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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세담 Jan 24. 2019

엄마는 꿈이 뭐야?

"엄마, 엄마는 꿈이 뭐야?"


"아.... 엄마 꿈? 엄마 꿈은 우리 아들들 건강하게 잘 크고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거지~"


"아니 아니, 엄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냐고?"


"아, 엄마는... "


"엄마는 처음부터 회사원이 꿈이었어? 그래서 지금 회사 다니는 거야?"


"아..."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대화였다. "처음부터 회사원이 꿈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고, 외국 사람들한테 우리나라의 좋은 점도 알리고 싶었고, 그런 의미에서 엄마가 지금 하는 일을 보면 꿈꾸던 것과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아." 어쩌고 하면서 넘어갔던 것 같은데, 사실 지금 다시 똑같은 질문을 받아도 더 잘 대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결혼을 한 이후에도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매년 다이어리를 사고 매년 10년 치 계획을 세웠었다. 10년 동안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올 해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상세 계획을 세웠다. 스스로 세운 계획은 최대한 실천하려고 했고 실제로 매년 세웠던 목표를 거의 달성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이후, 언제부터인가 신년이 되어도 목표나 계획 세우는 것을 안 하게 되었다. 나만의 의지와 노력으로 내가 목표한 것을 해낸다는 것은 나 혼자서 나만을 생각하며 인생을 살 때는 가능했지만, 아이에게 절대적인 존재인 엄마가 되고 나니 나 혼자만을 위한 계획이란 것을 세울 수도 없고 세웠다 할 수도 실행할 수도 없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고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반복되자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어쩌다 이렇게 내 인생을 내 의지대로 살지 못하는 그저 그런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언젠가부터는 계획이란 것을 세우지 않게 되어버린 것 같다.


회사를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우선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재우고 나서 뭔가를 해야지 생각하지만 아이를 재우다 보면 나도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어 버렸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렸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퇴근 후 운동을 하러 가거나 뭔 가를 배우러 가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주중에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주말은 온전히 아이들을 위해 쓰게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가 어려서 주말 반나절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불안했기 때문에 지인들과의 약속도 거의 잡을 수가 없었다. 개인 시간이 없는 것이 어떨 땐 너무 갑갑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노력해서인지 우리 아이들은 맞벌이 부모 밑에서 컸음에도 엄마·아빠와의 애착관계도 잘 형성되어 있고, 정서적으로 아주 안정적이라는 얘기를 유치원이나 학교 선생님들께 많이 듣는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큰 행복이라는 것에는 전혀 이견이 없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행복과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로, 더 이상 자유롭게 나의 꿈을 추구하지 못하고 내 생각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마음대로 내 인생을 살 수 없는 상황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곤 했다.


자주적이고 주최적으로 나의 삶을 살던 '나'라는 존재가 점점 약해지고 이제는 나의 삶의 온전히 나의 의지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은 솔직히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어쩌다가 나는 꿈도 계획도 없는 그런 사람이 되었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엄마라는 역할을 하는 나 말고 순수하게 나라는 사람은 이제 꿈을 꾸면 안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해 나의 삶을 살았던 열정적인 20대에 비해, 나의 30대는 아이를 빼면 아무것도 없는... 내 인생에 정작 나는 없는... 무엇하나 이루지 못한 시간 인 것 같아 속상하고 우울했고,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웠다. 다시 하라고 해도 절대로 그 정도로 해낼 수 없을 거라고 자부하는 나의 20대와는 달리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나의 30대가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아들 둘 낳고 건강하고 밝게 잘 키우고 있고, 좋은 직장에 잘 다니고 있고, 왜 이룬 게 없느냐. 정말 잘 해왔다. 대단하다."는 남편의 말도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근본적인 고민에 대해 전혀 이해를 못하고 지금의 상황이 최선이니 이렇게 쭉 살면 되는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만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는 너무 행복했고, 지금도 너무나 행복하다. 하지만 '나의 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스스로 명쾌하게 답을 할 수 없으니 괴로운 마음에 의식적으로 잊고 지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들어 뒤돌아보면 나의 30대도 그리 못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10, 20대는 온전히 나의 성장에 집중한 시기였다면, 나의 30대는 내가 우리 가족이라는 나무를 멋지게 키워내기 위해 씨를 심고 싹을 틔우기 위해 정성을 다해 키운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회사생활을 함께 하는 동안 나의 커리어가 엄청나게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놓지 않고 지금까지 해 온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하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최대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아이들을 키운 시간이 있었기에 이제는 엄마가 해외 출장을 가도 우리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불안해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며칠 전 회사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 남편에게 얘기하고 있을 때였다. 첫째가 어느새 쓱 내 뒤에 오더니 '우리 엄마 정말 힘들었겠다.'라며 나를 꼭 안아 주었다. 하...  그 순간 내가 왜 화가 났었는지도 기억도 나지 않고 그냥 사소한 일이 되어 버렸다. 어느덧 이렇게 엄마를 위로해줄 만큼 훌쩍 커버린 아들(아직 겨우 10살이지만^^)을 보며 나의 30대가 그렇게 보잘것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필요하지만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열심히 키운 지난 10년의 시간이 있었기에 이제는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나만의 시간도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았나. 그렇다, 내가 엄마가 되어 산 지난 10년이 절대 뒤로 가는 걸음이 아니었다.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더 멀리 더 행복하게 함께 걸어갈 우리 가족을 만든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우리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나만을 위한 꿈'이라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의도해서 꾼 것은 아니지만 이미 이룬 꿈이 우리 아이들이니까 말이다! 대신, 이제는 나만을 위한 시간을 이렇게 잠깐씩 만이라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지금 내 상황에서 내가 해낼 수 있는 있는 정도의 목표를다시 세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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