우리 엄마. 그렇게 해주지도 못할 거면 왜 결혼을 했냐고만 생각했지 남편은 내 엄마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혼 한지 십 년이 넘어가면서 부부는 상대가 알아서 해주기를 기대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부부는 부모 자식의 관계가 아니니 서로 싫은 것, 좋은 것에 대한 명확하고 부드러운 전달을 해야 하고 둘 사이에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함을 느낀다. 결혼 생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가장 중요한 건 대화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제일임을 안다. 퇴근 후, 맛있는 것을 함께 먹으며 오늘 나의 하루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가족이지 않을까.


우리 가족은 이 명확하고 중요한 깨달음을 마음속에 새기며 살아왔다. 그런데 올해 갑자기 바빠진 남편의 회사일로 인해 나의 일상이 조금씩 위협받고 있다. 입사한 이래로 주말 출근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야근이란 걸 했던 적이 손에 꼽는 남편이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빠르면 저녁 8시 전후, 늦으면 9시에 퇴근을 한다. 심지어 출장도 가고, 가끔 주말 출근도 한다. 3개월가량을 이렇게 보내니 남편이 점점 미워진다. 머리로는 남편 잘못이 아니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을 알면서도 화가 나고 심술이 난다.


나는 아무리 바빠도 둘째 하원 때문에 일을 집에 가져와서 애들 잘 때 했는데... 남편은 내가 있으니 회사에서 편하게 저녁 먹고 일하고 오니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물론 이런 상황에 나도 일을 하고 있었다면 그야말로 더 힘이 들었을 거고, 남편은 회사에서 업무를 할 수밖에 없으니 남편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란 건 안다. 하지만, 남편의 부재로 바빠진 저녁 일상이 때론 지겹고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일을 하고 남편이 휴직을 했다면, 남편도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했을까? 바쁜 와중에도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주고, 집안일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누그러졌다가도 나만 더 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 ”나만 부모인가? “라는 생각이 들며 화가 차오르는 것 같다.


벌써 세 번째 휴직임에도 불구하고 홀로 있을 때 종종 이런 감정이 차올랐다. 대체 왜일까? 차분히 내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나는 분명 출근을 할 때 이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운동하고 쇼핑하고, 좋아하는 책도 볼 수 있고, 나에게 주어진 여유로움에 감사하기보다 종종 답답하고 화가 나는 이유는 뭘까?


엄마가 되고부터 나의 밑바닥을 마주한 적이 많다. 내가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었나 싶은 순간이 종종 찾아왔다. 돌아보면 육아도 힘들었지만 결국 나는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 같아 불안해서 화가 났던 것 같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었으니까. 내 스스로 강인하고 정신력도 체력도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수많은 육아서와 누군가의 이야기로는 절대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 직접 해봐야만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매우 정직한 날것의 영역. 이제는 좀 단련이 된 것 같은데 계속 새롭고 답을 모르겠는 과제들이 주어지는 신세계. 엄마가 되는 것은 말 그대로 어렵다. 그 어렵고 난해함이 불안함으로 바뀔 때 나는 화가 났다.


하지만 화가 차오를수록 내 날것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을 이제 난 안다. 예전에는 몰랐고 머리로 안다 해도 실천이 안 되었던 것들을 하나둘씩 실천해 본다. 직설적이고 감정을 숨기지 못했던 내가 조금씩 달라진다. 내가 달라지니 상대도 달라진다. 그래서 오늘이 어제보다 행복하고 마음속 조바심과 강박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여유가 생기니 뾰족한 말투로 지적하고 불평하기보다 부드러운 말투로 속상한 점을 이야기하고 바라는 점을 이야기하게 된다. 늘 아내의 눈치를 살피던 남편도 한결 부드러워진 아내가 더 좋겠지. 그러니 난 오늘도 치열하게 내 시간을 즐겨야 한다. 아이들 보내고 운동하고, 가꾸고, 쉬고, 공부하며 나만의 시간들을 보내야만 한다. 그래야 내가 집사처럼 느껴지지 않으니까.


엄마는 아이들의 우주고 가정의 중심이다. 내가 나를 잃지 않아야 따스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스스로를 더 사랑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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