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지원과 합격, 선생님으로서의 삶, 그리고 박사 생활
어느덧 시카고 대학을 졸업한 지 13개월이 지났다. 정말 정신없게 지내온 날들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동안의 삶이 그만큼이나 또 다이내믹했기 때문이겠지.
졸업 후 무작정 건너온 중국 상해에서 낮에는 박사 준비생으로, 저녁에는 영어 선생님으로 살기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선생님으로서의 삶도 끝이 나고 어느새 박사과정에 들어와 수업을 듣고 있다.
되돌아보면 참 감사한 게 많다.
얼떨결에 시작하게 된 MAPSS 프로그램에서 장학금까지 받아가며 공부할 수 있었던 것. 정치철학과 학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넓힌 것. 시카고 대학의 유명한 라이팅 프로그램을 이수한 것. 좋은 교수님들의 추천서를 받고 좋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원서를 잘 마무리한 것. 영어 라이팅 선생님으로 상해에서 먹고살 수 있었던 것. 정치심리학과 미국 정치라는 새 분야로 박사에 합격한 것.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와 함께 같은 학교 같은 과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
수많은 감사할 것들 중 나에게 가장 큰 발전을 가져다준 것은 다섯 두 가지다.
학부, 석사 1, 석사 2를 거치는 오랜 기간 동안 계속 배우기만 했던 것 같다. 배운 것을 누군가에게 나누는 것이 두렵기도 했고, 그 막중한 책임감을 감당하고 싶지도 않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참 입에 풀칠한다는 것이 뭔지, 나는 선생님이 되었다.
주로 영어 글쓰기를 가르쳤는데 논술 수업으로 번지기도, SAT 수업으로 번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래저래 가르치다 보니 학생들의 점수보다는 내 영어 기초가 더 튼튼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소한 문법 실수가 눈에 밟혔고 모든 문장을 고치려고 하는 습관마저 생겨버렸다. 원래 가르치면서 성장한다더니... 학생들은 성장하지 않고 나만 성장해버린 것 같다. 미안하다.
박사과정을 시작하고 학계에 더 깊이 발을 담글수록 가르치는 능력은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실제로 1학기부터 TA(Teaching Assistant)를 하게 되면서 일년 간의 선생 생활이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이 재미있는 수업이고 어떻게 학생을 대해야 하는지가 아주 조금, 발톱의 때 정도로 이해가 되었던 것 같다. (물론 학부생들을 가르쳐 본 결과 학부생들의 집중력이나 참여도는 입시생들의 반의 반도 안된다... 훨씬 더 재밌는 수업을 해야 겨우 따라오는 것 같다.)
시카고를 떠나 중국으로 가며 아내와 다짐한 것은 꼭 같은 학교로 박사를 가는 것이었다. 정말 열심히 학교마다 정치학과를 알아보며 재학생들과 컨택트도 하고 비슷한 연구를 하는 교수들의 논문도 줄줄이 읽으며 학교마다 정교하게 SOP를 작성하며 9월부터 12월을 보냈다.
결국 아내도 나도 몇 군데의 학교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그중 우리를 함께 뽑아준 일리노이 주립대로 오게 되었다. 아내에게는 평소 마음이 있었던 계량적 연구에 특화된 학교라 좋았고 나에게도 미국 정치와 정치심리학, 그리고 계량정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로 길을 터준 곳이라 마음이 움직였다. 아내와 같은 곳에 살며 함께 수업을 들으며 돈을 받으며 내가 하고자 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 이상적인 상황이라 느꼈고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으로 오퍼를 수락할 수 있었다.
원래 이 글은 엄청 긴 후기로 작성될 예정이었습니다. 1, 2 외에도 정치사상을 (일시적으로나마) 그만둔 것, 미국으로의 이사, 박사 생활, 본격적인 요리 생활 등 여러 가지 소식들이 있지만, 생각보다 박사 생활이 바쁘고 글을 쓸 시간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갑작스레 끝맺어 버린 글이지만, 이제까지 사소한 제 유학생활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가끔씩 다른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