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0시에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둘째의 돌봄교실 추첨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추첨 규정 심의건 운영위 심의로 추첨일정이 2월 15일 이후로 연기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3월에 입학인데 2월 말이나 되어서 돌봄교실 추첨이 이루어진다면 만약 당첨되지 못한 아이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답답한 마음에 학교에 전화를 해봤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입학하게 되어서 돌봄교실 신청을 한 학부모입니다. 추첨일정이 왜 변경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네, 예년 대비 신청자가 너무 많아서 추첨 규정에 대해 심의가 필요해서 연기하게 되었습니다."
"몇 명 정원에 몇 명이 신청한 건가요?"
"20명 정원인데, 1학년에서 2학년 올라가면서 재원 하겠다고 한 학생이 17명이고, 신규 입학생 중에 신청한 학생이 30명쯤 됩니다. 전부 1순위 맞벌이 가정이고요"
"2학년 재원생이 17명이면 신입생은 TO가 3자리라는 건가요?"
"그래서 저희가 추첨 규정을 다시 논의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신입생 TO가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재원생들도 겨우 2학년 아이들인데 그 아이들도 돌봄이 필요하니까 신청했을 텐데요, 그러면 추첨 규정을 협의할 게 아니라 돌봄교실 증설 방안을 협의해보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 네... 그렇기는 한데, 교육청에서 기존 학교는 증설 없이 운영하고 신규 학교만 증설을 하라고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정원의 3 배수 가까운 맞벌이 가정이 신청했는데, 증설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이 추첨 기준만 새로 정한다고 하니 정말 답답할 노릇이다. 그것마저도 설 연휴 지나고 회의를 한 후에 추첨을 하겠다고 하니 그러면 2월 말이 되어서야 결과가 나오고, 그때 가서 추첨에 떨어진 집은 어떻게 대책을 마련하라는 건지 정말 갑갑하다.
전화를 받는 선생님께서 미안해하시는 마음이 느껴졌지만, 현실적인 대안은 없어 보여 답답한 마음에 기존 학교에는 돌봄교실 증설을 하지 말라고 지침을 내린 교육청 담당자를 알려달라고 해서 교육청으로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00 초등학교 입학생 학부모입니다. 방금 학교에 전화를 했는데요, 교육청에서 신규 학교에만 돌봄교실을 증설하고 기존 학교에는 증설 없이 운영하라고 지침을 내리셨다는데 맞나요?
"네, 증설의 경우 교실 확보와 예산 문제가 있어서 기존 학교는 어렵습니다. 대신 기존 학교는 '방과 후 교실 연계 돌봄'을 추가로 운영할 수 있게 가이드 해드렸는데요, 말씀하신 00 초등학교는 신청을 안 하셨네요."
"1학년의 경우에는 수업 이후에 방과 후 교실 수업을 듣더라도 3시면 다 끝나게 되는데 어떻게 방과 후 교실이 돌봄교실의 대안이 될 수 있나요? 그리고 지금 00 초등학교는 방과후교실 연계 돌봄을 아예 신청도 안 했다고 하셨는데 오늘 통화해보니 돌봄교실 신청자가 정원의 3배예요,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 학교에서 신청을 해주셔야 저희도 예산이 있는지를 보고 지원 여부를 검토할 수 있는데, 00 초등학교는 예년 기준으로는 돌봄 교실 신청자도 정원 대비 그렇게 만지 않아서 신청을 안 하셨다고 하네요. 일단 제가 학교 담당 선생님과 통화해 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지금 이런 상태면 40여 명의 맞벌이 가정 학생들이 돌봄교실에 갈 수 없어서 정말 곤란한 상황입니다. 빨리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필요하다면 제가 학부모 동의서라도 받아서 제출할 테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좀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학교하고 연락해보고 전화드리겠습니다."
다시 전화를 준 교육청 담당자에 따르면 학교에서 오늘은 교장, 교감 선생님이 안 계시니 내일 오시면 협의해보겠다고 했다고 한다. 학교 담당 선생님도 교육청 담당자도 나의 절박함에 대해 이해하는 듯한 태도로 전화를 받아주셔서 감사했지만, 결국 실질적인 대안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설마 우리 아이는 당첨되겠지?'라는 희망 고문을 당하며 마냥 기다리다가 만약 2월 말에 가서 결국 추첨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대책이 없다. 그렇다고 추첨도 하기 전에 사람을 구할 수도 없고 학원을 등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신청자를 미리 받았다면 그에 맞는 대책을 빠르게 세우고 실행해야 할 텐데 마음이 타들어가는 건 학부모뿐인 것 같다.
엄청난 교육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학교를 처음 가는 8살 어린아이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보호자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돌봄교실이라는 제도가 만들어졌다면 적어도 1 순위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다른 걱정 없이 보낼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는 운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운이 좋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할 수 없고' 식으로 운영한다면 이것은 의무교육기관에서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는 거라고 할 수 없다. 저출산 대책이라느니, 여성인력 활용 정책이라니, 맞벌이 가정의 워라밸 문화라느니, 이런 거창한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아이들의 안전에 관련된 기본적인 제도들부터 제대로 운영되었으면 좋겠다.
추첨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당첨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혹시 안될 경우를 대비해서 하원 도우미를 빨리 구해 놓아야 하나? 아니면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다닐 학원을 찾아봐야 하나? 학원비가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안전이 문제라 여러 학원을 돌아다녀야 하는 게 너무 불안한데 그냥 하루하루 별일 없겠거니 생각하며 안전하게 잘 다녀오기만을 기도하면서 살아야 하나? 정말 대책이 없다.
내가 당첨되더라도 누군가는 떨어질 것이고 그 누군가는 또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초등학교 들어가면 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전업 엄마가 되는 경우를 주위에서 심심찮게 보게 되는데, 그 상황이 진심으로 이해가 된다. 내가 원해서 선택하는 것이라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만은, 상황이 이러하여 부득이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경우라면 정말 우울할 것 같다.
나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추첨에 떨어질지도 모르니 만약을 대비해서 학원도 알아두고 사람 찾는 사이트도 확인해 두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냥 희망고문을 당하며 추첨일까지 기다려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정말 답답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