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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원쌤 Dec 05. 2021

행정이 앞선 교육

#공교육 #불행

우리 교육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행정이 앞선 교육이기 때문이다.


학생과 교사의 교육활동이 앞서는 교육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의 현실은 학생의 작은 생활 속 변화와 그 순간의 소중한 느낌을 살리기 위한 교사의 온전한 교육활동과 의미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은 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받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엔 모두가 동의하면서도 현실에선 지식 전달만이 측정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들은 사실 측정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랍니다.


어제까지 자신의 물건을 못 챙기던 친구가 오늘 자신의 물건을 반듯하게 정리하는 순간
수학 시간이면 몸을 비틀고 힘들어만 하던 친구가 어렵게 문제 하나를 해결하고 볼이 붉게 물들던 순간
자신이 관찰하던 식물의 작은 꽃 봉오리를 처음 발견하고 기뻐하며 기쁨의 글을 쓰는 순간
그동안 자신이 만들면 다 실패한다고 믿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만들며 자신도 무엇인가 그럴듯한 것을 만들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순간


학교 수업시간엔 이런 순간들이 넘쳐나야 하고 넘쳐나고 있답니다. 

교사들 중에는 이런 순간들을 잘 정리하여 학생들에게 다시 피드백해 주거나 학부모님들께 그 순간의 소중함을 알려주기도 하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는 그 순간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학생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 만족하며 생활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의 소중함을 우리는 행정적으론 표현하고 증명할 수 없습니다.


몇 년 전 아이들과 있었던 일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날 쉬는 시간, 급하게 제 컴퓨터로 메시지가 왔습니다. 무슨 급한 일인가 살펴보니 학교 폭력 예방교육에 대한 보고를 빨리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떻게 보고해야 하는지 살펴보니 엑셀 문서로 만들어진 곳에 필요 항목을 채워 넣어서 회신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회신 항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언제 했나 / 무슨 교과 시간에 했나 / 대상은 누구였나 / 1학기 동안 누적 시간은 얼마인가


대충 이런 내용을 채워 넣어야 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학교 폭력에 대한 교육은 이렇게 특정한 날짜와 시간에 특별한 교과를 통해서 하는 것이 효과적일까요? 아니면 아이들과 우리가 왜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살아야 하는지, 폭력이라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그것을 왜 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생활하는 전반에 걸쳐 같이 고민하며 지내는 것이 효과적일까요? 전 당연히 생활 속에서 아이들과 언제든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 생각했고 아이들이 작은 어려움이나 문제를 만들었을 때마다 함께 이야기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을 함께 배워갔습니다. 자연스럽게 학교 폭력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지요. 하지만 우리의 행정은 이런 부분들은 측정이 불가능하다 보고 그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즉 행정적으로 사용 가능한 자료로만 제출하기를 원하는 것이 현재의 학교 모습인 것이죠.


이 공문을 보고 혼자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고민하는 모습이 아이들 눈에는 선생님이 근심 걱정이 있는 것처럼 보였나 봅니다. 그때 한 아이가 제 옆으로 와서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선생님, 무슨 고민이 있으세요?'

'아~ 다른 것 아니고 선생님이 해야 할 공문이 있어서 그래.'

'공문이 뭔가요?'

'아.. 그건 선생님처럼 공무원이 되면 해야 하는 행정적 일이야. 그냥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면 되는 거야.'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은 우리랑 같이 공부하는 거 아닌가요?'

'아, 당연히 맞지. 그런데 그것 외에도 해야 할 일들이 있어. 너희도 나중에 커서 일하다 보면 알게 될 거야.'

'네, 아무튼, 그래서 선생님이 왜 고민이신 거예요?'

'아 그건.... '


제가 공문에 기입할 부분을 아이에게 보여주었고 다른 아이들도 다가와서 같이 보더군요. 그리고 제 이야길 듣더니 한 마디씩 했답니다.


'아니 이런 게 어딨어요? 우리는 학교 폭력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 평소 모든 수업에서, 모든 생활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물론 그렇지.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이렇게 보내라고 하면 이렇게 보내야 하는 것이 선생님의 일이기도 하거든. 그래서 곤란하기도 하단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생활하며 함께 고민했던 것이었기에 저에게 당당하게 우리 방식은 이런 형식과 다르다 이야기한 것이었죠.


행정이 앞서는 경우 벌어지는 일들


행정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에는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일련의 과정이라 생각해요. 즉 어떤 사안에 대해서 a와 b의 두 가지 경우가 존재할 때 행정의 경우는 둘 중에 하나를 무조건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테니까요. 시간과 내용이 특정되어야만 인정되는 것도 행정이지요. 하지만 교육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행정과 교육의 큰 차이점이라 생각해요. 교육은 반드시 한쪽을 선택해야지만 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을 다 고려하고 함께 선택할 수 있는 게 교육이기 때문이죠. 교육활동은 딱 잘라서 특정 짓지 못하는 일 투성이니까요. 우리의 정신활동을 딱 잘라서 세분화하여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 교육활동의 특성이라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행정은 그렇지 않죠.  

