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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성준 Jan 04. 2020

주재원의 자녀를 가르친다는 것

주재원 부모는 금수저를 물려줄 수 있을까?

수요일 1:30 PM

중국 상해 구베이 슈이청난루 스타벅스 2층은 언제나 이 시간쯤 가장 붐빈다. 어설픈 중국어로 커피를 시키고 올라와 창가 외진 곳에 자리를 잡으면 주변 소리에 정신이 곤두선다. 너무 가깝지 않아 각자의 일을 할 수 있지만 너무 멀지도 않아 모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간, 그곳은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내 귀에 너무나도 익숙한 한국어로 가득하다. 특이한 점은 모든 한국어가 여성의 목소리로 들린다는 것. 주변을 돌아보면 대락 50석 정도의 장소가 3-40대 한국인 여성들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이들은 유모차를 대동하고 왔고, 어떤 이들은 대여섯의 단체로 왔다. 단체로 온 이들은 주로 작은 원형 테이블 위에 음료를 둔 채 뭐가 그리 걱정인지 걱정 어린 얼굴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고개를 돌리다 익숙한 몇몇 눈들을 마주치지만 서로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그저 이해한다는 짧은 눈빛을 나눈 채 그들은 그들의 심각한 대화 속으로, 나는 내 노트북으로, 눈길을 돌린다. 


카페 2층을 가득 채운 중년 여성들의 대부분은 주재원의 아내들이었고 나는 주재원 자녀들의 영어 선생님이었다. 그들은 주재원 남편을 따라 한국에서의 생활을 잠시 접어두고 정착한 미지의 땅 상해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힘껏 발품을 팔며 정보 교환을 하는 중이었고, 나는 그 정보의 일부분이었다. 나와 눈을 마주친 이들은 나에게 당신들의 자녀를 맡긴 이들이었고, 내가 그들의 자녀를 가르친다는 것은 다른 엄마들에겐 비밀이었다. 





주재원들은 보통 비싼 월세와 자녀의 국제학교 학비를 지원받고 해외 체류비 명목으로 월급도 더 받는다. 주재원의 태반이 기혼 남성이다 보니 아내들은 휴직하거나 아예 일을 그만두고 해외로 나와 저렴한 가격에 파출부를 두고 위챗(중국의 카카오톡) 단체방을 통해 반찬을 구매하며 집안일에서 자유로운 삶을 산다. 이렇게 개인 시간이 많아지니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자식의 교육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카페와 맛집을 찾아다니고 “유화 그리기 원-데이 클래스”와 같은 취미생활도 즐긴다. 주재원의 자녀들은 한국의 입시 압박에서 벗어나 영어를 주로 사용하는 일류 사립학교에 진학하여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영어, 중국어를 배우며 AP (Advanced Placement)나 IB (International Baccaloreate) 커리큘럼을 배우며 3년 특례를 통한 한국 명문대 진학 혹은 홍콩, 싱가포르, 일본, 영국, 미국 등의 명문대 진학을 노린다.


자, 여기까지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해외 주재원과 그 가족의 삶이다.


이런 이미지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면만 보고 그들의 삶을 편하다, 운이 좋다 라고 단정 짓는 것은 조금 섣부른 후려치기(?)가 아닐까 싶다.





평일 오후, "OO이 엄마"라는 이름의 그녀들이 스타벅스 2층으로 모이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하나를 꼽자면 단연 "불안감"이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대기업 직원이라 한들 자식을 명문 국제학교에 보내 명문대 진학을 준비시키고 파출부를 항시 고용하며 집안일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주재원으로 나온 이상 주재원 본인은 물론 그 가족들 모두 한국에서 매우 일반적인 일상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철학, 문화, 관념, 그리고 이해관계가 작용하는 세상으로 들어오게 된다. 학부모의 경우 갑자기 아이가 국제학교 혹은 로컬 학교 국제부에 들어가면서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커리큘럼을 이해해야 한다. SAT, AP, IB 등 해외 대학을 위한 입시는 물론 학교 커리큘럼도 모두 영어로, 영미권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천금 같은 기회임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미지의 세계다. 


