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근데 나만 이상해?
보도자료를 위한 학교 취재 요청이 있었다. 내 상식으로는 초상권과 개인정보이용이 민감한 정보이기에 요구하는 가이드를 따를 수 없다고 말했다.(개인정보가 노출된 취재) 대신 대상의 얼굴이 잘 나오지 않는 각도로 진행할 것을 요청했고, 보도 내용에 들어갈 인터뷰도 사진 없이 내용만 취재하겠다고 전달했다. 나는 당시 조금 덜 당당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취재 당일 파견된 사진 기사는 학생들에게 연출 샷을 요구했고, 인터뷰를 했던 학생을 따로 불러내어 독사진을 찍기도 했다. 사전에 동의가 없었기 때문에 너무 당황했지만 정신 차리고 인터뷰에 응해준 학생에게 사진이 어디에 쓰이는지 구두로 설명했다. 회사로 복귀해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공유했고, 당연히 학생의 본명은 기재하지 않았다. 돌아온 답변은 인터뷰의 기본은 실명과 사진이죠.'였다.
그 기본은 누구의 기준인가? 처음에 들이민 가이드 기준이겠지? 기존 가이드에 맞추지 못하면 내가 일을 잘 못한 게 된다. 그러고 싶지 않아 담당 교사에게 전화해 상황을 알렸고 학생들의 동의를 구두로 받았다. 찝찝하지만, 구두로 동의를 받아 내용을 전달했다. 2시간 안에 동의를 받을 것을 요구해 놓고 내게 확실히 동의받은 것이 맞냐며 몇 번을 확인했다. 그 말은 내게 '이 일로 문제가 생기면 난 확실히 동의를 받으라고 했고, 문제가 생겼을 때 잘 못한 건 너야. 그러니 넌 끊어낼 꼬리야.'라고 들렸다.
실무자는 그 일에 소속된 사람들 중 가장 적은 월급과 작은 권한과 가장 조그마한 가치로 평가를 받지만 그에 비해 큰 책임을 담당해야 하는 사람이다.(물론 내가 중간관리자나 그 이상의 역할을 해본 적은 없다.) 이렇게 내 상식에 맞지 않은 일처리를 해서 불안해도 실무자는 내일을 운에 맡겨야 한다. 즉, 나는 오늘 그릇에 물 받아놓고 사진 찍힌 학생들과 보호자들에게 아무 컴플레인이 없길 빌어야 할 뿐이다.
이 일을 곱씹으며 나를 돌아봤다. 나는 이 방법이 틀렸다고 생각하면서 말하지 못했을까? 아마 일 못하는 사람이 되기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나만 특이하게 생각해서 일이 밀리는 것일까 봐.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내 가치에 맞는 행동을 한 것일까? 오늘만큼 성장한 내 결론은 '미처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니, 언제까지 서면 동의를 진행해 보고하겠다.'라고 말할 걸 싶다.
급한 사람이 불 끄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