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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Apr 16. 2019

돈과 가까워지기로 했습니다

사랑은 한순간이지만, 돈은 영원한 것이에요.

연애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는 비연애 비혼을 목적으로 한 독립적을 삶을 그리다 보니 한가지 무겁게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경제력이었다. 물론 비혼을 결심하기 전에도 대충 나이가 차면 시집을 가 남자의 경제력에 의존하려는 생각같은건 해 본적이 없다. 다만 나는 금전 감각이 너무나 없었다. 딱히 명품을 지르지도, 비싼 취미 생활이 있지도 않은데 언제나 통장에는 빵들만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남들에게 잘 베푸는 성격인가 하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대체 내 돈들은 어디로 빠져나가는 것인가, 나는 누군가가 내 통장에 빨대를 꼽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뱅크샐러드 어플을 깔아 내 소비를 측정하기로 했다.


화장품도 옷도 별로 소비하지 않는 내 통장의 문제는 바로 엥겔지수였다. 먹는데에 돈을 너무 많이 써! 배달의 민족에 벌써 천만원은 가져다 바쳤어! 월급날이라고 참치에 비싼 와인 먹지 말란 말이야! 점심값이 평균 만원이야! 나는 나의 소비 만행에 충격을 먹었다. 이대로 살아간다면 나의 앞날은 너무나 캄캄했다. 월급날 참치와 와인을 마시는 대신 평생 단칸방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가성비를 너무 따진다며 내가 은근히 우스워 했던 사람들은 어느새 돈을 척척 모아 전세를 들어가고, 차를 사고, 목돈을 만들어 놓고 재테크를 하며 돈을 굴리고 있었다.


이십대 초반, 나의 돈은 모두 옷과 치장거리, 화장품, 술자리에 들어갔다. 인생은 오늘을 즐겨야 하는 법이라며, 죽으면 끝이라는 쿨한 말로 미래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대충 깊은 곳에 파묻었다. 이십대 중반, 나의 돈은 모두 여행에 들어갔다. 젊을 때의 여행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며 나는 나를 합리화 시키고 유럽, 동남아 등지로 일년에 두번씩 떠나곤 했던 것이다. 사실 여행을 다녀온 추억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추억이고, 또 후회할 이유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 더 알뜰하게 여행했더라면 하는 나의 아쉬움은 사라질 길이 없다. 최근에는 소확행이라는 마케팅 문구 아래 분별없는 소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나는 까마득한 두려움과 마주했다.


나이가 들어 부모님도, 친구도 없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면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긴 시간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나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돈이었다. 아무도 내 곁에 없을 지라도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 삶이 모질고 힘들지라도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돈, 돈이었다. 그동안 돈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속물 취급하고 나는 대단한 가치를 좇는 사람인냥 으쓱였던 시간들이 한심하고 부끄러워졌다.돈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나에게 돈은 속물적 가치에서 평생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동반자 혹은 친구로 바뀌어버렸다.