그래서 학교 현장에서 행정이라고 하는 것이 앞서다 보면 무엇을 선택하기만 강요를 하게 되는 것이 될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무엇을 했느냐 안 했느냐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행정적으론 효율적이겠지만 교육적으론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고 했느냐 안 했느냐만 가지고 교육을 논하게 되는 순간 교육은 당연히 불행일 수밖에 없어지게 된다 생각해요. 교사들도 이런 행정이 앞서는 문화에 젖어들다 보면 무엇을 하건 그것이 남겨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될 것이고요. 


교육은 다양한 변주가 가능할 때 아름다워진다.


교육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해야 되는데 행정이 교육에 앞서는 순간 다양성과 변주는 설 자리를 잃어갈 수 밖엔 없어요. 행정적으론 측정할 수 없는 교사의 섬세한 관찰이나 손길 한 번이 아이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교육이 앞서는 학교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그래서 모든 교사들이 무엇인가 했다 안 했다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진짜 살아감을 느끼는 그 속에서 진정한 배움의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요. 


학교에 들어온 교육과정 이외의 온갖 사업들과 규정들


학교에서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죠. 그리고 그것의 핵심엔 국가에서 정해준 국가 교육과정이 있지요. 그래서 국가 교육과정의 내용을 아이들과 함께 잘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일을 교사가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하는 것이죠. 앞에서 우리 반 아이가 말한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학교의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교육과정엔 제시되어 있지 않은 온갖 사업들을 학교에서 해 달라고 요청해요. 심지어 그 요청을 잘 수행했는지 보고하라고도 하지요. 했다 안 했다는 행정적 잣대를 들이대면서요. 교사들을 진짜 힘 빠지게 하는 것은 다른 것에 있지 않아요. 현재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교육활동의 본질에 대해선 그냥 당연한 것이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으니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하고선 행정적으로 보이는 부분을 충실히 하길 원할 때 힘들어진답니다. 그래서 행정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일을 해 나가는 것은 왠지 보상도 없는 일에 힘 빼는 일인 것인 양 생각하기 쉬워져요. 누구라도 적절한 보상이 있을 때 더 적극적일 테니까요.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아이들과 해 온 농구 동아리와 환경 동아리 활동 


10년을 넘게 아이들과 일주일에 2번을 농구동아리를 운영했고(주로 오후 5시부터 6시 사이) 10년이 넘게 주말을 활용해서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생태환경 동아리를 운영(년 6회에서 7회)했어요. 코로나로 주춤한 상태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제가 가진 특기를 아이들과 나누기 위해 노력했지요. 이런 활동들을 하면서 제가 얻은 것은 참여한 아이들이 보인 순수한 기쁨이었어요. 어떤 제약도 없었고 어떤 요구도 없었어요. 그냥 하고 싶은 사람은 자유롭게 나오라고 했고 나온 친구들에겐 그 순간 할 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게 해 주었죠. 이런 활동을 행정적으로 기록하거나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보상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왜냐하면 저에게 교육활동은 그 자체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건 가능한 것이니까요. 행정적으로 증명하지 않았기에 저의 이런 활동들은 어디에도 공식적인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요. 하지만 제 사진첩에 그리고 아이들 마음속에 그 순간들은 남아있지 않을까요?


몇 년 전 졸업식 장에서 우리 반 친구가 아닌 남학생 부모님이 절 찾아오셔서 크게 인사를 하시더군요. 자기 아이가 선생님 덕분에 학교 생활을 잘 끝내고 졸업한다면서요. 제가 한 일은 그 친구가 농구동아리에 나왔을 때 같이 농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일이 전부였어요.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진 않지만 아이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고 부모님께 계속 말씀드렸었나 보더라고요. 행정적 기록으로 우리의 교육을 판단하는 것, 우리 교육의 현실을 파악하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행정을 앞세워 무엇을 하건 기록하고 검토하고 분석하려고만 하는 것은 교육관 맞지 않다 생각해요. 


2022 개정 교육과정


최근 새로운 교육과정이 만들어졌어요. 다양한 생각들이 담겨있겠지요. 아마 시대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 많은 이야기들이 교육과정이라는 문서로 만들어졌을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문서에 존재하지 않아요. 그것을 기준 삼아 실천하는 교실 속 아이들과 교사에게 모든 중요함이 담겨있어요. 아무리 멋진 것이라도 그것을 실행하는 실천 현장과 실천인 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행정을 앞세워 새로운 교육과정을 검토한다면 결국 모든 것은 의미 없는 말 잔치로 끝나버릴 것 같아 걱정입니다. 


첨부 : 앞에서 아이들과 학교 폭력에 대한 보고를 어떻게 했는지 알려드릴게요. 결국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 써서 보냈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쓰라고 했거든요.


'선생님, 그냥 아무 날짜와 시간 과목 넣어서 보내시면 되잖아요. 우리는 모든 교과 시간에 학교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거짓말 아니잖아요. 혹시 누가 나와서 물어보면 그때 했다고 우리가 증언할게요. 걱정하지 마시고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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