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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세담 Jun 11. 2019

아들 둘이면 빵점이야

"아유~ 아들만 둘이야? 빵점이네 빵점!"

"아들만 둘이라 어떡하누? 지금이라도 딸 하나 더 낳아~"


마트에 갈 때마다 시식코너 여사님들이 하시는 말이다. 일반 가게에서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 중에 이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자주 있다.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 많은 어른들이 하는 얘기니 그냥 웃어넘기자 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솔직히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언제 들어도 불편하고 기분 나쁜 말인데 사실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쓸데없는 오지랖에 기분이 나빠지거나 상처를 받는 일이 많다.


딸이든 아들이든 하나만 있으면 "그래도 둘은 있어야지, 하나는 외로워. 둘째 언제 낳을 거야?"

딸만 둘 있으면, "아무리 그래도 집안에 아들이 하나는 있어야지. 빨리 아들 하나 낳아."

아들만 둘 있으면 "엄마는 딸이 있어야 해. 지금이라도 딸 하나 낳아~"


이런 게 바로 세상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낳아줄 것도 아니고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이래라저래라 낳아라 말아라 한 마디씩 해서 결국 열심히 아이 키우는 부모의 기운을 쏙 빼놓기 일쑤다.


제왕절개를 하려고 하면 "그래도 배 아파 낳아야 내 자식이지, 마취제는 얘한테 안 좋아."

분유 먹이는 엄마들한테는 "엄마 모유가 최곤데, 왜 애한테 분유를 먹여요?"

육아 휴직하고 복직하려고 하면 "애는 엄마가 키워야 하는데~"

복직했다가 회사에서 퇴사하려고 하면 "요즘에 누가 애 때문에 퇴사해. 그냥 회사 다녀."

그래서 회사 계속 다니면 "역시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 집에 엄마 없는 애들은 좀 그래."




나는 직장맘이지만 그래도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아이를 가진걸 안 순간부터 모유 수유를 했던 2년 동안 커피를 포함한 모든 카페인 음료, 밀가루 음식 (라면, 피자, 떡볶이), 날 음식 (회, 초밥) 등등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안 좋을 수 있다고 알려진 모든 음식을 먹지 않았다.


심지어 아이를 낳을 때 너무 크게 소리 지르면 아이가 신경질적이 될 수 있다는 수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는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는 말이지만 그래도 내가 참으면 아이한테 좋다니) 4킬로가 넘는 아이를 낳으면서도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아 "간호사 생활 30년에 4킬로가 넘는 아이를 이렇게 우아하게 낳은 산모는 처음이에요."라는 극찬을 듣기도 했다.


"아이는 안아줘 버릇하면 계속 안아줘야 한다, 손 탄다, 힘드니 최대한 안아주지 마라."라고 주위 사람들이 얘기해도 "안아 달라고 할 때까지는 최대한 안아 주려고요. 제가 좀 힘들면 어때요. 아이가 엄마한테 안기고 싶은 게 당연하 거고 그게 엄마의 행복이죠." 라며 손탈까 하는 걱정 따윈 하지 않고 안아 키우다 양쪽 손목 인대가 늘어나 버린 상태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키워서인지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생인 지금도 스킨십에 자연스럽고 학교를 다녀오면 재잘재잘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살가운 아들들이다. 딸도 무뚝뚝할 수 있고, 아들도 살가울 수 있다. 딸도 듬직할 수 있고 아들도 귀여울 수 있다.


성별을 떠나 모든 부모들에게는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너무나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본인들이 처한 환경 속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모들에게 아들이니 딸이니, 하나니 둘이니 등의 불필요한 말로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상대방이 불편해한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해도 그냥 말을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언제 어디서나 그런 분들을 자꾸 만나게 되는 걸 보면 그런 참견에서 자유로울 날이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 우리가 아들들이라 엄마 힘들어? 엄마 불행해?"


어느 날 "아들만 둘이라 엄마가 힘들겠어."라는 말을 하는 가게 사장님의 말을 듣고 큰 아이가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정말이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다. 아이들이 옆에서 듣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하는 그분이 참으로 미웠다. 검은 소 누렁 소중에 누가 일을 잘하냐는 질문에 소가 들을까 봐 귓속말을 했다는 동화책을 들려주고 싶을 정도로 어른이지만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들이 많다.


내가 속상한 건 둘째 치고, 아이가 그 말을 듣고 혹시라도 자기 때문에 엄마가 힘들고 불행하다는 생각을 혹시라도 할까 봐 분명히 대답해 주었다.


"무슨 소리! 엄마가 세상에 태어나서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이 우리 윤이 운이 낳은 거야! 엄마는 우리 아들들 있어서 너무 행복해!"


그런 말을 아무렇게나 하는 사람들이 없는 사회가 된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나 스스로 나도 아이도 그런 이상한 말에 상처 받지 않도록 해야 할 듯하다.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의 마음을 지키는 것도 나의 마음을 지키는 것도 결국 나의 몫이다. 다른 부모님들도 아이를 키우다가 혹시라도 이런 종류의 말을 듣는 경우가 생긴다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하는 의미 없는 말'이고 상처 받지 말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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