우리 아이는 영어를 못한다. 한국에서도 그냥 평범하게 중상위권 정도를 맴돌던 아이다. 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명문 국제 사립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다. 아니, 주변 학부모들의 말에 따르면 아이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OO이 엄마, OO이가 영어 힘들어해서 고민이지? 우리 애도 처음 왔을 때 얼마나 고생했는데... 근데, 애들은 신기하게 또 늘더라고. 너무 걱정하지 마. 9학년 전에만 잘 준비해서 성적 잘 받으면...."


지난번 모임에서 다른 엄마는 분명 7학년까지 영어 못 잡으면 큰일 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우리 아이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것 같다. 몇 년 안에 치고 나가지 못하면 그 어렵다는 AP, IB 수업은 절대로 따라갈 수 없을 테니.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엄마들과 몇 시간 씩 수다를 떨고 와도 어떤 식으로 공부를 시켜야 하는지, 어떤 학원을 보내야 하는지, 어떤 선생님을 붙여야 하는지 감이 안 온다는 것이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한국 학원들의 입김이다. 많은 학원들이 틈틈이 "입시설명회, " "청명절 특강 소개, " "대치동 유학 전문 강사 초빙" 등의 이름으로 정보에 목마른 엄마들을 모은다. 이런 설명회는 주로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열린다. 엄마들이 우르르 몰려와 설명회를 듣고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서 설명회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는, 그래서 그 내용에 대해 곱씹도록 하려는 학원의 전략이라고 한다. 분명 이 학원에서 주는 정보와 저 학원에서 주는 정보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어느 정보 하나 놓치기에는 두렵다. 안 그래도 우리 아이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조금이라도 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수많은 설명회와 수많은 "엄마들과의 대화"에도 여전히 엄마들은 걱정이다. 그 어떤 학원도, 어떤 과외 선생님도 우리 아이 성적을 원하는 만큼 올려주지 못한다. 돈은 돈대로 받고, 성적은 안 오르니, 답답할 따름이다. 그런데 학원을 안 보낼 수도 없다. 그나마 지금 점수도 유지하기 힘들 것 같으니. 분명 몇 점만 받으면 다음 학년에는 높은 반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거기서 몇 점만 받으면 어떤 대학을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점수를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아무도 제대로 된 해답을 주지 않는다. 


결국 이러한 불안감은 그들을 "과함"으로 이끈다.





수요일 2:30 PM

스타벅스로 다시 눈을 돌려보자. 


나는 엄마들의 수다를 백색소음 삼아 "OO이 어머니"에게 위챗 문자를 보낸다.


"OO이 어머니, 이번 주 금요일에 OO이 학교에서 행사 있다고 하셨죠? 수업은 원래 시간에 해도 괜찮을까요?" 


"선생님, 제가 모임 중이라 조금 있다 전화드릴게요."

어머니들은 답장이 빠르시다.


이 분은 분명 스타벅스에 안 계신데. 여기 말고 슈이청난루 파리바게뜨 혹은 황진청따오에 있는 코스타 카페 등 어딘가에서 "엄마들과의 대화"를 하고 계시겠지. 그런데 왜 전화를 주신다는 걸까?


10분쯤 후, 굳이 내 문자에 문자가 아닌 전화로 답을 주신 이유를 듣게 된다.


"선생님, 제가 어제 미국 학교 다니는 OO이 친구 엄마랑 이야기를 했는데, 그 집 아이가 이번에 토플을 만점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엄마가 토플을 일찍 하는 게 너무 중요하다고, 내년에 AP 커리큘럼 들어가기 전에 토플 안 끝내면 내년엔 시간 없어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 말씀대로 지금은 학원에서 시키는 단어만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OO이 토플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학원에선 하루에 50개씩 밖에 안 시키는데 이렇게 해서 될까 싶네요..."


수업 첫날 분명 기본 영어 글쓰기 수업만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래도 불안하셨나 보다. 나는 갈등한다. OO이의 지금 현실을 말씀드려야 하나? 


