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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종시 세자매 아빠 Dec 30. 2018

디지털 전환 시대의 사회제도 혁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법과 제도의 재설계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 : 명사에서 동사의 시대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는 “명사의 시대에서 동사의 시대로”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과거 경쟁의 중심이 자동차, 호텔, 컴퓨터, 커피 등 ‘물건’ 및 ‘제품’이었다면 이제는 이동, 휴식, 컴퓨팅, 영혼의 고취 등 그 물건을 가지고 하는 ‘행동’ 또는 ‘체험’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동사로의 변화를 이끄는 견인차는 개방형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모든 사물로 확산되는 현상이다. 20세기 최고의 만능 과학자인 폰 노이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분리하는 아키텍처를 고안함으로써 프로그램만 교체하면 컴퓨터를 사무업무, 미디어 재생, 게임, 쇼핑 등 각종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만능기계로 만들었다. 하지만 다른 제품들은 20세기가 지나도록 제조업체가 사전 입력한 내장형 소프트웨어 기능에 고정되었다. 스마트폰을 필두로 사용자가 자신의 필요에 맞게 다양한 앱을 직접 골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기능의 가변성(programmability)이 극대화된다. 때마침 인공지능 혁명과 결합되면서 상황맥락에 대한 대응이 더욱 개선되어 지금까지는 사람의 수고를 요구하던 서비스들을 제품이 직접 제공할 수 있게 된다(Servitization 현상).


명사(제품)에서 동사(체험)로 가치사슬의 확장


물건의 명칭을 표현하는 명사는 그 경계가 분명하게 그어진 반면, 움직임을 표현하는 동사는 항상 경계가 열려 있다, 과거에는 전화기와 컴퓨터의 구분이 명확했다면 스마트폰은 앱 설치에 따라 디지털카메라, MP3P, 내비게이션, 전자책, 시계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유연성 덕분에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동사의 시대에는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 제품을 정의할 수 없다.


기존 제품은 공학적 연구개발과 대규모 설비투자를 통해 물리적 기능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면서 경쟁우위를 확보했는데,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급격한 발전으로 전 세계 제조기술은 상향평준화되었다. 반면 소프트웨어 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업의 개념을 설계(Concept Design)하는 역량은 연구개발, 디자인, 빅데이터, 마케팅, 브랜드 등 다양한 무형자본을 성공적으로 통합한 소수의 선도기업만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물리적 기능의 점진적 개선(Incremental Improvement)보다 새로운 서비스 카테고리의 창출이 중요해지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의 시대에는 선점자 우위가 증가한다. 고립된 실험실에서 테스트를 수행하는 물리적 기능과 달리 서비스의 개발은 다양한 실제 환경에서 각종 취향의 고객이 직접 사용하며 경험한 피드백의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사물인터넷에서는 디지털 흔적이라고 불리는 행태 데이터가 생성되기 때문에 새로운 기능을 개발하면 A/B Test라 부르는 무작위 임상실험을 통해 기대했던 성과를 달성했는지를 바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실험을 토대로 지속적으로 품질을 개선해 나가며 후발자와 격차를 벌려가고, 재생산 (한계)비용이 0에 가까운 소프트웨어의 특성 때문에 후발자가 추격하기도 어렵다. 양산 후 수정이 힘든 물리적 제품과 달리 소프트웨어는 판매 후에도 온라인 업데이트가 언제든 가능해 시장 출시도 신속히 진행된다.