일단 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자 그동안 마치 장님으로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새로운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네이버의 동물, 연예, 영화 란보다 금융, 재테크 란을 먼저 살폈으며, 소소한 용돈벌이를 하기 위해서 보도자료나 칼럼 등의 원고를 쓰기도 했다. 커피를 사먹는 돈이 아까워져 커피 머신을 사 매일 집에서 커피를 타서 출근했으며, 주식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함께 비혼 비연애를 결심한 친구가 주식 입문자였기 때문에 함께 종목을 분석하고 소액 투자를 해보았던 것이다. 여태 돈을 불리는 방법이라면 적금밖에 몰랐고, 주식은 도박같은 위험한 투자라고 생각했던 나의 안이한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였다. 주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니, 시사나 경제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며 그것들이 곧 나의 경제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돈에 대한 시야를 바꾸고 처음으로 낯설게 다가온 것은 또래 여자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주식에 대한 말을 꺼낼때면 그들은 마치 엑셀을 하는 토끼를 본 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너 주식도 해? 우와 신기하다.' 하지만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의 관심도 사라졌다. '돈 많이 벌어서 나 치킨 사줘'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의 말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곧 남자와 화장품으로 돌아갔으므로 나는 다시 저 멀리 부유하는 나의 영혼을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여자 친구들은 항상 '존버(존나버틴다)' 나 '손절(주식을 손해보고 파는 것)' 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막상 그것들이 주식 용어에서 파생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더 재밌는 것은 남자 친구들에게 주식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매우 주의깊게 들으며 적극적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는 것이다. 수익에 관한 이야기와 대북주와 테마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종목 추천을 해 주기도 했다. 주식 오픈카톡방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였다. 참여자들의 98%는 남자였으며, 여자들은 가뭄에 콩나듯이 나타나곤 했다. 그마저도 거의 기혼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된 후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말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이 사회에서 경제적 최약자는 비혼 여성이다. 물론 비혼 여성이라는 점 외에 다른 패널티도 추가 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비혼 여성은 사회에서 금전적으로 굉장히 불리한 위치에 처해져 있다. 우선 가부장제에 따른 임금 불평등을 첫번째로 꼽아볼 수 있겠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남자는 '가장' 이라는 인식이 바탕이 되어있기 때문에 남자가 받는 임금은 본인 혼자의 몫 뿐만 아니라 보살펴야 할 가족들의 몫까지 들어가있다. '남자가 가족을 먹여살리려면' 받아야 하는 임금이 남자 임금의 평균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여자의 노동은 자연스레 사회에서 '부업' 또는 '잉여노동' 으로 인식된다. 남자가 아내와 가족을 벌어 먹여 살리기 때문에, 여자가 노동을 해서 버는 임금은 한 가정에서 가져가는 임금의 플러스 알파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일한 노동을 해도 여자는 남자보다 낮은 임금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 때, 가부장제에 편입된 여자는 사회의 인식 그대로 '가장' 의 보호 아래에서 잉여 노동을 하며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다. 그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불평등은 굳이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만약 한 여성이 가부장제에서 벗어나려 할 때, 가장 먼저 직면하는것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자신을 온전하게 보호하고 먹여 살리느냐이다. 이 문제는 여성들에게 생존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비혼을 다짐하다가도 경제력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가부장제의 안으로 들어가고는 한다.


두번째로는 '실질적 싱글세' 이다. 실제로 2014년, 저출산 대책회의에 참석한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가 "싱글세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큰 논란과 반발로 싱글세는 결국 도입되지 않았지만, 이름만 바뀌었을 뿐 연말정산에서 30~50만원 가량을 토해내거나, 각종 복지를 수혜받지 못하는 대상이 되며, 모아놓은 돈을 합쳐 전세를 구하지 못해 월세로 생 돈을 날리는 것 등 비혼으로 혼자 살며 손해보아야 할 것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작은 것들은 모이고 모여 실질적인 싱글세가 된다.


세번째로는 유리천장이다. 대리까지는 어느정도 여남의 비율을 유지하던 회사에서 과장, 부장급이 되면 여자의 자리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참 마법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출산 후 경력단절이 되는 기혼 여성도 있겠지만,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는데도 어쩐지 그 위로는 올라가지 못하고 제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도 많다. 거의 남자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천장 위에서 그들이 형님 아우 하며 줄을 설 때, 비혼 여성들은 차게 식어 자리에 떡이 져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구조조정을 당하거나 명퇴를 강요해야 할 상황이라면 그 화살은 가장 먼저 비혼 여성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다. 식구가 줄줄이 딸린 가장보다는 먹여살릴 가족도, 아이도 없는 비혼 여성을 잘라내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잘려지게 된다면 우리가 갈 곳은 어디일까? 나이 50이 넘은 여자를 경력직으로 받아줄 회사가 있을까? 우리가 얼마나 잘났건, 못났건 간에 결국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마트 캐셔직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보다 더 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루 커피 한잔을 사먹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궁상맞게 살라는 소리는 더더욱 아니다. 찰나의 즐거움도 물론 좋지만 미래에 대한 준비에 좀 더 충실해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막상 시작해 보니 주식투자는 그 어떤 게임보다 재미있었고, 부업으로 버는 돈은 모으고 모아 여행 자금으로 쏠쏠하게 사용되었다. 돈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결국 우리의 삶의 질을 올려줄 수 있는 것이다. 화려한 골든 미스까지는 아니더라도, 나 자신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여자들은 여러 산업의 호구 타겟이 되어왔다. 시즌마다 예쁜 옷, 가방, 신발을 소비해주며 비싼 화장품과 핑크택스가 덕지덕지 붙은 맛없고 예쁜 것들을 소비해주었다. 그러나 사회는 여자들에게 어떻게 돈을 관리해야 하는지, 자본을 어떻게 불려야 하는지 공부해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우리 스스로 깨우쳐야 할 때다. 스마트 컨슈머를 넘어 스마트 시티즌이 될 때까지, 우리 모두 존버하며 미래를 지키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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