"OO 이는 토플 못 쳐요. 지금 학교 따라가는 것도 벅찬 상황이고요,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도 영어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상해 온 지 이제 1년에 한국 친구들밖에 안 사귀는데, 영어가 어떻게 그렇게 늘겠어요? 지금 아무리 OO이 푸시하셔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OO이 단어 하루에 50개도 다 못 외워요. 학원에서 맨날 남아서 재시험 치고 온대요. 한국에서 공부 안 하던 애가, 여기 와서 좋은 학교 다닌다고 갑자기 머리가 좋아지나요? 한국에서 영어 50점 받던 아이가 갑자기 선생님 붙여준다고 토플 만점을 받을까요? 지금 수준에 맞게, OO이 페이스에 맞게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것 말고는 답이 없어요 어머니."


나는 이 말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나를 미워할 어머니는 없다. 많은 어머니들이 이런 현실을 나보다 먼저 알고 계셨다. 그런데 주재원 자녀를 가르치다 보면 선의의 거짓말이 는다. 


하늘이 우리 아이에게 내려준 엘리트 교육의 기회는 부모에게 부담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부모는 이 부담을 "과한" 선택을 통해 해소한다. 그 엄마들이 바보라서, 자기 자식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이런 부탁을 하는 게 아니다. 당신이 이 새로운 커리큘럼을 몰라서, 아이 교육에 대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래서 아이를 더 신경 쓰는 수밖에, 아이에게 더 많은 "도움"을 붙이는 수밖에, 그리고 아이를 더 푸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런 엘리트 교육을 받았었더라면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 텐데, 평범하게 살고만 있었던 삶에 갑작스레 박씨만 던져주고 간 제비를 바라보는 흥부의 심정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기에, 열심을 다해 박씨를 심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요일 3:30 PM


"엄마들과의 대화"가 하나 둘 끝나기 시작한다. 학생들이 집에 올 시간이다. 스타벅스 바로 앞에 위치한 Y국제학교에서는 이미 교복 입은 학생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한다. 


"OO아 여기! 아이고 고생 많았지? 여기 우리 아파트 사는 XX이 어머니야 인사해."


"안녕하세요."


"어머! 네가 OO이구나~ 엄마가 얼마나 니 자랑을 하시던지. 아이고 고생했다. 뭐 마실래? 아줌마가 사줄게."


이 시간이 되면 스타벅스는 엄마들의 긴장 넘치는 정보 교환의 장에서 다시 보통의 카페가 된다.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학생들부터 어른들까지, 한국어와 중국어, 그리고 영어까지 시끌벅적 한 그 시간이 되면 카페는 활력을 되찾고, 엄마들은 다시금 얼굴에 미소를 띠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 미소가 어떤 의미인지는, 그 미소 뒤에 어떤 염려와 아픔, 미안함이 지나갔는지는, 여전히 부모가 되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시간이 되면 나도 노트북을 정리하고 자리를 뜬다. 나에게 차마 인사하지 못했던 그분의 아이가 집에 올 시간이라. 내가 그 집에 들어갈 때쯤이면 그 아이는 교복도 갈아입지 못한 채 입에 간식을 물고 나를 반길 것이고 어머니는 아이에게 주셨던 간식보다 더 정갈한 그릇에 나를 위한 간식을 주실 것이다. 


"김 OO, 쌤 간식 뺏어먹지 마."


어머니는 OO이가 내 간식을 매번 뺏어 먹는 걸 아시는지 웃으면서 간식이 든 그릇을 나에게 건네주신다. OO 이와 나는 방 문을 닫고, 학교의 냄새가 채 빠지지 않은 교복을 입은 채, 수업을 시작한다.





OO 이는 언제나 내 간식을 뺏어먹었다. 그런 OO 이를 보며 나는 OO이가 아닌 OO이 엄마를 생각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주재원 가정의 삶이지만 이국의 환경이 주는 그 처절한 무기력함 앞에서 어쩔 줄 몰라 불안해하는 그 엄마의 마음을. 그 작은 주재원 사회 속에서, 출처 없는 정보와 돈에 눈이 멀어 있는 학원들과 선생님들 속에서, 아이를 위해 제대로 된 무엇인가를 해보고자 발버둥 치는 그 엄마의 과한 노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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