A/B Test(무작위 임상실험)의 개념


사회제도의 재설계

선진국들은 이처럼 기존 산업화 시대와 확연히 달라진 디지털 신경제의 특성에 부합하도록 법과 제도의 재설계를 모색하고 있다. 새로운 혁신 패러다임 하에서는 사용자 선점(Time to market)이 승부를 결정하게 되므로 새로운 실험을 가장 먼저 허용하는 유연한 사회제도를 찾아 혁신가들이 이동하게 된다. 즉, 사회제도의 혁신이야말로 기술 및 사업 혁신의 선결조건이 된다. 미국은 물리적인 의료기기에는 임상시험을 엄격히 적용하지만, 소프트웨어 기술에 대해서는 Pre-Cert라 해서 사후 모니터링 중심의 유연한 규제를 도입하였다. 또한 연구개발 단계의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해 시험·인증 통과 전에도 대중에게 시제품을 공급하여 사용 데이터를 수집하며 성능을 개선하는 활동도 활발하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중심의 혁신에 무지한 한국 정부는 인공적인 자율주행 시험장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건설했지만, 시험장 건설 대신에 실제 도로를 테스트베드로 사용하게 허락하는 국가들보다 기술 발전이 뒤처졌다. 건설투자만 이루어지고, 실제 도로에서의 주행 데이터라는 무형자본은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한국은 과거 경쟁우위를 확보했던 제조기술에서는 중국에 추격당하고 있는 반면, 선진기업들이 선점한 혁신서비스 산업에서는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이다.


또한 기존의 법과 제도는 주로 명사의 자격조건을 규정하는데, 유동성이 커지고 융합화가 활발한 신경제를 다루는 데는 부적절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차량과 건물에 택시와 호텔이라는 자격(면허/허가)을 부여하는 제도는 유휴 차량과 주택을 유동화하는 공유경제를 수용하기 어렵다. 또한 자동차라는 제품에 맞추어진 기존 법규는 자율주행이라는 동사적 특성을 수용하기 어렵다.


이에 따른 법과 제도의 재설계를 가장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개념이 “증거기반 정책수립(Evidence-based Policy making)”이다. 소프트웨어 개선활동에 사용되던 데이터 분석을 사회제도로 발전시킨 개념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시에 실제 사용을 해보며 문제를 발견하고 필요한 개선을 수행하는 작업환경을 샌드박스라고 하는데, 이 방식을 영국 정부가 핀테크에 접목하며 “규제 샌드박스”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이미 안정성이 검증된 절차만을 허용하던 기존 규제를 임시 유예하고, 새로 시도되는 서비스를 체계적인 실험과 데이터에 근거해 검증하면서 사회제도를 정비해 나가는 것이다. 즉, 서비스 제공 절차를 규제하는 대신에 서비스의 품질요소들을 정의하고 이를 측정한 데이터를 확보해서 개선활동을 수행한다. 궁극적으로는 서비스를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대신에 사용자 그룹과 사용환경 별로 가장 적절한 규제방식을 도출하여 차등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개발 변화에 대응해 싱크탱크들도 planning 중심에서 탈피해 social experimentation을 수행하는 Do-tank로 변신하고 있다.

실험 프로세스 (자료: Gloria & Hendler(2015), ICPP2 Milan.)


일자리의 변화

일자리 역시 명사에서 동사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데, 직업(job)이라는 고정된 정의가 해체되면서 일거리(work)가 중심에 서고 있다. 과거에는 정형화/표준화된 업무를 반복 수행하며 숙련을 달성했는데, 정형화된 업무를 자동화 기술이 점차 대체하면서 인간은 새로운 변화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역할을 담당해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해킹(hacking)은 보안을 침해한다는 나쁜 의미 외에 컴퓨터 프로그램이 지닌 숨은 기능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이러한 자질이 핵심이 되는 것이다. 아마존, 구글 등 IT기업에서는 연구개발자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새로운 서비스 기능을 디자인하고 고객들을 대상으로 무작위 실험을 수행하여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개선해 가는 혁신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새로운 기능을 디자인하고 사용자 반응 데이터로 평가하는 실험을 반복하며 성장하는 Growth Hacking이 확산되는 것이다.  


Growth Hacking


(이상은 ‘사물지능 혁명(이성호•유영진 공저)’의 내용을 다수 반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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