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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Dec 31. 2022

매일 쓰면 작가다


그날은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이 발표되는 날이었다. 당선작 발표 공지를 클릭하고 스크롤, 스크롤... 선정 권수가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수십 권, 정확히는 50권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스크롤을 내릴 페이지가 더는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사라졌다.


그 시각 밖에는 눈이 내렸다. 소주가 당겼다. 아침에 가수 장기하가 지방 어느 식당에서 낮 술 기울이는 유튜브를 본 영향이겠다. 장기하니까 운치가 있지 어쩌고 하는 댓글을 보고 내가 쓴 줄 알았다. 장기하를 보며 생각했다. 진짜 체력이 좋은가보다. 내가 저렇게 술을 자주 마셨으면 아마 나는... 생각만 해도 숙취가 밀려왔다.


"한약복용과 식이요법을 시작하면 맥주는 드시면 안 돼요. 드실 거면 차라리 소주를 드세요." 며칠 전 진료받은 한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설명을 들을 때는 감정변화가 없었는데 오늘은 소주를 마셔도 된다는 게 다행스럽다. 마침 맥주도 아니고 소주가 생각나는 상황이다.


한 병 사면 한두 잔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텐데 남은 건 어쩌지. 마시지 말고 그냥 참을까. 잠깐 기분을 달래며 목을 축인 뒤에는 평소처럼 캘린더에 적어둔 일을 할 생각이다. 그러자면 컨디션을 위해 숙취예방제도 같이 사 오는 게 좋겠다. 입에 안 맞아서 남기게 되면 아깝겠지만 안 마신 것 보다야 낫겠지. 안주는 집에 있는 어묵으로 탕을 끓이면 어울리겠다.

마음을 정하고 두툼한 옷을 걸친 뒤 집을 나서서 편의점으로 향했는데 몇 걸음 가다가 도로 집으로 들어왔다. 몇 미터 앞에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웃이 보였다. 오늘은 날이 아닌 모양이다. 집에 들어와 냉기가 스미다 만 마스크를 다시 벗어 두고 외투를 옷장에 넣었다.



내 글이 모든 사람에게 좋아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선정이 안 될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브런치북의 문턱이 높다면 얼마나 높은지 그 높이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게다가 기존에 써둔 글이 있었고 응모하기만 누르면 되는 상황인데 혹시 모를 소수점 확률을 외면할 필요가 있을까. 기대 없이 응모했다가 시간이 갈수록 그 소수점 확률에 내심 마음이 가면서 발표일을 기다리게 된 건 나도 어쩌지 못한 마음의 흐름이었다.


소주와 숙취해소제를 사러 가려했는데 대신 작두콩차에 우유를 타서 따뜻하게 마셨다. 아주 예전의 나라면 각종 군것질 폭식 각인데 이 정도쯤 일에는 몸에 해로운 일은 하지 않는다.


당선된 분들에게 처음엔 박수가 안 나왔는데 당선작 중 하나를 골라 읽고 나자 브런치 공지글에 좋아요를 누를 정도의 마음이 생겼다. 재미와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해준 저자분께 축하를 전하며, 그렇게 오래전 일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쓰자면 얼마나 기억력이 좋아야 하는지 혹은 얼마나 기록력이 좋아야 하는지 묻고 싶어졌다. 특별상 수상작을 모두 읽어보진 못했지만 좋은 글이 많을 거라 짐작된다.  


당선작을 훑어보며 배운 게 있다. 글은 따뜻할 때 써야 한다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이 따끈따끈한 이유는 매일매일 고정된 시간 글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대부분의 일상적인 순간들을 글로 기록해두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매일 적어대면 일상의 순간이 글로 옮겨지기까지 시간텀이 24시간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좋은 글이 어떻게 안 나올 수 있을까.


당선작들을 훑어보자니 마음이 쭈글이가 되려 했다. 글 소재가 아주 튀거나 글을 맛깔나게 잘 풀어쓰거나. 책으로 나오는 건 둘 중 하나인 듯한데, 글을 맛깔나게 풀어쓰는 방법 중 가장 쉬운 건 어떤 생각이나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바로 쓰는 것이 최고인 듯하다.


매일 쓰면 작가다.
매일 쓰자. 매일 끄적이자.


브런치북을 완독 해준 30명의 독자분들을 생각하며 잠들기 전까지 견딜 수 있는 힘을 내기로 했다. 일부러라도. 긍정은 힘들 때 빛을 발한다. 힘들 때 내는 긍정이 진짜 긍정이다. 세상이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나까지 싸늘하게 등지는 것은 의리가 아니다. 힘든 하루를 보낼지 모를 나에게 의리를 지키겠다고 찐한 약속을 전했다.




제가 소주를 마시려고 한 건 브런치에 당선이 안 되서가 아닙니다 여러분. 그냥 눈이 와서 그래요. 뭐 그렇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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