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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시니 Dec 20. 2020

# 7. [신데렐라 언니] 같은 악역

너 발레가 하고 싶긴 하니?

마땅한 예는 떠오르지 않지만 악역 중에 가장 악질적인 악역은 악역답지 않은 악역이다. 악역의 입장의 스토리 전개를 보면 악역의 처사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악역. 분명 악역이 한 행동은 잘 못된 행동이고, 사랑해줄 수 없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조금은 이해가 가는 역할, 아니 '세상이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군요'라며 악인으로 매도할 수 없는 역할이 가장 나쁜 악역인 것 같다. 마냥 미워할 수도 없고, 사랑하자니 먼 당신.


입사한 지 1년이 지나자 내게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그 배경에는 '1년'을 견딘 첫 사원의 탄생이었다. 앞서 여러 번 글로 전달한 것처럼 이전 회사에는 많은 퇴사자들이 있었다. 그 여러 퇴사 과정들을 회사도 버텨 연 간 일정을 체득하고, 회사를 이해할 수 있는 사원을 탄생시킨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하게 된 것이었다. 며칠 전까지 신입사원이었던 내가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내가 입사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들, 과제들을 상기하며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들을 죽 적었다. 그 내용을 팀장한테 전달했고, 상의를 통해 어떤 내용을 전달해야 할지 가지를 쳐 가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하게 된 즈음에 사원이 3명 새로 입사했다. 각 팀으로 흩어지며 2명이 내가 있던 팀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내가 입사했을 때 이사가 직접 강의했던 내용들을 상기하며 전달했다. 또한 이전 회사는 교육 서비스를 기획하고, 제공하는 회사였기에 신입사원이 교육을 하는 날이면 교육 전, 후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각 개인과 나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 노력했다. 그 사원 2명은 나보다 나이도 많았고, 사회 경험으로는 선배들이었지만 나를 그 회사 선배로 존중해주었고, 그 교육과정을 통해 정을 쌓아 퇴사가 고민될 때 함께 술을 마시고 퇴사를 한 이후로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두 사람 모두 나보다 먼저 퇴사했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퇴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사가 내게 개별 면담을 요청했다. 그 개별 면담의 내용은 수습 중인 신입사원 중 한 명을 정규직으로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 내용을 전달하며 내게 신입사원에게 어떤 내용을 교육했는지 물었다. 팀장과 나름대로 준비했던 내용을 전달하자 본인이 내게 바랬던 내용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 교육내용은 이사인 본인과 대표가 더 잘하는 일이라며, 내게 왜 당신이 그런 내용을 교육했냐고 했다. 본인이 내게 원했던 신입사원 교육은 이 회사 생리를 이해시키고, 신입사원이 잘 적응하도록 하여 이 회사에 맞는 인력을 양성하길 바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신 때문에 그 신입사원이 잘리는 것이라고 했다. 한 명이 나 때문에 잘렸다. 열심히 수습 과정을 지냈지만 정규직 전환에 '나 때문에' 실패했다.


회사에서 내게 원했던 신입사원 교육은 회사에 대해 이해하고 더 나은 업무를 할 수 있는 사원으로의 성장이 아니라, 나와 같이 1년 이상 근무를 하게 만드는 교육이었다. 하지만 나는 회사의 여러 면을 정직하게 전달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자 신입사원들은 일찍이(호의를 권리라고 생각하기 전에) 회사에 본인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거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적당히 업무를 맡아서 했다. 그런 점들이 운영진 입장에서는 불편했고, 수습 계약 만료로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옳은 것을 옳다. 그른 것을 그르다.'라고 말하는 것은 꽤 많은 경우 불편한 상황을 동반한다. 또는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경우들이 생긴다. 하지만 계약 관계에서 '불편한 상황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은 배제하고 공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맞다. 나의 이전 회사는 '수습이라는 명목으로 사원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회사'는 되기 싫었나 보다. 사람 좋은 척 그 사원에게는 어쩔 수 없는 척해줄 수 있는 배려는 다 해주겠다며 배제해도 괜찮을 '불편한 상황'을 끌어들여 왔는데, 책임은 지기 싫으니 신입사원 교육을 맡았던 나에게 떠넘긴 것이다.


너 어떤 교육을 하고 있었니? 누가 너한테 그렇게 하라고 했어? 너 때문에 이번에 들어온 사람 중 한 명은 정리하기로 했어.


어쩌면 계약 만료로 정리된 사원이 처음부터 그 회사와 맞지 않았을 수 있다. 태도는 본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 난 이사의 말을 그 문장 그대로 마음에 담아두게 되었다. 다시 마음에 담아둔 문장을 꺼내보며 불편한 책임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언제나 행복한 장면만 인생에 가득할 수 없다. 어떤 결정을 하고, 그 결정으로 인해 생길 불편함을 감당해야 될 때가 있다.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악역은 악역일 뿐이라며 내 몫의 불편함을 스스로 감당하지 않으면 주변 사람, 그다음의 상황들까지 도미노처럼 불편해진다.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이 내 인생에 있었고, 그 시간을, 그 불편함을 내 몫이라며 감당한 시간들이 지금은 다져져 조금 더 어른스럽게 악역을 감당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


잘린 그 사원의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까지 사무실 내에서 마주칠 때마다 불편하고 마지막 날엔 마중 나가지도 못 했다. 하지만 퇴사일 이후 회사에서 처리하는 과정들에서 그 사람은 회사의 고여있는 폐단을 알게 되었고, 본인에 대한 회사 결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퇴사 후 시간이 좀 흐르고 술 한 잔 하며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비난의 대상이 되기 싫었던 회사의 속내를 대신 짊어지며 버티는 나를 알아준 것 같아 나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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